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부 2편
한국에 “남이장군”이 있다면 일본엔 “정이대장군”
선선한 바람이 제법 불어오던 10월 중순, 교토의 3대 마츠리의 하나로 알려진 시대마츠리 참석차 방문한 회원들과 청수사를 찾았을 때는 오토와산(音羽山)의 나무들이 고운 단풍채비를 서두를 때였다. 청수사(?水寺, 키요미즈테라)는 일본을 대표하는 건축물로 신(新)세계 7대 불가사의에 중국의 만리장성과 함께 후보로 오를 만큼 독특한 건축양식이 인상적이다.
스위스에 본부를 둔 신세계 7대 불가사의 재단(新世界七不思議財?)에서 발표한 2007년 제1회 “세계 7대 불가사의”를 보면 중국의 만리장성과 인도의 타지마할묘 등이 들어있는 대신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올림피아의 제우스신상 등 고대의 7대 불가사의는 모두 빠졌다. 이는 무관심 속에 사라져가는 세계문화유산에 대한 관심과 기존의 고대 7대 불가사의가 지중해 연안의 유적에 치우쳐있다는 반성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
청수사는 이들 신세계 7대 불가사의 후보군에 올랐으나 최종심에서는 고배를 마셨다. 그러나 인도의 타지마할묘와 나란히 세계의 불가사의 건축물에 뽑힐 만큼 세계인의 관심을 받고 있음이 증명되었다. 이러한 청수사를 세운 사람은 누구일까?
▲ 신세계 7대 불가사의 최종후보에 들었던 21개의 문화유산 속에 청수사가 들어 있다. ⓒ 이윤옥
청수사를 세운 사람에 대해서는 《청수사연기(?水寺?起)》를 비롯하여 많은 문헌에서 사카노우에노 다무라마로(坂上田村麻呂)라고 밝힌다. 다무라마로라고 하면 일본 무장(武將)의 대명사로 불릴 만큼 용감한 장수로 그는 백제계 간무왕(桓武天皇)의 총애를 받던 정이대장군(征夷大將軍, 세이이타이쇼군)이다.
세이이타이쇼군은 이를 줄여서 쇼군(?軍), 구보(公方), 다이주쇼군(大樹?軍) 등으로 불렸다. 나라 시대, 헤이안 시대에는 동북쪽 지역의 에미시 정벌을 위해 파견된 장군의 명칭으로 '정이(征夷)'란 '오랑캐를 물리친다.'라는 뜻이며, 여기서 말하는 오랑캐는 지금의 훗카이도에서 살던 에미시(蝦夷, 에조, 에비스라고도 함) 를 가리킨다.
혼슈의 동쪽 방면으로 정벌할 때 임명된 장군이 정이대장군이며 서쪽 해안(한국의 동해쪽) 방향으로 공격하는 장군은 '정적대장군(세이테키다이쇼군,征狄大?軍)', 큐슈로 진군하여 하야토 등을 공격하는 장군은 '정서대장군(세이제이다이쇼군,征西大?軍)'으로 불렀는데, 이는 중국의 오랑캐 개념을 일본에 도입해서 생겨난 이름들이다.
▲ 용감한 백제계 다무라마로 장군, 명치 때 일본화가 키쿠치(菊池容?)그림 ⓒ 이윤옥
다무라마로는 23살 때인 780년에 근위부 무관(近衛府武官)이 된 이래 초대 정이장군으로 불리는 오오토모노 오토마로(大伴弟麻呂)를 도와 동북방의 에미시를 정벌하는데 지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그의 나이 40세인 797년 군 최고 통치권자인 정이대장군 자리에 오른다. 헤이안시대를 통틀어 뛰어난 무장으로 숭앙받아 온 다무라마로는 문신의 대명사 스가와라미치자네(菅原道?, 학문의 신)와 더불어 무신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는 용감무쌍한 장수의 상징이다.
문제는 이렇게 유명한 다무라마로의 혈관에 백제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것을 숨기는 일본 쪽 자료이다. 다무라마로의 혈통인 사카노우에씨의 계보(坂上氏系?)를 보면 거의 모든 일본 쪽 자료가 이들 조상을 중국의 후한영제(後漢?帝)라고 적고 있다.
▲ 사카노우에씨의 조상을 중국 후한에 두고 있는 일본 위키피디어 자료 ⓒ 이윤옥
그러나 이는 사카노우에씨가 백제계임을 숨기는 것이며 한 발자국만 나가면 그것은 금세 탄로가 난다. 청수사 유래에 나와 있는 애처가 장수 사카노우에노 다무라마로는 위와 같이 중국인의 후예처럼 꾸며져 있지만 또 다른 자료를 보면 사정은 다르다.
일본서기와 고사기를 보자. 여기에는 분명히 아지키(阿直岐)는 백제에서 일본으로 파견된 관리요, 학자로 되어 있다. 아지오우(阿知使主)는 곧 아지키인 것이다. 이렇게 되면 아지키가 사카노우에노 조상이며 사카노우에노 다무라마로는 그의 후예가 되는 것이다.
▲ 아지키는 백제로부터 파견된 사람임을 증언하는 일본서기와 고사기 ⓒ 이윤옥
한편, 이 정이대장군 다무라마로의 아내는 미요시타카코(三善高子)다. 그녀는 어떤 사람일까? 《청수사연기,?水寺?起》에 따르면 미요시타카코는 원래 니시키베(錦部) 씨로 이들은 백제계 도래인이라고 전해진다. 남편이 잡아 온 사슴고기를 먹고(일설에는 사슴의 뱃속 새끼) 다시 건강을 회복했지만 미요시는 자신을 위해 죽어야 했던 불쌍한 사슴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살생을 통해 자신의 목숨을 연명하게 된 것이 크게 찜찜했던 부인은 남편 다무라 장군과 함께 청수사를 짓고 평생 참회의 기도를 그치지 않았다. 또, 그녀는 관세음보살상을 만들어 절에 바쳐 청수사가 오늘날 관세음 신앙지로 있게 한 장본인이다. 이 덕분에 청수사는 오늘날 임산부의 안산(安産)을 기원하는 절로도 유명하다.
▲ 청수사 개산당(開山堂) 안에 있는 다무라마로 부부상 ⓒ 이윤옥
▲ 다무라당이라고도 불리는 개산당(開山堂). 다무라장군 부부상이 모셔져 있다.
보통은 공개하지 않으며 2009년 3월부터 2달간 99년 만에 일반에 공개했다. ⓒ 이윤옥
백제계 어머니 고야신립과 아버지 고닌왕 사이에 태어난 제50대 간무왕의 두터운 신임을 입어가며 골칫거리였던 동북지방의 에미시를 정복하여 최고 사령관 자리에까지 올랐던 다무라마로장군은 고닌(光仁天皇, 49대)、간무(桓武天皇, 50대)、헤이세이(平城天皇, 51대)、사가(嵯峨天皇, 52대)에 이르도록 왕실의 든든한 무장으로 한 평생을 바쳤다.
23살의 나이로 근위장감(近衛?監)이 된 이래 54살로 죽을 때까지 31년간 장수로서 전혀 부끄럽지 않은 삶이었다. 한반도에서 멸망한 백제의 후예들은 여전히 일본땅에서 면면히 그 가업을 잇고 내려와 장수가 되기도 하고 천황이 되기도 하고 왕비가 되기도 한다. 이러한 백제 피의 대물림은 천여 년이 지난 지금 청수사가 여전히 한국인에게 인기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다무라장군이 마시던 맑은 샘물은 지금도 여전히 쉬지 않고 흐르고 있으며 다무라마로의 후예들은 긴 여정의 한 페이지를 접고 이곳에서 천 년의 물을 마신다.
▲ 청수사에는 "오토와노타키(音羽の?)"라는 3군데서 떨어지는 물줄기가 있다. 이 물줄기는 학업성취, 연애성취, 수명장수에 효험이 있다고 전해지는데 욕심을 내어 이 세 곳의 물을 모두 마시면 효험이 없어진다고 한다. 또 물을 받아서 단숨에 마셔야지 두 번, 세 번에 나눠 마시면 효험이 1/2, 1/3로 줄어든다는 재미난 속설이 있다. ⓒ 김영조
다무라마로는 신심이 깊은 장군으로 이름이 나있는데 그가 에미시를 정복할 때 승승장구할 수 있게 지켜준 신불(神佛)의 은혜를 잊지 않고 고마움을 표현하려고 이르는 곳마다 절과 신사를 세웠다고 전해지며 교토의 청수사 외에 일본 전역에 있는 청수사란 이름의 절과 신사가 산재한다. 한국에서 많은 무당이 "남이장군"을 신으로 모시는 것처럼 일본에선 많은 절과 신사에서 "동이대장군"을 신으로 모시고 있다.
▲ 전국 각지에 다무라마로 장군과 관련이 있는 절, 신사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아오모리현(櫛引八幡宮), 이와테현(達谷窟毘沙門堂), 아키다현(愛宕神社), 도치기현(太平寺) ⓒ 이윤옥
▲ 야마나시구에 있는 다무라공원과 그의 묘 ⓒ 이윤옥
다무라장군은 생전에 12명의 자녀를 두었으며 이 중 하루코(坂上春子)는 백제계 천황인 간무왕의 비(妃)가 되어 간무왕과는 장인 사위관계에 놓이는 등 왕실과의 인연이 깊다.
811년 54세 되던 5월23일 세상을 하직하였는데 이보다 앞서 1월 20일에는 발해의 사신 을 만나 연회를 베풀었다는 기록을 보아 죽기 전까지 대내외적인 활약을 지속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의 묘는 사가왕(嵯峨天皇)이 직접 만든 것으로 전해지며 야마나시구 권수사(?修寺) 근처에 무덤이 있는데 이 일대는 사카노우에노 다무라마로 공원(坂上田村麻呂公園)이 조성되어 있다.
올해로 백제계 일본 최고의 장수 사카노우에노 다무라가 세상을 뜬지 1199년이 되는 해이다. 장군이 죽은 5월23일에는 해마다 그를 기념하는 법회를 연다. 모처럼 이 날 청수사를 찾는 한국인들이 있다면 다무라당(田村堂)에 들려 향불 하나 사르고 내려오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참고문헌】
《日本神佛辭典》大島建彦 編者, 大修館書店, 2001
《日本寺院總攬》 吉成勇, 大日本印刷, 1992
《日本の神? 山城?近江》第5?, 谷川健一, 白水社, 2000
《京都の歷史》京都市編, 學藝書林
《?く京都》 昭文社, 2009
《교토관광안내》교토시 교토 국제관광객 유치 추진협의회, 2009
《古寺巡?京都24 ?水寺》大庭みな子、大西良慶, 淡交社、1978年
《坂上田村麻呂??》大塚??、?文堂、1980年。
《일본속의백제》홍윤기, 한누리미디어, 2008
《일본열도에 흐르는 한국혼》김달수, 동아일보사,1993
일본위키피디어 : http://ja.wikipedia.org
청수사 누리집 : http://www.kiyomizudera.or.jp
★청수사 가는 길★
교토역 앞에서 시영버스 206번, 100번을 타고 고죠자카(五?坂)에서 내려 10분쯤 걷는다.
글쓴이
* 이윤옥(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 소장, 59yoon@hanmail.net)
* 김영조(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 소장, pine4808@paran.com)
* 이 글에 대해 궁금하신 점이나 참고될 만한 내용이 있으시면 언제라도 위 누리편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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