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752)/ 페루/
아레키파 역사 지구(Historical Centre of the City of Arequipa; 2000)
Basilica Cathedral of Arequipa
Aristocracia, La Merced
페루 남부 고원 지대에 있는 아레키파 주[Province of Arequipa]의 도시인 아레키파는 1540년 스페인 인들에 의해 건설되었다. 화산암인 실라(sillar)로 지은 건축물이 많은 아레키파 역사 지구는 유럽 건축과 토착 건축 기술이 융합된 독특한 유적이다. 이 건축물들은 식민지 관리인과 크리오요(Criollo; 식민지에서 태어난 백인), 그리고 인디언 석공들의 건축 기술이 빚어낸 감탄스러운 결과물이다. 이러한 특징은 도시의 견고한 성벽, 아치 길[archway]과 아치형 천장, 안뜰과 개방 공간, 그리고 건물 파사드(facade)의 복잡한 바로크 장식에 잘 나타나 있다.
아레키파 역사 지구는 식민지 정착촌의 걸출한 사례이다. 아레키파 역사 지구는 자연 조건, 토착적인 영향력, 정복과 복음 전도의 과정, 그리고 극적인 환경에 의해 도전을 받아왔다. 아레키파 역사 지구의 화려한 건축은 유럽과 토착적인 특징이 창조적으로 융합된 걸작을 보여준다. 이러한 특징은 전 지역의 문화적 표현에 중대한 역할을 했다. 아레키파는 1540년 8월 15일에 소수의 스페인 정복자들이 세웠다. 유적은 히스패닉 이전의 공동체들이 집약 경작을 해온 계곡에 자리 잡고 있으며, 지형적인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토착민 마을의 터는 산라자로(San Lazaro) 지역의 역사지구 인근에 남아 있다. 세계문화유산은 스페인 마을 터 중 49개의 구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메르카도 산카밀로(Mercado San Camilo)와 인접한 3개의 구역은 양식이 맞지 않는 것으로 간주되어 제외되었다. 여기에 식민지 시대와 19세기의 구역 24개가 추가되었다. 지역적 특성인 강한 지진은 아레키파의 건축 양식에 큰 영향을 미쳤다. 아레키파의 건축 양식은 다음의 5단계 발달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마을의 설립(1540∼1582), 바로크의 장관(1582∼1784), 로코코와 신고전주의의 도입(1784∼1868), 근대 경험주의와 신고전주의 양식(1868∼1960), 그리고 현대의 디자인이 그것이다. 도시는 총독 시기에 주요 발전을 이루었으며, 남부 안데스 산맥의 중요한 경제 중심지였다. 페루 공화국의 역사에서 아레키파는 이후에도 중요한 역할을 계속했다. 아레키파 역사 지구는 저명한 시민의 저항 및 시위 중심지였고, 동시에 페루에서 뛰어난 많은 지식인・정치인・종교인의 탄생지이기도 했다. 아레키파의 초기 건물은 어도비 점토(adobe)와 돌을 이용해 건축했다. 지붕은 짚과 막대기 혹은 진흙으로 만들었다. 이런 방식으로 건축된 건물 일부가 여전히 산 라자로의 구시가지에 남아 있다. 후기의 건축 재료는 벽돌과 짚이었으며, 이 또한 산타 카탈리나 수녀원[Convent of Santa Catalina]에서 몇몇 전형들을 찾을 수 있다. 1582년의 자연 재해는 내진(耐震) 공사를 선호하도록 만드는 큰 변화를 일으켰다. 그리고 흔히 구할 수 있는 화산암인 실라를 재료로 도입하게 되었는데, 이 돌은 분홍색 또는 진주색의 소재였다. 이전에 실라는 교회 본관의 출입구나 몇 안 되는 주택에만 쓰였다. 실라는 부드럽고 가벼우며 내열성과 내구성이 있어서 지진에 대한 해결책이 되었으며 미적 만족도 주었다. 역사 도시의 중심은 아르마스 광장[Plaza de Armas; 마요르 광장]이며, 아치길・시청・대성당이 있다. 대성당은 페루에서 가장 중요한 신고전주의 종교 건축물로서 19세기 중반에 이전 시기 바로크 교회의 폐허 위에 세워졌다. 광장의 한 모퉁이에는 라 콤파냐(La Compania) 교회와 수도원들이 있다. 이는 18세기 말 바로크 메스티소(mestizo) 시기의 대표적인 유적이다. 산타 카탈리나 수도원[Monasterio de Santa Catalina]은 20,000㎢의 부지에 16세기부터 19세기의 건축학적 양식을 통합한 눈부신 종교적 중심지이다. 산프란시스코(San Francisco)의 복합 건물에는 작은 광장, 교회 본관, 수녀원, 제3 (수도)회(會)의 수도원[수도회 수사로서 교회 밖에서 봉사함]이 있다. 산토 도밍고(Santo Domingo)의 예배실 및 수녀원들은 16∼18세기의 것이다. 산아구스틴(San Agustin)과 라 메르세드(La Merced)와 산타 마리아 교회[church of Santa Maria], 산타 테레사(Santa Teresa)와 산타 로사(Santa Rosa), 푸엔테 레알[Puente Real; 오늘날 푸엔테 볼로그네시(Puente Bolognesi)]과 푸엔테 그라우(Puente Grau) 등도 역시 화산암 실라로 건축되었다. 역사 지구에는 약 500개의 건물이 있는데, 이 중 250개 이상이 보호 대상으로 지정되었다. 이들은 1868년의 지진으로 무너진 초기 식민지 시대 건축물들 위에 19세기에 건축한 것이다. 크고 두터운 둥근 뼈대나 깊은 돌출부에는 장식적 디자인을 더하고, 평평한 표면에는 조각을 하면서 육중한 건물을 다듬어왔다. 이런 특성들에 빛이 결합되면서 건물에 활력을 부여하고 있다. 건물의 육중함은 완화되었고 더욱 흥미롭게 보이도록 만들어져졌다. 산토 도밍고 교회[Iglesia de Santo Domingo] 측면 출입구에 있는 최후의 심판 우화는 그 도시와 지역의 많은 출입구에서 전형적으로 볼 수 있는 예술적 표현의 한 예이다. 아레키파 건축 양식의 가치는 이 도시의 종교적 기념물들의 웅장함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품위 있는 카소나스(casonas; 식민지 도시의 도시 귀족들의 저택)의 풍부함에서도 그 가치를 찾을 수 있다. 카소나스는 독특하게 균형 잡힌 일반 주택 양식의 가옥으로 도시 공간이 도시 블록 내부로 스며들도록 장식되어 있다. 카소나스는 대형 출입구와 안뜰로 이어지는 복도가 있는데 건물 파사드에 같은 조각을 재현하여 공간적 연속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출입구와 창문의 옆에는 기둥이 있고, 대형 벽과 조합된 돌출된 페디먼트(pediment; 건물 입구 위의 삼각형 부분)를 얹었다. 현관에서 장식을 절제한 것이 둥근 천장의 모양과 돌출된 코니스(cornice), 그리고 조각을 새겨 넣은 코벨(corbel)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좁은 창문으로는 반원형 아치 또는 아치형 지붕 아래의 공간으로 빛이 들어온다. 카소나스는 거리・광장과 함께 도시 경관을 조화롭고 완전하게 만들며 이 도시에 특별한 도시적 가치를 부여하는 기념물 유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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