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지방 문제와 다산의 「탐진대」
강 명 관(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다산의 글에 「탐진대(耽津對)」란 제목의 3편의 글이 있다. 탐진에 대한 어떤 사람의 물음에 답한 것이다. 탐진은 다산이 귀양살이를 하던 강진의 딴 이름이다. 물론 어떤 사람이란 정말 그런 사람이 있어 물었다는 것이 아니고, 탐진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편견을 의식하여 자문자답한 글이다.
“그곳에서 그대가 어찌 살 것인가?”
첫째 글을 보자. 북방의 어떤 사람은 “탐진은 탐라(제주도)의 나루터이고 풍토병이 있는 곳으로 죄인을 귀양 보내는 곳이다. 그곳에서 그대가 어찌 살 것인가?”
다산은 이렇게 답한다. 자신이 5년을 살아보았지만 더위는 북쪽보다 덜하고 겨울에도 추위가 그리 심하지 않다는 것이다. 또 탐진은 중국 회남과 위도가 같은데, 회남에 장독이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서울과 위도가 3도 차이가 나서 겨울에는 낮은 서울보다 길고 여름에는 조금 짧다고 한다. 북쪽 사람들은, 할 수 있다면 여름의 낮 시간을 잘라 겨울의 낮 시간에 보태어 겨울의 낮을 길게 만들고 싶어 하는데, 다산은 강진이 바로 그런 곳이라고 말한다. 강진은 겨울이 따뜻하지만 여름은 서늘하다. 다산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한 겨울에도 땅이 부드러워 밭가는 밭에서 쟁기질을 한다. 배추와 겨자가 모두 시퍼렇고, 노란 병아리가 돌아다닌다. 사람들이 이런 것을 보고서도 더위가 심하고 장독이 있는 고장이라고 하는데, 강진의 여름 해가 짧기는 해도 서늘한 기운이 아주 많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북방 사람들이 또 다산을 위로한다. “호남의 풍속은 교활하고 야박한데 탐진이 더욱 심하다. 그대가 어떻게 견뎌내겠는가?” 요즘으로 치면 악의적인 지역감정이 되겠다. 다산은 “아아,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가?”라고 하면서 반박하고, 몇 가지 순후한 풍속을 든다. 그 중 하나를 들어보자. 어떤 사람이 추수가 끝난 남의 논에 보리농사를 짓는 것을 보고 다산이 보리를 수확한 뒤 절반을 논 주인에게 주느냐고 묻자, 그 사람은 주지 않는다고 답한다. 세금 낼 때 반을 내어주느냐고 하자 그것도 아니라 한다. 그러면 논 주인이 쌀농사를 지을 때 일이라도 해 주느냐고 묻자 아니란다. 땅심이 줄지 않느냐고 하자 그럴 것이라 하고, 보리를 수확하기 전에 비가 와서 모심기를 해야 한다면 서로 피해가 없겠느냐고 묻자, 그럴 것이라고 한다. 남이 자기 땅을 갈아먹어도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 이것을 두고 다산은 참으로 인후한 풍속이라고 말한다. 강진은 결코 야박하지 않은 것이다.
다시 북방 사람이 또 묻는다. “탐진 땅에는 한 자가 되는 지네와 뱀이 득시글거리는 곳이다. 물리면 창병이 나고 약도 없어 목숨까지 위태롭다. 그대가 어떻게 견디랴?” 뱀과 지네가 득실거리는 위험한 지역이라는 것이다. 다산은 말한다. 지네는 기어가는 소리를 듣고 피하면 그만이다. 지네에 혹 물려 창병이 난다 해도 지렁이의 즙으로 고칠 수 있으니 걱정할 것이 없다. 게다가 다산은 지네가루는 부스럼을 고치는 좋은 약이라고 한다. 또 다산은, 뱀이 사람을 무는 경우는 극히 드물고, 문둥병 음위증ㆍ연주창ㆍ등창 등의 골치 아픈 병에 독사를 삶아 먹든지 회를 쳐 먹으면 병이 잘 나으니 도리어 하늘이 은총으로 내려준 것이 아니냐고 반문한다.
서울 아닌 곳도 사람이 살 만한 곳이지만…
다산은 원래 경기도 사람이고, 성인이 되어서는 서울에서 벼슬살이를 하였다. 그런 그가 전라도 강진으로 귀양을 가자 서울 사람들(곧 북방 사람들)은 다산이 죽을 곳으로 가는 줄로만 알았을 것이고, 다산 자신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오죽 했으면 다산 자신도 「탐진대」를 쓰고 5년 뒤에 두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示二兒家誡」)에서 조선은 서울 도성 문을 몇 십 리만 벗어나면 원시의 세상이라면서 서울을 떠나지 말라고 당부했을까? 「탐진대」에서 다산은 서울 아닌 곳도 사람이 살 만한 곳이라면서 애써 강변하고 있지만, 그런다 해서 사정이 달라진 것은 조금도 없었던 것이다.
다산의 「탐진대」와 「시이아가계(示二兒家誡)」를 읽으며 오늘날 서울과 지방을 생각한다. 같은 대한민국이란 껍데기를 쓰고 있지만, 서울은 내지가 되고, 지방은 식민지가 되었다. 내지 사람들의 눈에 식민지 백성은 관심 밖에 두어도 무방한 이등 국민일 뿐이다. ‘수도권 규제 완화’를 전하는 뉴스를 듣고, 다산의 글을 다시 읽는 심정이 무한히 착잡하다.
글쓴이 / 강명관
· 부산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 저서 : 『조선의 뒷골목 풍경』, 푸른역사, 2003
『조선사람들, 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나오다』, 푸른역사, 2001
『조선시대 문학예술의 생성공간』, 소명출판, 1999
『옛글에 빗대어 세상을 말하다』, 길, 2006
『국문학과 민족 그리고 근대』, 소명출판, 2007
『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 푸른역사, 2007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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