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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땀방울의 노래 / 신달자

문근영 2019. 1. 19. 08:45

 땀방울의 노래 / 신달자

 

 

  땀방울 하나를 따라간다

  한 사내의 이마 위에 맺힌 땀방울이 턱 끝에서 떨어지려는 순간

  내 긴장은 몇 천개의 물방울로 떨어지고

  그 땀방울은 떨어지지 않았다

 

  은둔의 야성이 드러누운 의지를 이끌고

  와와와 세상 밖으로 뒤쳐나와 순간 발을 멈추는

  이 장면들

 

  영상 38도

  천도의 소리를 달구는 철근 공장의 사내

  몸이 모두 불이되어있는 그들의

  정신의 육체의

  그리고 밥의 즙을

  온 몸 줄줄줄 흘리는 사내들

 

  아찔 아찔 어지러운 120층의

  유리벽을 닦고 있는 줄 위의 사내 이마에도

  육체는 버리고 삶은 끌어안는

  허공의 땀

  허공의 삶

  불안불안 하늘과 구름과 세상사의 가슴 한쪽이 얼비치는

  저 유리는 혼의 거울이 아니냐

 

  두어 달 가게세가 밀린

  두평짜리 공간에서 스테이크를 구우며

  가스불 옆에 바짝 붙은 사내의 땀방울은 물이 아니라 피다

 

  저기를 보아라 하루해가 지느라 얼굴 붉은 저녁

  한숨까지 한 짐으로 올리는

  북촌의 팔순 벙어리가

  리어카에 잔뜩 폐지를 빌딩처럼 쌓아서

  끄을고 가는 저 노을의 허기진 이마에 맺는 꽃 꽃 꽃

 

  턱끝에서 땀방울은 결코 그 얼굴을 떠나지 않고

  위로 솟구치며 스미고 스며들어

  입으로 눈으로 귀로 다시 스며드는

  검붉은 땀방울에 세상은 슬쩍 비켜서는가

 

  아무 일 없이 빈손 헛발질로 골목을 걸어가는

  한 중년 사내의 등에 나는 진땀은 보는 이 없이

  무거워 허리 굽는다

  손끝 발끝이 저리고

  배꼽에 땀이 고이고

  두 어깨가 내려앉아

  사타구니가 다 젖도록 생의 사막을 쟁기질하는

  사내들의 노역이

  비틀거리는 사람들을 바로 일으켜 세우지 않겠느냐

  물이라고

  땀이라고 말하지 마라

  그들 이마의 꽃으로 나도 덜덜덜 떨면서 오늘 일어서고 있다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황봉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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