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720)/ 콜롬비아
산아구스틴 고고 공원(San Agustin Archaeological Park; 1995)
San Agustín Village
Tumb with deity
An Eagle or Condor holding a snake
우일라 주[Department of Huila] 산아구스틴과 산호세 데 이스노스[Municipalities of San Augustin and San Jose de Isnos]에 위치한 산아구스틴 고고 공원에는 남아메리카에서 가장 큰 규모의 종교 기념물과 거석상이 야생의 장엄한 경관 속에 우뚝 서 있다. 신들과 상상의 동물들이 추상적으로 또는 사실적으로 잘 표현되어 있다. 이들 예술품들은 1세기∼8세기까지 번성했던 북부 안데스[Northern Andes] 문화의 창조성과 상상력을 보여 준다.
산아구스틴 고고 공원에 있는 고고 유적의 거석상은 북부 안데스의 험준한 열대 환경에서 번영했던 스페인 정복 이전에 존재했던 문화의 예술적 창조성과 상상력을 생생하게 보여 준다. 유적이 발견된 산아구스틴은 같은 이름의 도시에서 2km 떨어진 곳에 있다. 이 유적의 정상에는 눈이 덮여 있으며 높이는 해발 1,800m, 면적은 2,000㎢에 달한다. 농경기 이전 시대인 기원전 3300∼기원전 600년에 이곳에는 현무암 조각을 사용하면서 기본적인 석기 기술을 보유한 사람들이 사회를 이루고 있었다. 가장 기본적인 식량은 야생 과일이었고, 사냥은 많이 이뤄지지 않았다. 이들의 정치적・사회적인 구조는 알려져 있지 않으며, 혈족 사회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알토 데 로스이돌로스(Alto de Los Idolos)는 마그달레나(Magdalena) 강 우측 둑에, 더 작은 알토 데 라스피에드라스(Alto de las Piedras)는 더 멀리 북쪽에 있다. 이 두 곳은 산아구스틴의 주요 지역과 마찬가지로 산호세 데 이스노스(San Jose de Isnos) 지방에 속하며, 여기에는 다양한 유적이 있다. 대부분의 지역은 무덤, 고대의 길, 들판의 경계선, 배수로, 인공 기단의 증거와 관련된 고고 경관들이다. 이러한 곳은 신성한 땅으로, 순례지 또는 조상을 경배했던 장소였다. 높이 4m 이상에 무게가 몇 톤에 달하는 신관의 호위대들은 응회암과 화산암으로 조각되어 있으며, 이 거석상은 장례실과 거석 석관・매장지를 지키는 역할을 하였다. 주요 고고 유산으로는 인공 고분과 계단식 단・석상이 있는 라스 메시타스(Las Mesitas)가 있고, 돌침대에 조각된 종교적 유산이 있는 푸엔테 데 라바파타스(Fuente de Lavapatas)가 있으며, 전 지역에서 온 석상의 표본이 있는 보스케 데 라스 에스타투아스(Bosque de Las Estatuas)가 있다. 기원전 7세기에는 농사를 짓고 그릇을 사용한 새로운 사회가 이 지역에 등장했다. 초기 시대로 알려진 이 시기는 족장이 지배하는 작은 촌락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사람들은 평지나 완만한 경사지에서 옥수수를 재배하고 살았다. 하지만 계단식 단이나 배수 시설은 만들어지지 않았고 주로 주요 강 근처에서 흩어져 살았다. 목재를 조각하기 시작했지만, 이 시기에 석재 조각을 하지는 않았다. 한편 펴묻기 방식은 수직 갱로가 나 있는 무덤에 간단한 부장품과 함께 조성되어 있으며, 기원전 3세기나 2세기까지 지속된 듯하다. 이곳의 문화는 콜롬비아 남서쪽의 문화와 연계되어 기원후까지 이어진다. 방사성 탄소 측정 방법에 따르면 이곳에 최소 기원전 1세기 쯤에 금세공이 등장했고, 다음 시기에 부쩍 발전했음을 알 수 있다. 1세기, 이 지역에는 문화적 변화가 있었다. 석조 예술이 번성했는데, 이를 ‘아구스틴 문화[Agustinian culture]’라고 한다. 이 문화는 ‘지역적 고전[Regional classic]’으로 알려진 이 문화는 남서쪽의 다른 지역과 연계되어 전체 사회를 발전시켰다. 인구 밀집도가 눈에 띄게 늘었으며, 초기 거주지에 다시 사람이 살기 시작했다. 언덕의 정상에 새로운 주거지가 조성되어 오랜 기간 유지되었다. 여전히 옥수수 경작에 기반을 둔 경제였고, 인구가 늘면서 새로운 농경지를 개척했다. 이후 상당한 사회적 통합이 있었고, 족장들에게 권력이 집중되었다. 덕분에 방대한 작업이 가능했다. 수백 개의 석상이 조각되었으며, 일부는 크고 아주 복잡한 작업이었다. 거대한 기념물과 계단식 단, 언덕, 사원으로 추정되는 건축물은 복잡한 종교 세계와 마법 숭배를 반영하고 있다. 안데스의 심장인 산아구스틴 지역과 엘 우일라(El Huila) 지방에는 무서운 얼굴을 한 신, 곤봉으로 무장한 전사, 둥근 눈과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신화 속의 영웅 등 300개의 거석상이 있다. 이러한 문화적 변화는 8세기에 종말을 고했는데, 기념 건축물과 석상 조각이 버려진 데서 이를 추정할 수 있다. 같은 기간에 콜롬비아 남서 지역에서도 동일한 현상이 발생했으며, 이것은 이 지역의 문화적 통합이 해체된 것임을 의미한다. 아마존 지역의 카케타 강 상류[Upper Caqueta]에 살던 사람들이 새로운 농경 기술을 보유하고 서기 1000년에 이 지역에 정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스페인이 정복하기 전까지인 마지막 기간 동안에는 복잡한 전통 수공예품이 크게 줄었는데, 이는 인구 증가를 야기한 농경 기술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문화적으로는 크게 발전하지 못했음을 시사한다. 주거지와 농경지는 모두 언덕 경사면으로 이동했고, 그러면서 주택과 경작지의 계단식 경사 구조와 낮게 경사진 배수 시설이 만들어졌다. 사회 구조는 앞선 시기에 비해 덜 복잡했지만 위계 구조는 더 발달했다. 작은 혈족 공동체였던 이 사회는 전쟁이 있을 경우에만 일시적으로 더 큰 공동체로 발전했다가 그 후 해체되었다. 스페인 사람들이 발견한 이 지역의 마지막 정착민은 안다키스(Andakis)와 얄코네스(Yalcones)로, 이들은 17세기까지 이곳에 거주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열대 우림으로 돌아갔다. 이 지역의 사회 구조나 농경 구조로는 스페인의 종교와 상업적 압력을 버틸 수 없었으며, 결국 이 지역은 식민지 영토로 복속되었다. 산아구스틴에 식민지 정착촌이 등장한 시기는 1608∼1612년으로, 토착민들에게 종교를 전파하는 중심지가 되었다. 스페인 주택들이 들어서고 혼혈들이 이주하면서 이곳은 포파얀(Popayan)과 푸투마요(Putumayo) 정글로 이어지는 경로의 교차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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