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벽화
김재근
1
겨울에 피는 꽃만 생각했어
창문에 겨울 입김이 남아 있으니
오늘은 행성이 나란하고
달려도 달려도
내일은 만나지 못할 거야
손바닥에 동그라미 그려주면 눈보라 휘날린다
밤은 해변에서 오고
해변에 날리는 눈보라 보며 식물도감을 외웠지
피어나는 밤의 검은 머리카락
뜨거운 철로 위 석탄을 실은 열차에 매달려
귀가 하얘지도록 밤새우는
파도 소리 들었지
2
몸에 새겨진 기억이 묽어진다
바람소리만 들리는
여기는 누구의 행성일까
밤의 그림자를 잘못 빌려 입은 걸까
파도 소리 얼지 않도록
잠든 물결이 너의 물새가 되어야 하는데
우리는 이미 잘못 친 점괘인지도 몰라
불을 피우면 어두워지는 그림자
해변에 발을 담그면
발이 녹아
발을 잃어
발을 찾아
우는 눈보라
어둠에 몸을 지우는 눈보라
어떤 그림자를 물속에 새겨놓을까
여기는 누군가 버려둔 행성인데
죽은 물고기의 단단한 울음 속인데
죽은 눈보라는 어디 겨울로 헤엄쳐갈까
몸이 얼어 아슬한 여기는,
—《현대시》2016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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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근 / 1966년 부산 출생. 부경대학교 토목과 졸업. 2010년 <창비>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무중력 화요일』.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엄정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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