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소의 힘
김호균
말뚝에 매인 줄을 버리고 혼자서 길을 가는 염소야
너의 앞무릎이
나무의 옹이처럼 박혀 있는 것을 보았을 때,
내가 아는 누군가가 무릎 꿇고서도
한사코 일어서는 그 몸부림을 보는 것 같아 가슴 아팠다
이승에 식구도 하나 없이
사람들의 유원지를 질러가는 염소야
네가 버티는 힘은 무엇이냐
내가 생각하기로,
네가 살아 있는 힘은 들이받는 뿔이 아니라,
너의 그 앞무릎이었다, 생각한다
세상을 알려면 세상에 무릎을 대야 하고,
거기서 더 넘으려면 그 무릎 옹이가 무늬져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너의 성난 뿔을 들이받을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
오늘도, 동전만한 너의 굳은살의 앞무릎이
길을 몰고 간다 꽃샘바람을 몰고 간다
—《문학들》2016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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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균 / 1962년 光州 출생. 1994년 〈세계일보〉신춘문예에 시 「세숫대야論」당선.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엄정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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