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뿔
신용목
은빛 문을 달고 하늘이 흘러간다 부드러운
경첩의 고요를 따고
꽃잎 하나 문을 열고 들어갔다
나왔다 가지에서 바닥까지
미닫이 햇살이, 드나드는 것들의 전후를 기록했다 오로지 구름의 필적으로
석양의 붉게 찍힌 이면지 위에
새의 이름으로만 허락된 통행,
문밖으로 추방된 사람들이 손등처럼 말아쥔 머리를 세워 두드리면
주인은 꽃잎을 날리며 덜컹거리는 한 계절을 닫는다 철문의 마른 소리처럼
반짝이는 빗장 위로 적막이 스칠 때
어둠보다 굳게 닫힌 허공의,
문을 뚫는 바람은 슬픔의 뿔
바닥에 뒹구는 꽃잎의 휜 등을 보면 어느 슬픔이 바람이 되는지 알리, 어느 바람이 뿔을 가는지
문틈에 찢겨 환하게 피 흘리는
석양의 눈먼 독법으로
혹은 구름의 행갈이로
새가 날면, 차례차례 열리는 문 저 끝에서 먼 밖을 내다보는 주인의 두 귀에
울음으로 짠 밤의 그물을 펼치리
그리하여
경첩에 박힌 못처럼 별이 빛나고
사람들의 머리가 부풀고
밤하늘 아름다운 곡선을 따라 허공의 모든 문이 회전하기를, 그리하여 햇살은
가지에서 바닥까지 슬픔의
- 시집 『아무 날의 도시』 2012년 문학과 지성사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황봉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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