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살
김선우
나는 너의 그늘을 베고 잠들었던 모양이다.
깨보니 너는 저만큼 가고.
나는 지는 햇살 속에 벌거숭이로 눈을 뜬다.
몸에게 죽음을 연습시키는 이런 시간이 좋아.
아름다운 짐승들은 떠날 때 스스로 곡기를 끊지.
너의 그림자를 베고 잠들었다 깨기를 반복하는
지구의 시간.
해 지자 비가 내린다.
바라는 것이 없어 더없이 가벼운 비.
잠시 겹쳐진 우리는
잠시의 기억으로도 퍽 괜찮다.
별의 운명은 흐르는 것인데
흐르던 것 중에 별 아닌 것들이 더러 별이 되기도 하는
이런 시간이 좋아.
운명을 사랑하여 여기까지 온 별들과
별 아닌 것들이 함께 젖는다.
있잖니, 몸이 사라지려 하니
내가 너를 오래도록 껴안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된 날이야.
알게 될 날이야.
축복해.
시집 『녹턴』(문학과지성사, 2016)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엄정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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