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문화재 수난사>(29) /
도둑맞은 관덕동 석탑(觀德洞 石塔)의 돌사자상 한 쌍
[의성 관덕동 석사자] 보물 202호
[의성 관덕리 3층 석탑] 보물 188호
30여 년 전에 경북 의성군 단촌면 관덕동의 ‘3층 석탑’(현재 보물 188호)에서 경주 박물관으로 옮겨져 있는 마멸이 심한 암수 한 쌍의 돌사자가 있다. 암놈의 크기는 높이가 52cm, 수놈은 35cm. 특히 암사자상에는 배 밑 양편과 앞발 사이로 들어가 젖을 빨고 있는 세 마리의 새끼사자가 귀엽게 곁들여져 있는데 이런 자연스런 사실 표현의 어미와 새끼사자의 상은 시대를 불문하고 국내 유일의 진귀한 조각품이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동양 전체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가장 오래된 통일신라시대의 유물로서 일찍부터 일본인 전문가들도 경탄했었다.
1934년 1월에 발행된 일본의 <건축 잡지>에 의성 관덕동 석탑에서 일찍이 네 마리의 돌사자상을 조사했던 일본인 전문가로 동경제국대 건축과 교수인 후지시마 가이지로(藤島亥治郞)가 다음과 같은 말을 쓰고 있다.
“(석탑에서) 가장 흥미 있다고 말할 것은 상층 기단 위의 네 귀퉁이에 놓여 있는 4개의 석사자이다. 마멸되긴 했으나 자세히 조사해보건대 암·수 두 쌍이다. 암사자는 겨드랑 밑으로 새끼사자를 넣고 젖을 빨게 하였다. 암사자를 곁들임은 중국에서도 송대 이상으로 오래된 것을 구하기 힘들며, 조선에서는 각 대를 통하여 그 예가 없고, 일본에서도 가마쿠라시대 이전으로 올라가면 발견할 수 없다. 동양에서 아사(새끼 모양의 조각품)로 최고의 예가 된다.”
문제는 이 일본인 전문가가 경탄해 마지않은 유물 평가에 있지 않다. 후지시마가 그런 얘기를 써서 발표한 지 5년 후인 1939년에 이르러 그때까지 관덕동 3층 석탑을 분명히 장식하고 있던 그 두 쌍의 네 마리 돌사자 중 상태가 더 완전했던 것 같은 한 쌍을 일본인 악당이 감쪽같이 훔쳐갔기 때문이다. 후지시마의 앞의 글로 미루어 도둑맞은 한 쌍 중의 암사자도 역시 현재 경주 박물관에 옮겨져 있는 암사자처럼 젖을 빨고 있는 새끼들은 배 밑에 거느리고 있었을 것으로 믿어진다. 그것은 경주 불국사 다보탑(국보 20호)의 네 마리 돌사자 중 몹시 깨지고 마멸이 심한 한 마리만 남겨 놓고 두 차례에 걸쳐 세 마리를 약탈해 간 사실과 똑같은 악랄한 일본인 무법자의 소행이었다.
후지시마는 두 쌍(네 마리)의 돌사자가 고스란히 놓여 있을 때에 관덕동 3층 석탑을 조사했다. 그러나 일본인 무법자의 석탑 및 돌사자의 일괄 약탈 및 반출 기도는 그 전에 있었다. 후지시마도 그 사실을 적고 있다.
“탑 전체(돌사자 포함)가 1931년에 대구의 모 씨(물론 일본인 골동품상이었거나 배후의 교사자)에게 팔려 해체가 착수되었다가 (주민들의 반발로) 단념하고 종전과 같이 다시 쌓아 올렸다고 한다.”
해방 후 전문가들이 현지를 조사하고 주민들에게 들은 바로는, 대구에 살던 어떤 일본인이 불법적으로 탑을 사서 모조리 해체한 후 탑재들을 하나씩 가마니로 싸서 의성 역으로 실어 내갔을 때 주민들이 들고 일어나 일대 충돌이 있었다고 한다. 결국 일본인 무법자와 그 일당의 석탑 반출 음모는 주민들의 살기등등한 반발에 부딪쳐 실패로 돌아갔고, 그 후 탑재들은 주민들에 의해 원위치로 되 옮겨져 가서 예전대로 복원되었다.
1차 수난 때엔 돌사자들도 무사했었다. 그러나 이 사자들의 안전은 결국 10년을 넘기지 못했다. 1939년 어느 날, 두 번째로 악당들이 침입해 왔다. 새끼사자를 거느린 두 쌍의 돌사자 중 보존 상태가 좋은 쪽의 한 쌍이 목표물이었다. 그들의 범행은 완벽하게 성공했다. 후지시마가 “한국의 유일한 유물일 뿐 아니라 동양에서도 가장 오랜 귀중한 조각품”이라는 가치 평가와 함께 위치를 소개해주고 있었기 때문에 범인들은 그 돌사자 약탈 작전을 아주 간단히 해치울 수 있었을 것이다.
총독부는 뒤늦게 관덕동 3층 석탑을 고적·유물로 등록시키고(현재 보물 188호), 한 쌍을 도둑맞고 한 쌍만 남은 돌사자를 현지의 보존이 어렵다하여 경주 박물관으로 옮겨 갔다. 1939년 10월의 일이었다. 그러나 도난당한 한 쌍의 돌사자는 지금까지도 행방이 묘연하고, 경주 박물관에서 보호하고 있는 마멸이 심한 한 쌍만이 보물 202호로 지정돼 있다.
'가던 길 멈추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가야산 해인사 일원(伽倻山 海印寺 一圓) (0) | 2017.02.23 |
---|---|
[스크랩] 거창 둔마리 벽화 고분(屯馬里 壁畵古墳) (0) | 2017.02.23 |
[스크랩] 거창 고견사 동종(古見寺 銅鍾) (0) | 2017.02.21 |
[스크랩] <한국 문화재 수난사>(28) / 굴불사(掘佛寺) 터 4면 석불(四面石佛)의 수난 (0) | 2017.02.21 |
[스크랩] 거창 농산리 석조 여래 입상(農山里 石造如來立像) (0) | 2017.02.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