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방렴멸치
남상진
때로는 구부러진 그의 등에다
시위를 걸고 싶을 때가 있다
도시의 한복판에서
눈동자는 표적을 잃은 지 오래
골목은 출구도 없는 방안을 따라 이어졌다
누구처럼 막막한 놈들과 마주쳤을 때
한 번쯤 발사할 수 있는
먹물 한 줌 담아내지 못한 학벌
출구를 봉쇄당했을 때
무딘 주둥이를 얼마나 들이박았을까
붉게 물든 주둥이가 무색하게
몸뚱이는 이미 통발 속으로 들어서고 있다
달빛과 등대가 높은 곳에서
밤마다 눈빛을 주고받을 때에도
현수막을 흔들고 스크럼으로 맞섰을 뿐
올곧았던 대나무가
통발의 앞잡이가 될 줄 몰랐다
파도가 석화처럼 날을 세우고
통발에 웅크린 별들이
반짝 비늘로 스러지던 보름 밤
생의 마침표를 찍고 싶었을까
정리해고 통지를 받은 김씨가
한 평 방 안에서
벽을 향해 누운 등에다 시위를 걸고 있다
-남상진 『현관문은 블랙홀이다』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황봉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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