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나라
이진명
하늘나라가 있다지요
나선의 계단을 돌아 가파르게 오르면
종루가 있고
종루 위에는 높다랗게 십자가가 있어
아, 하늘나라가 있다지요
나는 잘못 찾아간 약도를 구깁니다
여기로 저기로 방향을 가늠해 봅니다
해 지는 저쪽, 부서져 가는 건물,
저건 샛문일 테지요, 비밀스러웠어요
촛불을 준비하고
그 샛문 지하 통로로 내려갑니다
튀어나온 벽에 얼굴을 긁히고
온 손에 거미줄 붕대를 감으며
드디어는 저 끝에 빛,
대리석 궁전이 보이는 뜰에 들어서서
연못 속에 잠긴 붉은 원기둥
원기둥에 매여 흔들리며 잠든 황금빛 새
내 약도로는 갈 수 없는 것일까
다시 잘못 찾아간 길을 돌아서 나옵니다
해진 약도를 바람에 떨구며
방향도 없이 고개를 젖힐 때
그 광야와 광야
모래 바람에 파묻힌 칠현금 소리
하늘의 커튼이 나부끼는 사이 그 사이로 언뜻
나비 같은
물들어 오는
- 시집 『밤에 용서라는 말을 들었다』(민음사, 1992)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엄정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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