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을 찾아서

[스크랩] 세계문화유산(728)/ 브라질/ 올린다 역사 지구

문근영 2018. 1. 4. 08:54

세계문화유산(728)/ 브라질

 

올린다 역사 지구(Historic Centre of the Town of Olinda; 1982)

 

 

 

Aerial view of the Historical city center

 

Olinda and Recife Overview

 

 

 

 

 

Olinda cathedral

 

Church of Our Lady of the Snows, Saint Roch Chapel and San Francisco Convent

 

 

 

 

 

Main altar of Saint Benedict Church

 

 

 

 

 

 

 

 

 

 

 

 

 

 

 

 

 

   16세기 포르투갈 인들이 건설한 브라질 북동 지역[North-East Region] 페르남부쿠 주[State of Pernambuco]에 속한 올린다의 역사 지구는 사탕수수 산업과 밀접한 연관이 있었다. 네덜란드의 습격을 받아 파괴된 후 다시 건설된 이 도시의 기본 구조는 18세기에 정립되었다. 도시 곳곳에 남아 있는 식민지 시대의 아름다운 건축물과 정원, 20개에 이르는 바로크 양식의 성당, 수녀원과 작은 규모의 예배당들이 어우러져 빼어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레시페(Recife)의 고층 건물과 산업 지역, 항만 시설로부터 북쪽으로 몇 로 떨어진 곳에 있는 올린다의 역사적인 중심지는 식민지 시대 도시 박물관의 매력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올린다1537년 포르투갈 인 두아르테 코에유 페레이라(Duarte Coelho Pereira)가 건설했다. 이 도시는 노예 노동을 기반으로 페르남부쿠(Pernambuco) 지역의 사탕수수 재배가 빠르게 성장하는 덕분에 발전하였다. 16세기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교회와 수도원이 종교 단체에 의해 설립되었다. 그 가운데 바로 상주앙 교회[Church of Sao Joao]처럼 희귀한 예들만이 오늘날 존재한다. 1630~1654년까지 네덜란드 인들이 이 지역을 점령하여 완전히 지배하였다. 점령 기간 동안 그들에 의해 훌륭하게 계획된 도시는 현재 레시페가 위치한 곳에 건설되었다. 페르남부쿠 연안을 따라 풍부한 충적토 지역에 위치한 농장에서 설탕 생산량이 크게 증가하였으므로, 그것으로 평화를 창조하고 레시페를 중심으로 행정을 발전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침입자들은 올린다를 불 질러 버렸다. 1654년에는 페르남부쿠의 네덜란드 인을 대신하여 포르투갈 인이 통치하기 시작하였으며, 그들은 올린다를 재건했다. 다시 말해, 발전된 지역 및 문화 중심지로서 올린다는 중요한 브라질의 도시였다. 18세기 초 식민지 자치 관구[Captaincy]의 행정적인 수도이면서 풍부한 귀족 농장 소유자들의 거주지였던 올린다와 주로 상인과 선박 관련 잡화상, 창고 근로자들이 거주했던 레시페 사이의 혹독한 경쟁은 심해졌다. 레시페는 계속 번창했지만 올린다는 쇠퇴하였다. 1827년 레시페는 주의 수도가 되었다. 1817년 페르남부쿠는 포르투갈의 통치에 대항하는 지역 무장 반란의 장소였다. 그곳은 오랫동안 공화주의와 혁명적 시위의 온상지로 남아 있었다. 1821~1822, 1824, 1831, 그리고 1848년에 포르투갈 통치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켰지만 모두 실패했다. 1891년 페르남부쿠는 브라질 공화국의 주가 되었다. 오래된 유적들이 몇몇 있지만 올린다의 가장 필수적인 도시 구조는 18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올린다의 가장 훌륭한 건축물 중에는 성공회, 예수회 대학 및 교회[현재의 그라사 교회], 프란체스코회[Franciscan], 카르멜회[Carmelite], 베네딕트회[Benedictine]와 다른 수도원과 수녀원 등, 그리고 미세리소르디아(Misericordia), 암파로(Amparo), 및 상두앙 바티스타(Sao Joao Batista) 교회 등이 있다. 역사적 중심지로의 독특한 우수성은 초기에 토지를 개인 건물과 공공건물, 정원 등으로 할당할 때 균형을 유지했다는 점이다. 그것은 뜻밖의 경관을 만들어냈다. 예를 들면, 바로크 교회와 수녀원 혹은 많은 예배당 중의 하나는 모퉁이를 돌면서 예상치 못하고 만나게 될 것이다. 주택들은 생동감 있는 색상으로 칠해져 있거나 세라믹 타일을 붙였다. 이처럼 세심하게 장식된 주택들의 세련미는 단순성과 매혹적인 대조를 이룬다. 최근 몇 십 년간 많은 예술가들의 찬사를 받는 예술의 도시 올린다는 많은 보존 대책이 필요하다. 그라사 교회와 구 예수회 대학, 카르무 수도원[Convent do Carmo]과 주교궁 등과 같은 뛰어난 건물은 거의 완전히 재건되었다. 새로운 건물의 증축은 기본 계획에 의해 규제되었으며, 1979년 보호 구역이 확대되었다.

출처 : 댕견 그리고 우리
글쓴이 : 카페지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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