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염소의 힘 / 김호균

문근영 2018. 1. 2. 00:05

염소의 힘

 

  김호균

 

 

 

말뚝에 매인 줄을 버리고 혼자서 길을 가는 염소야

 

너의 앞무릎이

나무의 옹이처럼 박혀 있는 것을 보았을 때,

내가 아는 누군가가 무릎 꿇고서도

한사코 일어서는 그 몸부림을 보는 것 같아 가슴 아팠다

 

이승에 식구도 하나 없이

사람들의 유원지를 질러가는 염소야

 

네가 버티는 힘은 무엇이냐

 

내가 생각하기로,

네가 살아 있는 힘은 들이받는 뿔이 아니라,

너의 그 앞무릎이었다, 생각한다

 

세상을 알려면 세상에 무릎을 대야 하고,

거기서 더 넘으려면 그 무릎 옹이가 무늬져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너의 성난 뿔을 들이받을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

오늘도, 동전만한 너의 굳은살의 앞무릎이

길을 몰고 간다 꽃샘바람을 몰고 간다

 

 

 

                       —《문학들》2016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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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균 / 1962년 光州 출생.  1994년 〈세계일보〉신춘문예에 시 「세숫대야論」당선.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엄정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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