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샘
정희성
봄이 봄다워지기까지
언제고 한번은 이렇게
몸살을 하는가보다
이 나이에 내가 무슨
꽃을 피울까마는
어디서 남몰래 꽃이 피고 있기에
뼈마디가 이렇게 저린 것이냐
시집 『詩를 찾아서』(창비,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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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따스한 햇살에 몸이 녹아내리더니 또 꽃샘추위다. 창문이 덜컹덜컹 바람에 흔들리며 쉽게 봄이 오지 못함을 되새겨준다. 봄이 봄다워지기 위해 아직 몇 번이나 몸살이 남았을까. 이월 끄트머리에서 너무 성급히 봄을 기다리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눈을 들어 먼 산을 바라보면 산빛이 조금씩 변해 있다. 어떤 일이나 어느 날 갑자기 이루어지는 일은 없다고 하지 않는가.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색을 바꾸고 땅을 녹이고 거죽을 뚫으며 봄은 오고 있다.
요즘 시대에는 꽃피는 나이가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전 티비에서 본 91세 할머니를 보면 말이다. 책을 읽는 체력을 기르기 위해 그 연세에도 마라톤을 하신다고 한다. 새벽 다섯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아파트 주변을 열다섯 바퀴씩 도는 할머니의 열정은 젊은이의 열정 저리가라였다. 삼십년을 마라톤을 해오신 할머니가 일년에 참가하는 마라톤 대회만도 몇 십 군데였다. 오로지 읽고 배우는 기쁨을 위해 마라톤을 하시는 할머니를 보고 나이는 아무런 제약이 아님을 다시금 깨닫는다.
또 어떤 시가 돋으려 시인의 뼈마디는 저리 저린 것일까. 봄이면 활활 피어나는 저 꽃들은 시인의 뼛속에서 뽑아낸 시들이 눈부시게 터져나오는 것이리. 세상은 곧 울긋불긋 시들로 만발하리.
- 엄정옥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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