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여자
김은덕
만리장성을 오르내린 날 저녁
작고 가녀린 여자가
피로에 지친
내 몸의 옹이를 풀어내는 동안
그녀의 가솔(家率)이 줄지어 따라 나온다
초라한 남편과 어린것들이
눈자위 퀭한 시댁 식구들이
젊은 그녀의 팔에 매달려 있다
‘아즈마 이쁘다’
혀 짧은 말로, 어설픈 한국말로
비위를 맞추려 하고
나이와 식구 수를 묻는
내 물음에
어린 아이처럼 손가락을 쫙, 펼쳐 보인다
그녀의 손길이
내 몸에 뜨겁게 새겨질 때
내 안의 여자가
그녀의 손을 잡는다
—시집『내 안의 여자』(2016)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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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덕 / 충남 논산 출생. 전 청주 대성여자상업고등학교 교사. 2004년《시현실》로 작품 활동을 시작. 시집『내 안의 여자』.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엄정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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