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던 길 멈추고

[스크랩] 북한 땅의 조선 왕릉 - 잊혀 진 태조의 선대 왕릉들

문근영 2017. 9. 15. 04:17

북한 땅의 조선 왕릉 - 잊혀 진 태조의 선대 왕릉들


목조(穆祖), 익조(翼祖), 도조(度祖), 환조(桓祖)



북한 내에 있는 조선 왕릉 중 개성 인근의 제릉(태조 비 신의왕후)과 후릉(정종과 정안왕후)의 존재는 알려져 있지만 이 외  태조의 선대 왕릉들의 존재는 잊혀 아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조선 왕릉의 세계문화유산 등재와 관련된 언론의 보도에도 이들 능의 존재는 찾아볼 수 없다.

모든 언론 보도에는 북한 소재 제릉, 후릉 2기를 포함 ‘조선 왕릉 42기’라고만 적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태조 선대 능 6기(능호로는 8기이나 목조와 환조의 능은 쌍릉으로 조성되어 실제로는 6기다.)가 만일 남한 땅에 존재했다면 온전하게 왕릉으로 대접받고 있는 다른 5명의 추존 왕(덕종, 원종, 진종, 장조, 익종)들의 능과 다를 이유가 전혀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북에 있다는 이유로 멀리 떨어진 함경도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기억에서도 잊혀 져 버린 능들이 여기에 있다.

태조는 왕위에 오르면서 중국의 예에 따라 자신의 4대 선조들을 왕으로 추존했고 그들의 묘를 왕릉으로 조성했다.

당연히 이 능들은 그들이 살았던 함경도 일원에 소재한다.

  

 태조 선대 능 목록 

왕, 왕비

태조와

관계

능호

소재지

  

목조(穆祖)

고조부

덕릉(德陵)

경남도 신흥군 가평면 능리 덕릉, 안릉 쌍릉
함북 경흥의 성남(城南)에서 1410년(태종 10)에 이장
효공왕후(孝恭王后)   이씨(李氏)

고조모

안릉(安陵)

익조(翼祖)

증조부

지릉(智陵)

함경남도 안변군 서곡면 능리  
정숙왕후(貞淑王后) 최씨(崔氏)

증조모

숙릉(淑陵)

함경남도 문천군 문천면 능전리  
도조(度祖)

조부

의릉(義陵)

함경남도 흥남시 운남면 운흥리  
경순왕후(敬順王后) 박씨(朴氏)

조모

순릉(純陵)

함경남도 흥남시 마전리  
환조(桓祖)

정릉(定陵)

함경남도 함흥 동쪽 귀주동 정릉, 화릉 쌍릉 
의혜왕후(懿惠王后) 최씨(崔氏)

화릉(和陵)

 

추존된 이들도 다른 왕이나 추존 왕들처럼 신주가 종묘에 모셔졌고 능도 다른 왕릉들과 마찬가지 대접을 받았다.

조선 실록에는 이들 능에 관련된 기록이 왕조 내내 존재한다.

하지만 다른 서울과 인근 경기도에 자리한 왕릉들과는 달리 멀리 함경도에 자리하다 보니 왕들의 참배는 없었지만 능의 관리는 이 지역 지방관들의 중요한 업무였을 것이다.


이들 능의 현재 보존 상태는 잘 알 수 없다. 하지만 한국 전쟁 이후인 1950년대에도 존재가 확인되고 북한 내 고려 왕릉들 대부분이 보존 되어 있음을 생각하면 이 능들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멀리 함경도에서 떨어져 있는 이들 능을 찾아가 볼 날은 언제쯤이 될까?  

 

사진 : <조선고적도보>(조선총독부/1932년)

네이버 카페 <전주 이씨 효령대군 주계군파>에서 가져 왔음.

 


목조 덕릉, 효공왕후 안릉



덕릉, 안릉의 석양과 석호


곡장을 두르고 봉분엔 병풍석을 둘렀는데 난간석은 설치되지 않았다. 봉분을 수호하는 석양과 석호등이 온전하게 남아있다. 

 


덕릉, 안릉 문인석,무인석. 문인석과 무인석이 서 있는 위치의 상, 하 차이가 확연하다.

 


덕릉 장명등. 쌍릉인 덕릉과 안릉의 봉분 앞에는 각각의 혼유석과 망주석이 있다.

 


도조 의릉 

 


도조 의릉 후면


언덕 위에 봉분을 설치하고 그 언덕 아래 정자각이 세워진 일반 왕릉들과는 다르게 봉분 바로 앞에 정자각이 자리하고 있다. 

 


도조 의릉 정자각 

 


도조 의릉 정자각 내부 

 


 도조 의릉 정자각 천정 

 


  


환조 정릉, 의혜왕후 화릉


정릉과 화릉은 하나의 담장 안에 앞뒤로 나란히 즉 안쪽에 정릉, 앞쪽에 화릉을 조성한 상하 이봉릉(上下異封陵)이다.

일반적으로 쌍릉은 좌·우로 조성하지만 이것은 풍수지리상 능의 위치를 정혈에 두고자 이루어진 설계이다.

이러한 상하 이봉 형태의 쌍릉은 효종과 인선왕후의 무덤인 여주의 영릉(寧陵)과 경종과 선의왕후의 의릉(懿陵)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환조 정릉, 의혜왕후 화릉 측면

  


 환조 정릉, 의혜왕후 화릉 전면

 

환조 정릉, 의혜왕후 화릉 문, 무인석 

 

동독의 건축 설계사였던 에리히 로베르트 레셀(1919~1975)은 한국 전쟁으로 파괴된 북한 재건을 돕기 위한 사회주의 국가들의 건설 지원단으로 파견되어 1956~1957년 1년간 함흥과 흥남의 도시계획 팀장으로 근무했다.

레셀은 자신이 근무했던 함경남도 일원과 그가 여행했던 개성과 평양 등을 찍은 사진 삼천여 장을 남겼는데 그 중 250여 장이 실린 책이 출판되었다. 그 사진들 중에 북한의 문화재 사진들도 여러 장 들어있는데 반갑게도 함경남도 일원에 있던 태조의 선대 왕릉 사진들 3장이 포함되어 있어 1950년대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아래 사진 : <동독 도편수 레셀의 북한 추억/효형출판/2000년> 중에서 

 


목왕 덕릉비, 효비 안릉비


태조는 자신의 고조부모를 1394년(태조 3) 11월 6일에 목왕(穆王) 효비(孝妃)로 추존하였다. 그들의 묘인 덕릉과 안릉에 세워진 비석일 것이다. 목왕과 효비는 태종 때 목조와 효공왕후로 존호가 바뀌었다. 

 


익조 지릉 석물


태조의 조부인 익조의 지릉의 무인석과 동물 석상이다. 동물 석상에 올라탄 아이들은 레셀의 동료인 동독 기술단의 자녀들이다. 

 


 환조 정릉, 의혜왕후 화릉 동쪽면 

 

 

[추존된 태조의 선원들] 

 

목조(穆祖), 효공왕후(孝恭王后)

양무(陽茂) 공의 아들로 이름은 안사(安社)요, 고려 때에 벼슬하여 의주 지사(宜州知事)를 지내고 원(元)나라로 들어가 벼슬하여 남경(南京) 오천호(五千戶)의 다루가치(達魯花赤; 원나라 지방 관청의 장관직)가 되었다가 1274년(고려 원종 15) 3월 10일에 승하하였다.

능은 덕릉(德陵)으로 함흥(咸興) 서북쪽 가평사(加平社; 現 咸南 新興郡 加平面 陵里)의 계좌(癸坐)에 있다.

처음에는 함북 경흥의 성남(城南)에 있었는데 1410년(태종 10)에 이 곳으로 이장하였다.


효공왕후(孝恭王后) 이씨(李氏)는 본관이 평창(平昌)이요, 천우위장사(千牛衛長史) 공숙(公肅)의 딸이며 5월 15일에 승하하였다. 1394년(태조 3) 11월 6일에 효비(孝妃)로 추존되고, 그 뒤 태종이 효공(孝恭)이라고 존호를 더 올렸다.

능은 안릉(安陵)으로 목조의 덕릉과 쌍릉이다.


익조(翼祖), 정숙왕후(貞淑王后)

목조의 제4남으로 이름은 행리(行里)요, 함경도 덕원(德源) 적전사(赤田社)에서 태어났다. 원나라 조정으로부터 천호(千戶) 벼슬을 이어받고 9월 10일에 승하하였다.

1394년(태조 3) 11월 6일에 태조 고황제가 익왕(翼王)으로 추존하고 그 뒤 태종이 강혜성익(康惠聖翼)이라고 존호를 더 올렸다. 능은 지릉(智陵)으로 함경남도 안변군 서곡면 능리 임좌(壬坐)에 있다.


정숙왕후(貞淑王后) 최씨인데 본관은 등주(登州)요, 호장 기열(基烈)의 딸이다. 9월 20일에 승하하였다.

1394년(태조 3) 11월 6일에 정비(貞妃)로 추존하고 태종이 정숙(貞淑)이라고 존호를 더 올렸다. 능은 숙릉(淑陵)으로 함경남도 문천군 문천면 능전리 갑좌(甲坐)에 있다.

전해 오는 이야기로는 정숙왕후가 승하하여 상여가 출발하여 지릉으로 향하는 도중에 한 고개에 이르자 상여가 갑자기 저절로 부서져 더 갈 수가 없었다. 이에 연을 날려 내려 앉은 곳에 장례를 모시니 이곳이 바로 숙릉 자리라 한다. 그래서 그 당시 사람들이 모두 이상히 여겨 그 고개 이름을 거파령(車破嶺)이라 하니 지릉의 서북쪽 10리 되는 곳이라 한다.


도조(度祖), 경순왕후(敬順王后)

익조의 제4남으로 이름은 춘(椿)인데 처음 이름은 선래(善來)요, 몽고명은 패안첩목아이다. 함흥(咸興) 송두등리(松頭等里)에서 탄생하여 1342년(고려 충혜왕 복위 3) 7월 24일에 승하하니 고려 조정에서 찬성사(贊成事)를 추증하였다.

1394년(태조 3) 11월 6일에 도왕(度王)으로 추존되고 후에 태종이 공의성탁(恭毅聖度)이라고 존호를 올렸다. 5남 3녀를 두었다. 능은 의릉(義陵)으로 함경남도 흥남시 운남면 운흥리 임좌(壬坐)에 있다.


경순왕후(敬順王后) 박씨는 본적은 문주(文州)요, 원나라에서 천호 벼슬을 받고 조선조 때 문하시중에 증직된 안변부원군(安邊府院君) 박광(朴光)의 딸이고 7월 23일에 승하하였다. 1394년(태조 3) 11월 6일에 경비(敬妃)로 추존되고 태종이 경순(敬順)이라 존호를 올렸다. 능은 순릉(純陵)으로 함경남도 흥남시 마전리 임좌(壬坐)에 있다.


환조(桓祖), 의혜왕후(懿惠王后)

도조의 제2남으로 이름은 자춘(子春)이다. 1315년(고려 충숙왕 2)에 탄생하고 고려 때에 벼슬하여 영록대부(榮祿大夫) 판장작감사(判將作監事) 삭방도 만호 겸 병마사(朔方道萬戶 兼 兵馬使)를 지냈고 1360년(고려 공민왕 9) 4월 갑술일(<태조실록>에는 庚戌日)에 승하하니 46세였다. 문하시중(門下侍中)에 추증되었다.

1394년(태조 3) 11월 6일에 환왕(桓王)으로 추존되고 태종이 연무성환(淵武聖桓)이라고 존호를 더 올렸다. 1795년(정조 19) 영흥 본궁(本宮)에 신주를 모실 때, 대신과 예조 당상관을 보내어 4월 27일에 본궁 이안청(移安廳)에서 신판(神板)을 만들어 4월 26일 본궁 정전(正殿)에 모셨다. 

능은 정릉(定陵)으로 함경남도 함흥 동쪽 귀주동(歸州洞)에 있으며 1360년 8월에 장례지냈다. 신도비와 표석이 있다. 1900년(광무 4)에 도의 책임자에게 명하여 비석을 다시 세웠는데 비문과 글씨를 고종 황제가 친히 썼다.


의혜왕후(懿惠王后) 최씨의 본적은 영흥(永興)이요, 원나라에서 천호(千戶)를 받고 조선조에서 판문하(判門下) 영흥백(永興伯) 정효공(靖孝公)을 추증받은 최한기(崔閑奇)의 딸이다. 삼한국대부인(三韓國大夫人)의 봉작을 받고 2월 24일에 승하하였다.

1394년(태조 3) 11월 6일에 의비(懿妃)에 추존되고 태종이 의혜(懿惠)라 더 존호를 올렸다.

능은 화릉(和陵)으로 환조의 정릉과 쌍릉이다. 1900년(광무 4)에 도의 책임자에게 명하여 비석을 다시 세웠는데 비문과 글씨는 고종 황제가 친히 썼다.

정릉과 화릉은 하나의 담장 안에 앞뒤로 나란히 즉 안쪽에 정릉, 앞쪽에 화릉을 두었는데 이것은 풍수지리상 능의 위치를 정혈에 두고자 이루어진 설계이다.

출처 : 불개 댕견
글쓴이 : 카페지기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