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몸살 / 김선우

문근영 2019. 2. 11. 10:14

몸살


        김선우



나는 너의 그늘을 베고 잠들었던 모양이다.

깨보니 너는 저만큼 가고.

나는 지는 햇살 속에 벌거숭이로 눈을 뜬다.

몸에게 죽음을 연습시키는 이런 시간이 좋아.

아름다운 짐승들은 떠날 때 스스로 곡기를 끊지.


너의 그림자를 베고 잠들었다  깨기를 반복하는

지구의 시간.

해 지자 비가 내린다.

바라는 것이 없어 더없이 가벼운 비.

잠시 겹쳐진 우리는

잠시의 기억으로도 퍽 괜찮다.


별의 운명은 흐르는 것인데

흐르던 것 중에 별 아닌 것들이 더러 별이 되기도 하는

이런 시간이 좋아.

운명을 사랑하여 여기까지 온 별들과

별 아닌 것들이 함께 젖는다.


있잖니, 몸이 사라지려 하니

내가 너를 오래도록 껴안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된 날이야.

알게 될 날이야.

축복해.




                   시집 『녹턴』(문학과지성사, 2016)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엄정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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