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호 성(서강대 정외과 교수)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을 전후하여, 역사상 전무후무한 불길한 사회 현상이 줄을 잇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태안 기름 유출사건으로부터 시작하여 민족적 문화유산인 남대문의 붕괴로 아연실색하고, 한반도 대운하 건설 문제로 온 나라를 들끓게 하던 소란법석으로 혼비백산하는 와중에, 급기야는 쇠고기 광우병 파동으로 온 국민이 불안과 분노로 치를 떠는 혼란의 악순환이 하염없이 되풀이되고 있다는 한탄이 즐비한 것이다.
인류의 역사는 시장과 광장의 역사다.
시장을 사익을 위해 흥정하는 곳이라 한다면, 광장은 공익을 위해 절규하는 곳이라 이를 수 있다. 규탄의 함성을 내지르며 뜨거운 연대의 손을 서로 맞잡을 수 있는 곳이 바로 광장 아니겠는가. 그리하여 역사는 시장에서 시작하여 광장에서 일단락된다. 지금 우리 한국은 마치 한 시대의 종언이라도 예고하려는 듯이, 바야흐로 촛불로 어우러진 광장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광우병과 비정규직, 그리고 사회적 생명운동 어느 신문 보도에 의하면, 전국금속노조 기륭전자 분회 소속 여성 해고 노동자들이 지난 11일 서울 시청 앞 광장에 설치된 아찔한 철탑 꼭대기에 힙겹게 올라가 고공시위를 벌이며, "미친 소도 막아내고 일터의 광우병 비정규직 철폐하라!"고 절규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이 노동자들은 시민들에게 보내는 호소문에서 "사회적 약자를 외면하는 것은 광우병만큼 무서운 것 아니냐"고 외치기도 했다.
바야흐로 ‘광우병’이 사회적 억압, 착취, 불평등과 같은 모순적인 사회현상을 상징하는 대표 대명사로 군림하는 실정이다. 그리하여 이윽고 ‘미친 소’가 <美親 소>로 둔갑하여, 친미적인 자세를 마치 ‘미친 짓’으로 오인하도록 이끌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하기도 한다.
어쨌든 ‘촛불’이 요원의 불길처럼 타오르고 있다.
10대들이 불붙인 ‘촛불의 물결’은 시간이 흐르면서 전 연령대로 확산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규탄의 대상도 단순히 ‘쇠고기’를 넘어, ‘교육’, ‘대운하’, ‘청년 실업’ 등 다양한 사회적 문제로 번져나가고 있다. 말하자면 쇠고기·교육·대운하·조류 바이러스 문제 등, 국민이라면 누구나 다 지대한 관심을 쏟을 수밖에 없는 일상생활과 직결된 본질적인 문제점들에 대한 저항이 분출하고 있는 것이다. 위협 당하는 일상생활을 구출하기 위한 사회적 생명 운동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이미 이념과 세대의 차이를 뛰어넘은 지 오래다. 이러한 현상이 바로 전 국민의 운동권화인 것이다.
심지어는 촛불집회에 대거 동참하는 10대들의 투혼이 4·19 혁명 전후를 연상케 한다는 예측까지 나올 정도다.
뿐만 아니라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 문화제가 열린 서울 청계 광장이 마치 태풍이나 지진으로 가족들이 모두 거리로 나앉은 외국의 모습과 비슷하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갓난아기에게 우유를 먹이는 엄마, 아빠, 그리고 아빠 ,엄마의 팔, 다리를 베개 삼아 곤히 잠든 지친 아이들의 모습도 목격되었다. 이 운동을 주도한 중·고등학생들과 아이들을 업고, 안고, 손잡고 나온 부모들이 한데 어울린 것이다. 어른들은 “먼저 앞장선 어린 학생들에게 미안해서” 또는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밤늦게까지 자리를 뜨지 않고 촛불을 지켰다는 것이다. 대학생들도 앞장서서 촛불을 드는 중고교생들에 대해 자성의 목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대중 가수들도 이 촛불 문화제에 열렬히 동참하여, 수만 명의 시민, 학생들과 함께 뜨거운 무대를 연출했다고 한다. 이리하여 ‘가정의 거리화’, 그리고 ‘거리의 가정화’가 이루어진 셈이다.
촛불의 배후? 그러나 일부 정치권과 수구언론은, 으레 그러하듯이, 10대의 촛불집회 참가에 ‘배후’가 있다고 또 목소리를 높인다. 옳은 말이다. 당연히 배후가 있다. 하지만 그 배후는 이른바 좌파 세력이나 시민단체 등이 아니라, 바로 이명박 대통령 자신과 미국 소다.
그런데 마치 군사독재시절로 되돌아 간 것처럼, 학교에서 배운 바대로 생활의 현장에서 민주주의의 참뜻을 기리고자 애쓰는 이 10대를 정부는 강압적으로 짓누르고자 애쓴다.
일부 교사들은 촛불 문화제와 관련해 하달된 ‘학생 지도 지침’, ‘학생 지도 구역’ 및 ‘비상 연락망’ 등이 담긴 유인물을 손으로 구겨버리며 부끄러워하고 있다. 그런데 만일 이러한 교육청의 일방적인 지시에 불만을 품은 이들 교사들이 오히려 자신들의 제자들이 스스로 개최한 광우병 반대 집회에 솔선해서 동참해버린다면 사태는 과연 어떻게 발전하게 될까 … ?
언제쯤이면 우리 정부는 자신들의 단합된 의사를 문화적인 축제 형식으로 품위 있게 표현할 줄 아는 이 평화적인 ‘촛불 양심세력’을 좌파에 의해 선동된 무지몽매한 군중이 아니라, 주권을 존중하고 정당한 생존권을 사랑하는 자랑스러운 국민이라 깨닫게 될까? 그것은 과연 가능한 일일까? 이러한 것이 도대체 이명박 대통령이 기회 있을 때마다 절규하고 또 절규해 마지않는 “국민 섬기는” 정치인가?
그뿐 아니다. 대외적으로 이명박 정부는 과연 국민 개개인의 자존심과 국가의 자주성을 드높이기 위해 과연 최선을 다하였을까? 국민을 대표한다는 정부가 국민과 아무런 사전 의사소통이나 합의도 없이, 일방적이고 굴욕적인 협상을 졸속으로 완결 짓지는 않았는가? 시장경제 체제하에서는 구매자가 우월적인 지위에 서는 게 지극히 타당하고 일반적인 관행인데도, 어떻게 이다지도 한심하고 무지몽매할 정도의 쇠고기 협상결과를 도출해냈을까? 이러한 것이 혹시 미국에 대한 사대주의 발로는 아니었던가?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올해 우리 경제의 성장률이 지난해보다도 낮은 4.8%에 이를 것이라는 우울한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그에 덧붙여 지난해 3.9%에 이르렀던 국민총소득(GNI) 증가율도 2%에 그치고, 물가 급등 속에 내수 경기가 크게 위축돼 체감경기는 더욱 나빠질 것이라는 절망적인 전망을 제시하기도 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2.8%에서 4.1%로 크게 높아지리라 예측되었다. 내수 침체와 더불어 고용 사정 역시 더욱 나빠지리라는 보도도 뒤따랐다.
이러한 현상이 과연 이 대통령이 기회 있을 때마다 외치고 또 외쳐온 ‘경제 살리기’며, ‘경제제일주의’인가? 중대한 질문과 심각한 의문이 흘러넘치는데도, 대답을 들을 수가 없다. 물론 들려주는 곳도 없다. 바로 이러한 질곡 속에서 국민 스스로가 그 해답을 스스로 찾아 나서기 위해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모여든 것이다
이명박 정부에 대한 지지율이 30% 이하(여의도 연구소 28%, CBS 25.4%)로 추락했다는 것은 대단히 자연스러운 결과다. 사필귀정이다. 취임한 지 100일도 안 된 집권 초반에 이렇게 급격하게 지지율이 떨어진 정권이 과연 우리 역사에 존재해본 적이 있었던가!
민심은 천심 우리나라 국민은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정치에 대한 관심이 지극히 높다. 마치 우리의 민족감정이 그러하듯이, 워낙 오랫동안 정치 하나에 시달릴 대로 시달려온 백성들이라 정치가 어떻게 움직이는가 하는 것에 대해 본능적으로 신경을 많이 쓸 수밖에 없게 되어 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 국민은 정치에 대해 뿌리 깊은 불신을 지니고 있다. “구관이 명관이다”라는 말은 현실정치에 대한 불만의 자학적 표현이다. “그×이 그×이다”라는 자조적인 말속에도 극복될 줄 모르는 정치적 불신의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서려 있다. 그러나 정치에 대한 관심이 높다면 정치에 대한 불신이 얕아야 하고, 반대로 정치에 대한 불신이 많다면 정치에 대한 관심이 적어야 정상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높은 정치적 관심과 깊은 정치적 불신이 공존하고 있다. 흥미로운 모순이다.
그러나 다르게 표현하면, 이 모순은 바로 우리 국민의 치열한 정치적 관심을 뜨거운 정치적 활력으로 결집시켜나갈 현실적 역량이나 인물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된다. 정치적 대안이 부재하긴 하지만 그래도 미래에 대한 기대를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는 국민적 결의 같은 것이 이러한 모순적 현상의 배후에 깃들여 있는 것이다.
촛불 집회는 이러한 국민적 결의의 단합된 표출이다.
10대들까지 아우른 온 국민이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모여든 것은 촛불처럼 밝은 미래에 대한 확고한 기대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전 국민이 운동권이 되었다는 사실은 우리 국민이 스스로 밝은 미래를 개척해나갈 수 있는 뜨거운 정치적 활력을 이미 지니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 이러한 자랑스러운 국민을 따르려 하지 않는가?
민심이 천심이라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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