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주(白晝)의 식사
정병근
식욕이라는 것 똑바로 본다
쫓기는 자의 식욕은 저렇듯 치명적이다
후루룩거리며 머리를 박고
뭔가를 먹는다는 일
내장을 파먹다 들킨 짐승처럼
피 묻은 입가를 훔치면서
가끔 고개를 들고 주위를 경계하는 저
번들거리는 눈알
노란 귤들을 길가에 쌓아놓고
급하게 자장면을 먹는 그의 죄목은
아직 그가 살아 있다는 것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모른다는 것
그는 왜 쫓기는가, 왜 그는 밤마다
어두운 굴속에서 불안한 잠을 자는가
식구들이 몰살당하는 전생(前生) 보는가
한소쿠리에 얼마냐고 묻자
먹다만 자장면 그릇을 얼른 뒤로 숨긴다
볼태기 가득 우물거리며
시집 『태양의 족보』(세계사, 2010)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엄정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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