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맞이꽃을 먹다니
최문자
감마리놀렌산이 혈행에 좋다고
그렇다고
그 꽃을 으깨다니
그 꽃 종자를 부수고 때리고 찢어서
캡슐 안에 처넣다니
그 피범벅 꽃을 먹고
혈관의 피가 잘 돌아가다니
욕심껏 부풀린 콜레스테롤이 그 꽃에 놀아나다니
그렇다고 나까지
하루 두 번 두 알씩 그걸 삼키다니
머지않아 꽃향기로 가득 찰 혈관
그렇다고
하필 그 환한 꽃을 죽이다니
밤마다 달을 바라보던 그 꽃을
꽃 심장에 가득 찼을 달빛을
그 달빛으로 기름을 짜다니
노오란 꽃에 앉았던 나비의 기억까지
모두 모두 으깨다니
부서진 달빛, 꽃잎, 나비
두 알씩 삼키고 내 피가 평안해지다니
생수 한 컵으로 넘긴 감마리놀렌산 두 알
혈관에 달맞이꽃 몇 송이 둥둥 떠다닌다
시집 『그녀는 믿는 버릇이 있다』(시와표현, 2015)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엄정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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