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독립운동가가 없었다면 광복도 없었다
[서평] 이윤옥 시인의 ≪서간도에 들꽃 피다≫ 2권
“권총으로 삶을 마감한 아들
주검을 확인하는
어미의 가슴 속에 구멍 하나 뻥 뚫렸다
휑하니 불어오던
그 겨울의 모진 바람 한 자락
뚫린 가슴을 휘젓는다”
위는 최근 펴낸 이윤옥 민족시인의 “시로 읽는 여성독립운동가 20인 시집” ≪서간도에 들꽃 피다≫ 2권(도서출판 얼레빗)에 나오는 “종로경찰서에 폭탄 던진 김상옥 어머니 ‘김점순’” 시 일부다. 아들의 주검 앞에서는 살아있는 어미도 이미 주검이다. 앞서 간 자식을 어미는 가슴에 묻는다고 했던가? 하지만,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지고 자신도 권총으로 삶을 마감한 아들 김상옥을 바라보며 그의 어머니는 당당했을 것이라고 이 시인은 말한다.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져 세계만방에 조선의 독립 의지를 떨친 김상옥(金相玉) 의사의 어머니인 김점순 여사는 아들의 의열투쟁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면서 항일투쟁을 전개할 수 있게 도운 애국지사이다. 어릴 때부터 석전놀이(석전‘石戰’은 고구려 때부터 하던 놀이로 차전놀이 등과 함께 조선에서 하던 놀이)를 즐기던 아들이 다칠까 늘 염려되었으나 이것이 폭탄 투척으로 이어질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을 일이다.”
이번 <2권>에서 눈에 띄는 것은 세계에 그 유례가 없는 6형제 독립운동가 가운데 우당 이회영의 아내 이은숙, 만주호랑이 일송 김동삼 며느리 이해동, 대한민국임시정부 초대국무령(대통령) 석주 이상룡의 손자며느리인 허은 여사 같은 쟁쟁한 독립운동가의 아내요 며느리들 이야기가 독자들의 가슴을 파고든다.
열혈 독립운동가들 뒤에서 묵묵히 뒷바라지를 하던 이들의 이야기는 먹을 것 입을 것이 부족했던 남의 땅 만주벌판의 아픈 기억으로 시작된다. 임시정부 초대국무령(대통령)이신 시할아버님 석주 이상룡의 손자며느리 허은 여사는 회고한다.
“매일 같이 회의를 했다. 3월 초 이 집으로 이사 오고부터 시작한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회의가 섣달까지 이어졌다. 서로군정서는 서간도 땅에서 독립정부 역할을 하던 군정부가 나중에 임시정부 쪽과 합치면서 개편된 조직이다. 통신원들이 보따리를 짊어지고 춥고 덥고 간에 밤낮으로 우리집을 거쳐 갔다. 전 만주 정객(政客)들 끼니는 집에서 해결해야 했고….
의복도 단체로 만들어서 조직원들에게 배급했다. 부녀자들이 동원되어 흑광목과 솜뭉치를 산더미처럼 사서 대량생산을 했다…….”
▲ 석주 이상룡 선생의 손자며느리 허은 애국지사 (왼쪽)
상록수의 모델 안산 샘골의 최용신 애국지사에 대한 기사
≪서간도에 들꽃 피다≫ <2권>은 3·1절을 앞두고 20명의 여성독립운동가를 뽑아 이들에게 드리는 헌시와 더불어 이들의 삶을 재조명한 시집이다. 작년 8·15일에 나와 100여 곳의 언론사에서 비상한 관심을 보였던 <1권>에 이어 이번<2권>에서 다루고 있는 여성독립운동가는 20명으로 1권 2권을 합하면 모두 40명에 이른다.
현재 정부로부터 훈·포장을 받은 남성 독립운동가는 12,000명인데 견주어 여성들은 204명에 불과하다고 이윤옥 시인은 말한다. 그나마도 이들 여성독립운동가의 삶은 민중과 역사로부터 조명받지 못한 채 서간도의 이름 없는 들꽃으로 남아있는 것이 안타까워 이 시집을 쓰게 되었다고 말하는 시인의 눈빛은 초롱초롱하다.
이번 <2권>에서 다룬 여성독립운동가들은 허은, 이은숙, 이해동 여사처럼 묵묵히 독립운동가를 뒷바라지한 분, 김마리아, 김순애, 차미리사, 최용신, 하란사처럼 교육운동에 뛰어들어 무지한 조선인을 깨우치고 독립운동에 앞장섰던 분, 오희영, 이화림 같이 직접 광복군으로 뛴 분이 있는 가하면 제주의 해녀조합을 이끌면서 착취와 식민지 정책에 맞서 싸우던 부춘화 여사, 기생이면서도 목숨을 걸고 만세운동을 이끈 변매화 등 그간 알려지지 않은 애국지사를 다양하게 다루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
▲ 해산물 착취와 식민지 정책에 항의하던 물허벅 차림의 해녀들 (1930년대)
<2권>에서 다룬 인물 가운데는 특히 “남에는 유관순, 북에는 동풍신”이란 제목으로 소개한 동풍신 애국지사처럼 남북한의 이념으로 갈라진 정치체제 하에서 북쪽출신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알려지지 않은 분들에 대한 국민적 무관심을 질타하는 부분이 눈에 띈다. “이화림” 역시 그런 인물로 백범 김구의 한인애국단 핵심인 윤봉길, 이봉창과 어깨를 나란히 겨루던 분이다. 이 시인은 말한다. “그간 남한이라는 공간에서만 바라보던 독립운동가들의 참다운 애국정신을 북쪽 출신으로도 시선을 돌려 그들의 이야기를 끌어내야 한다”고 말이다.
시인은 이어서 “우리 겨레에게 ‘서간도’는 아픔의 땅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이름 없이 살다간 여성독립운동가들은 한 송이 들꽃이다. 조선의 독립을 보지 못하고 중국땅에서 죽어간 사람들의 무덤에 핀 노오란 들국화를 현지인들이 애처로워 부른 이름 ‘챠우쉔화(朝鮮花)’는 그러나 한 번도 진 적이 없다. 오늘도 우리의 가슴 속에 영원히 피어 있는 꽃이다.”라고 말이다.
▲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진 김상옥 어머니 김점순 애국지사의 기사 (왼쪽)
3·1 만세운동에 앞장섰던 안성기생 변매화 애국지사
이제 곧 93돌 삼일절이 다가온다. 이날 유관순 열사뿐만이 아니라 함경북도 명천의 동풍신, 안성의 변매화 같은 애국지사도 만세운동의 맨 앞줄에 있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이번 삼일절이야말로 우리가 그간 잊고 기억하지 못했던 여성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를 다룬 시집 ≪서간도에 들꽃 피다≫를 읽으며 애국지사들의 뜨거운 나라사랑 정신을 되새겨보아야 할 일이다.
눈물로 지새며 이 시집을 썼다
[대담] ≪서간도에 들꽃 피다≫ <2권> 지은이 이윤옥 시인
- 이번 <2권>에서 가장 가슴을 울린 애국지사는 누구였나?
“쟁쟁한 독립운동가 뒤에 숨어서 가슴 아픈 뒷바라지를 했던 이은숙, 허은, 이해동 세분이다. 이들에 대한 책이나 자료를 찾아 읽으면서 나는 여러 번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해 글쓰기를 중단하곤 했다. 수없이 들고나는 독립군들의 끼니 걱정부터 땔감이며 옷가지를 마련하는 일로 날을 지새우다가 피로에 지쳐 하마터면 죽 솥에 빠져 죽을 뻔한 일을 겪으면서도 단 한 번도 절망의 끈을 놓지 않은 분들이야말로 애국자 중에서도 애국자요, 독립투사 중에서도 독립투사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또 기생의 신분임에도 만세운동을 외면하지 않고 가장 앞에 서서 독립을 외쳤던 안성기생 변매화, 파도치는 바다 속을 가족의 생계를 위해 뛰어들어야 하는 해녀 신분에도 식민지 백성의 착취를 가만두고 보지 않은 제주의 부춘화 여사의 삶도 감명 깊게 느껴졌다.
- <2권>을 쓰는데 어떤 어려움이 있었나?
“가장 어려운 것은 자료부족이다. 남성위주의 기록문화가 여성들을 소외시켰다. 그래서 그런지 연구서들도 남성위주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또 한 가지 어려운 점은 출판 비용이다. 국내에 숱한 출판사가 있지만 돈이 되지 않아서인지 선뜻 책을 찍어주는 곳이 없다. ▲ 시인 이윤옥 그래서 손수 원고를 쓰고 편집, 출판까지 하고 있다. 다 행히 나의 이런 뜻을 이해하는 동지들이 책을 사주고 인쇄비에 보태라고 책 한 권 값이라도 보내주고 있어 이 일을 지속하고 있다. 이 책을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읽히고 싶다. 많은 홍보와 관심을 부탁한다. ”
- 여성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자료가 빈약하다고 들었다. 어느 정도인가?
“그렇다. 정부로부터 훈·포장 받은 애국지사의 자료가 단 세 줄뿐인 사람도 있다. 자료를 찾으려고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했고 자료가 있다면 전국 어디라도 달려갔다. 부족한 자료는 후손을 만나 보충하기도 했다. 특히 시를 써야 하는 관계로 그들의 고향과 무덤이 있는 곳에도 여러 차례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이것으로 끝난 게 아니다. 아직 갈 길이 멀다. 아직 세상에 이름 석 자를 알리지 못한 많은 여성독립운동가가 나를 기다리기 때문에 분발하고 있다.”
- 이런 책이라면 국가 보훈처에서 지원받을 수도 있지 않나?
“그렇지 않아도 문을 두드려 봤으나 해당하는 부분이 없는 것 같다. 나의 작업은 책 한 권에 애국지사를 여러 명 다룬 데 반해 보훈처의 지원 요건에는 그런 항목이 없다. 설사 있다 해도 절차가 까다로워 사실상 지원은 기대하기 어렵다. 금전적인 지원은 차치하고 자료 요청에 대해서도 무성의한 경우가 많았다.
- 준비하면서 혹시 기억나는 일화라도 있는가?
“물론 많다. 특히 이번 <2권>에 실린 허은 애국지사의 아드님이며, 대한민국임시정부 초대국무령(대통령) 석주 이상룡 선생의 증손자인 이항증 선생은 자료 하나라도 더 구해 주려 애를 많이 쓰셨다. <1권> 시집 10권을 보내 드렸는데 이 책을 모두 팔았다고 어느 날 봉투에 책값을 고이 넣어 전해주실 때는 가슴이 뭉클했다.
책이 나오면 기증본으로 몇백 권을 발송비를 부담하며 여러 곳에 보내 보지만 책을 받았다는 말도 없는 게 세상인심이다. 그래서 그런지 책을 받고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라도 건네는 분들을 만나면 새로운 독립군 동지를 만난 기분으로 힘이 솟는다.”
지난번 <1권> 때는 권기옥 애국지사의 아드님이신 권현 광복회 의정부지회 사무국장님이 적극적으로 도와주셨는데 역시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뭔가 달라도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제주 해녀 부춘화 애국지사를 찾아 제주에 갔을 때 제주 시청의 강봉수 선생은 열일을 제치고 관련 기념관 등을 안내해주었으며, 충남 아산의 이애라 애국지사 충의비를 찾았을 때는 마을 이장님께서 몸이 아픈 아내를 병원에 두고 달려와 안내해주는 열의를 보였다.
또한 <수원일보(발행인 이호진)>는 꽤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1권>의 시들을 연재해주고 있다. 이처럼 많은 분의 사랑과 관심에 힘입어 <2권>이 나오게 되었다. 정말 기쁘다.”
- 앞으로의 계획은?
“겨우 여성독립운동가를 다룬 시집 <2권>이 나왔다. 앞으로 8권은 더 써야 훈·포장자 204명을 완결한다. 그리고 지난번에 펴낸 친일문학인들의 풍자시집인 《사쿠라 불나방》도 곧 <2권>을 낼 계획이다. 더불어 작년 10월에 낸 《신 일본 속의 한국문화 답사기》후속편과 우리말 속의 일본말 찌꺼기를 다룬 《사쿠라 훈민정음》 후속편도 곧 출간을 기다리고 있다.”
대담을 하는 이 시인은 많은 어려움 속에서 글을 쓴다고 했지만 그 모습은 매우 당차 보였다. 그것은 이 시인이 겨레에 대한 사랑이 절절하고, 글쓰기에 대한 내공이 꽉 차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이번 93돌 삼일절을 앞두고 과거를 모르는 어린 자녀에게 나라사랑 정신이 배어 있는 시집 ≪서간도에 들꽃 피다≫ 를 선물한다면 이 시인의 ‘노고’는 결실을 보는 것이리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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