2022 신춘문예 詩 당선작

2020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작- 박지일

문근영 2020. 1. 1. 21:03

시부문 당선작 - 박지일 ‘세잔과 용석’

 

 

세잔의 몸은 기록 없는 전쟁사였다 

나는 용석을 기록하며 그것을 알게 되었다 

세잔과 용석은 호명하는 방법의 차이만 있을 뿐 

하나의 인물이었다 

나는 세잔을 찾아서 용석의 현관문을 두들기기도 하고 반대로 용석을 찾아서 세잔의 현관문을 두들기기도 했다 

용석은 빌딩과 빌딩의 높이를 가늠하는 아이였고 

세잔은 빌딩과 빌딩의 틈새를 가늠하는 아이였다 

세잔과 용석 몰래 말하려는 바람에 서두가 이렇게 길어졌다 

(세잔과 용석은 사실 둘이다) 

다시, 

세잔의 몸은 기록 없는 전쟁사였다 

나는 세잔과 용석을 기록하며 그것을 모르게 되었다 

세잔은 새총에 장전된 돌멩이였다 

세잔은 숲의 모든 나무를 끌어안아 본 재였다 

세잔은 공기의 얼굴 뒤에 숨어있는 프리즘이었다 

용석아 

네게서 세잔에게로 너희에게서 내게로 

전쟁이 유예되고 있다 

용석아 

네 얼굴로 탄환이 쏘아진다 내 배후는 화약 냄새가 가득하다 

세잔과 용석은 새들의 일회성 날갯짓, 접히는 

세잔과 용석은 수도꼭지를 타고 흐르는 물의 미래, 버려지는 

세잔과 용석은 공중의 양쪽 귀에 걸어준 하얀 마스크, 아무도 모르는

나는 누구를 위해 세잔을 기록하나 

용석을 기록하나 

도시의 모든 굴뚝에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을 말이라는 것으로 상대에게 전달하는 것이 퍽 힘들었습니다. 대화 도중 더듬기 일쑤였고 네, 글쎄요, 그러게요, 같은 짧은 말들을 주로 내뱉었습니다. 뱉지 못한 것들은 빠르게 사라졌습니다. 누군가 훔쳐간 물건처럼 제 것이었으나 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을 글로 옮기는 것은 더욱 힘들었습니다. 

누군가 그랬습니다. 신인은 패기가 있어야 한다고, 당선 소감에 앞으로의 방향성을 적음으로써 자신을 드러내야 한다고. 저는 패기 있게 전진하는 것보다, 옆과 뒤를 살피며 걸음을 옮기는 것이 좋을 뿐인데요. 방향성 같은 거창한 것을 쓰기에는 이곳보다는 일기장이나 메모장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그런 생각뿐입니다. 

아무래도 제게 시하기의 이유는 재미였던 것 같습니다. 시라는 것은 제게 경전도 아니었고 성서도 아니었고… 일종의 부채감 같은 것은 더욱 아니었습니다.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많은 제게 시하기는 즐거운 행위였습니다. 정상성이라는 무서운 허구를 자꾸 들이미는 세계는 이상해 보였고 또 어찌어찌 세계라는 것이 굴러가고 있다는 것. 그것은 더 이상해 보였습니다.

그러니 제가 아는 것은, 어떠한 것도 모르는 저밖에 없다는 것. 그런 나와 함께 순간들을 잠시 붙잡는 것, 그곳에서 뛰어노는 것. 그런 것들이 재미있었습니다. 꾸려지는 찰나의 세계에 저를 잠깐 비집어 넣는 것이 즐거웠습니다. 아무런 소용도 없는 것이었더라도 말입니다.

시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당최 모르겠어요. 모르겠다는 질문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신 선생님들, 친구들, 길, 별, 재영 감사해요. 있는 어머니 아버지, 없는 동생, 가능성을 발견해주신 심사위원님들, 감사합니다. 재미있게 써보겠습니다. 과감하게 놀아보겠습니다. 이름 없는 이름들과 함께 순간을 붙잡고 있겠다고, 믿어보겠습니다. 

박지일 


 

심사를 맡은 세 사람이 응모작들을 읽기 전에 한 약속 아닌 약속은 지금 한국 시에 부족한, 비어 있는 감각을 채워줄 만한 작품을 눈여겨보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심사위원들은 그 ‘감각의 정체’에 관해서는 굳이 합의하지 않았고, 다른 눈(관찰), 코(호흡), 입(언어)을 가진 작품들을 각자의 손에 쥐었으며, 그것들을 거듭 살핀 끝에 일곱 분의 응모작들을 최종심 대상으로 삼았다.

‘공 하나를’ 외 4편은 고른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다. 특히 ‘청사로 들어간 사람’은 매끈했다. 행과 행 사이에 ‘간격’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있음이 믿음직했다. 그러나 응모작들이 모두 어딘가 낯익었다. ‘소풍과 정원’ 외 4편은 구조적으로 잘 짜인 작품들이었다. 착상을 확장하는 힘이 느껴졌으나 시상의 전개가 다소 예상 가능한 차원에 머물고 있어서 심심했다. ‘그래, 나는 곤란할 때 메모지를 찾아’ 외 4편은 투박함이 장점이었다. 쓰고 있는 이가 쓰고자 하는 바를 정확하게 썼다는 느낌이었지만, “손가락에 핀 서러움을 삼키다 혀가 베였다”와 같은 성긴 문장들이 다음을 기약하게 했다. ‘황소가 춤출 때’ 외 4편은 ‘다른 서정’에 대한 기대를 일순 품게 했으나 뒷심이 부족했다. ‘오이, 오일러’ 외 5편 역시 표제작에서 드러나던 활력이 응모작 전편에 깔려 있지 않은 점이 아쉬웠다. ‘최초의 충돌’ 외 4편은 주저하지 않고 내뻗는 말의 에너지가 인상적이었지만 다소 중언부언이었고 그로써 시의 리듬이 굳어 있었다. 그리고 ‘세잔과 용석’ 외 4편이 남았다. 박지일님의 응모작들은 무엇보다 읽고 난 뒤에도 계속해서 머물렀다. 자신만의 고유한 호흡을 유지한 채 여간해선 서두르지 않았다. 따뜻하고 유려하다가도 일순간 차가워질 줄 알았다. 사유가 과장 없이 녹아들어 있기 때문이었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는 두 사람을 호명하며 이룩하고 있는 당선작의 기체(氣滯)적인 시 세계는 정물적으로 보이면서도 또한 움직였다. 기록하면서도 함부로 기록하지 않고자 했다. 심사위원들은 이러한 매혹이 지금 한국 시에 필요한 감각임에 마침내 합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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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자에게는 조금 이른 축하를, 다른 지면을 통해 곧 만나게 될 이들에게는 조금 늦은 환대의 인사를 전한다. 심사 내내 당신들과 맺을 우정에 관해 생각했음을 덧붙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