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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일제강점기 기생은 우리나라 연예인의 효시였다

문근영 2016. 6. 29. 11:26

 

일제강점기 기생은 우리나라 연예인의 효시였다

[서평] ≪기생, 조선을 사로잡다≫, 신현규, 어문학사

 

 

 

기생(妓生)이란 무엇인가? 사전에서는 “춤 ·노래 또는 풍류로 주연석(酒宴席)이나 유흥장에서 흥을 돋우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관기(官妓) ·민기(民妓) ·약방기생 ·상방기생 등 예기(藝妓)의 총칭.”이라고 풀어놓았다. 그리고 그 기원을 신라 화랑의 원화(源花)에서 발생하였다고 하는데 그 밖에도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는 기생을 천하게 생각한다. 과연 그럴까? 기생제도가 발전했던 조선시대를 보면 비록 천민계급에 속할지라도 시(詩)·서(書)·화(畵) 그리고 춤에 능한 예술인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나라를 구하는데도 앞장선 평양 계월향, 진주 논개, 가산(嘉山) 홍련 등의 의기(義妓)도 있음을 우리는 안다.

 

그러던 기생을 어째서 천한 화류계 여성쯤으로 바라보게 되었을까? 그리고 어떤 과정을 거쳐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졌을까? 그보다는 일제강점기 기생들의 현주소는 어디일까? 우리는 궁금하다.

 기생,조선을 사로잡다》 책 표지 ⓒ어문학사

                                                                         그런데 이 모든 의문을 단번에 날려버릴 책이 나와서 화제이다. 바로 신현규 중앙대 교수가 쓴 《기생,조선을 사로잡다》(어문학사)가 그것인데 일제 강점기 기생의 모습과 그들의 삶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전통무용이나 음악만 담당하던 기생이 음악기생,무용기생,극단 여배우,대중가요 가수 등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그려낸 것이다.

 

신 교수는 《기생 이야기-일제시대의 대중스타》 《평양기생 왕수복,10대 가수 여왕되다》를 펴낸 저자로 그야말로 기생 분야에 독보적인 필자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당시 기생들은 당당한 엔터테이너로서 여성예술사와 문화사회사 등을 새롭게 구축한 선구자였다. 그 무렵 기생은 한쪽에서 보면 봉건적인 유물로서 배척해야 할 대상이었으나 실제로는 현대적인 대중문화의 스타로 대우받았던 것"이라고 평가한다.

 

책에선 기생들이 영화배우로, 모델로 가수로 발돋움하고 인기를 끈 과정을 밝힌다. 무너져가고 있던 봉건사회의 단면 속에 기생들이 어떻게 근대 문화의 맨 앞장에 설 수 있는지를 밝혀내는 것이다.

 

 

▲ 기생 왕수복(오른쪽), 왕수복의 유행가가 방송을 타고  일본에 전해진다는 조선일보 기사 ⓒ어문학사

 

 

특히 대중스타로 등장한 평양기생 출신의 가수여왕 왕수복 이야기는 누구에게나 관심을 끌게 만든다. 왕수복은 당시 조선일보에 이렇게 소개되었다. “옥방울 굴러가는 구슬 소리 같이 맑고도 아름다운 조선 아가씨의 귀여운 노랫가락이 훨쩍 개인 정월 하늘에 전파를 타고 해외를 달리는 귀여운 소식.” 왕수복의 노래가 유일한 방송이었던 라디오 경성방송국의 전파를 타고 일본에 전해지게 된 것이다.

 

음반회사에서 왕수복을 소개할 때 일부러 기생임을 부각시켜 홍보의 수단으로 삼았다. 하지만, 왕수복은 기생을 바라보는 일반의 눈과는 달리 한창 성가를 올리던 1942년 끝내 예술계와 결별하고 말았다. 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녀의 말을 들어보자.

 

“그때 저는 밤잠을 이룰 수가 없었어요. 나를 그처럼 믿고 사랑하는 조선 청중 앞에서 일본말로 조선 민요를 부른다는 것은 변절, 배신과도 같이 느껴졌어요. 그때 내 나이 25살, 한창 노래를 불러야 할 때였고, 청중의 사랑을 받을 때였지요. 그런데 가요 무대를 버린다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 진짜 비극이었어요. 얼마나 울었는지 아침이면 퉁퉁 부은 얼굴로 회사에 나가곤 했어요."

 

1942년이면 일본 전체가 전쟁의 광풍에 휩쓸리고 있었고, 그 와중엔 지식인들이 대거 친일행위에 가담했을 때이다. 그런 때에 꿋꿋이 민족적 자존심을 지켜낸 왕수복이야말로 어쩌면 당시 대단한 애국자로 칭찬받아 마땅하지 않을까?

 

 

 ▲ 중국과 만주에서 의열단원이 되어 독립운동을 한 기생 현계옥(왼쪽)과 현계옥을 소개한 기사ⓒ어문학사

 

 

왕수복 뿐만이 아니다. 1919년 기미독립운동 이후 일제를 향한 기생들의 외침은 계속되었다고 책은 말한다. 고은 시인의 ≪만인보≫에도 <기생독립단>이란 시가 있다. 그 내용 일부를 읽어보자. “아름다운 김향화 가로되 / 아무리 곤고할지라도 / 조선사람 불효자식한테는 술 따라도 / 왜놈에게는 술 주지 말고 / 권주가 부르지 말하라. / 언니 언니 걱정하지 말아요, / 우리도 춘삼월 독립군이어요.”

 

이는 1919년 3월 29일 수원기생조합 소속의 기생 모두가 경찰서 앞에서 “대한독립만세!”를 부른 사건을 시어로 읊어낸 것이다. 또 같은 해 3월 19일 진주 기생들이 태극기를 앞장세우고 촉석루를 향하며 독립 만세를 외쳤으며, 4월 1일 황해도 해주의 기생들이 손가락을 깨물어 나온 피로써 쓴 태극기를 들고 독립만세를 외쳤다. 그런가 하면 4월 2일에는 경남 통영에서 애기조합 소속 33명의 기생이 소복을 하고 태극기를 든 채 만세운동을 벌인 것 등 책은 기생들의 의로움도 전해준다.

 

 특히 사랑하는 연인인 소설가 현진건의 형 현정건을 따라 만주와 중국에서 유일한 여성 의열단원으로 활약한 기생 현계옥은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되는 인물임을 글쓴이는 외친다.

 

 

        ▲ 애인을 위해 죽음을 선택한 기생 강명화(왼쪽), 강명화 예기를 쓴 소설 "강명화의 죽엄"ⓒ어문학사

 

 

▲ 덕수궁 중화전에서 있었던 궁중 관기 공연 기념 사진ⓒ어문학사

 

 

책에는 또 기생이 사랑하는 애인을 위해 머리털을 자르고 손가락을 잘라냈으며, 결국은 독약을 마시고 애인의 곁을 떠난 강명화의 얘기를 애절하게 적고 있다. 강명화는 “나만 없으면 그 사람은 부모의 사랑을 다시 받을 수 있고, 그러면 넉넉한 가산으로 학문도 충분히 닦아 사회에 윗사람이 될 수 있으리라.”라며 사랑하는 이의 앞날을 위해 죽음을 선택한 것이다. 며칠 뒤 그녀의 애인 장병천도 그녀를 따라 자살하고만 사건을 놓고 <강명화가>란 노래가 음반으로 나왔고, <강명화의 죽엄>이란 소설이 출판되자 일약 베스트셀러가 되었음도 소개한다.

 

당시 기생은 지금의 스타들과 견주어 전혀 손색없는 연예인이었음을 책에서는 설득력 있게 전하고 있다. 그리고 당시 기생들이 얼마를 받았으며, 기생을 교육하던 기생학교는 어떤 가르침으로 기생을 배출해냈는가를 알려 주며, 또 기생이 속해 있던 권번이 지금의 연예기획사와 똑같은 일을 하고 있었음도 알게 해준다.

 

하지만, 이 책에도 역시 옥에 티는 있다. 맨 첫 이야기에서 명월관 얘기를 하다가 명월관에 손님으로 온 미국 직업야구단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는다. 미국 직업야구단 이야기는 기생이야기와는 직접 관련이 없는 것으로 가볍게 언급하고 넘어갔다면 좋았을 뻔했다. 또 조선미술전람회를 통해 기생이 모델로 두드러진 점을 얘기하다가 기생을 대상으로 춘향초상이나 미인도 등을 그린 김은호와 김기창 화백의 얘기가 길어진다. 그러면서도 그들이 친일파로 지적받는다는 얘기는 없다.

 

 

▲ 사용하지 않은 기생 그림엽서ⓒ어문학사

 

 

▲ 기생을 모델로 한 화왕샴푸 광고 ⓒ어문학사

 

 

▲ 평양 기생학교의 창가 수업 장면(위), 사군자 수업 장면ⓒ어문학사

 

 

또 아쉬운 것은 <매일신보> 등의 자료를 소개하면서 당시 신문기사를 갈무리한 이미지는 없고 그저 글자로만 보여준 것도 간혹 있다. 가능하면 찾아서 원문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훨씬 독자들에게 다가서지 않을까?

 

그럼에도, 이 책의 값어치는 절대 과소평가할 수 없다. 그것은 이 책만큼 일제강점기의 기생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책이 없기 때문이다. 기생은 비록 천민이었을지는 몰라도 역사상 한 축을 지켜온 직업인이 분명한데 이를 이 책은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또 그들이 어쩌면 지식인들보다도 더 나라를 사랑한 애국자일 수도 있다는 것을 책은 강조한다.

 

올해로 경술국치 100돌을 맞는다. 일제강점의 치욕을 당한 지도 어느덧 100돌, 우리는 신현규 교수가 쓴 《기생,조선을 사로잡다》를 읽으면서 당시 사회상의 한 축을 들여다보고, 진정 우리가 나라를 위해 할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좋을 일이다.

출처 :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
글쓴이 : 김영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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