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가득 담긴 국어사전
[서평] ≪보리국어사전≫, 윤구병 감수, 도서출판 보리
“낙엽송”을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찾아보자. “일본잎갈나무”라고만 간단하게 설명되어 있다. 무슨 나무인지 잘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일본잎갈나무”를 다시 찾아보니 “소나뭇과의 낙엽 교목. 잎은 밝은 풀색의 선 모양이다. 5월에 꽃이 가지 끝에서 피는데 자화수는 넓은 달걀 모양이고 웅화수는 긴 타원형이다. 열매는 구과(毬果)로 9~10월에 익는다. 건축, 펄프, 선박재 따위로 이용하고 정원수, 분재 따위로 재배한다. 일본이 원산지이다.”란 설명이다.
역시 무슨 말인지 좀체 알아듣기 어렵다. 특히 이런 설명이라면 아이들이 볼 수 없는 사전일 뿐이다. 그런데 아직 어린이용으로 제대로 만든 사전이 있다는 소릴 듣지 못했다. 그런데 얼마 전 도서출판 보리에서 윤구병 감수로 초중등학생들이 보는 ≪보리국어사전≫가 나왔다.
이 사전에서 역시 “낙엽송”을 찾아보자. “나무가 없는 산에 많이 심어서 가꾸는 잎지는 나무. 잎이 바늘처럼 생겼는데 가을이면 누렇게 물들어 떨어진다. 봄에 꽃이 피고 9월에 솔방울처럼 생긴 열매가 열린다.”라고 되어 있다. 그것뿐이 아니다. 세밀화로 낙엽송을 그려놔 누
구나 이해하기 쉽게 해놓았다. 이 정도면 아이들뿐만이 ▲ <보리국어사전> 표지 ? 표지도서출판 보리
아니라 어른들이 보기도 좋다.
그동안 우리나라엔 제대로 된 국어사전이 없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정부기관인 국립국어원에서 펴낸 ≪표준국어대사전≫조차도 무원칙한 올림말에 사투리나 토박이말은 푸대접받고 설명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심지어 현직 국립국어원장까지 나서서 ≪둥지 밖의 언어≫라는 책까지 내가며 반성하고 고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런 때 이 ≪보리국어사전≫의 출간은 큰 의미가 있어 보인다. 이 사전은 아주 쉽고 명쾌하게 풀이를 해놓은 것은 물론 시원스러운 편집과 함께 식물과 동물도감에서나 볼 수 있는 수많은 동식물과 우리나라 전통문화 곧 농기구, 살림살이, 악기 등 2,400여 점의 천연색 세밀화로 보충 설명을 해줌으로써 사전의 가치를 한껏 높여 놓았다.
▲ 사전의 일부, 가운데에 세밀화를 그려넣어 이해를 돕는다. ? 도서출판 보리
▲ "가을"이란 낱말을 문자 설명과 함께 세밀화로 이해를 돕니다. ? 도서출판 보리
특히 ‘가을’을 찾아보면 “가을은 열매가 많이 열리는 철이에요.”로 시작하여 “우리가 가을에 맞는 명절에는 추석이 있어요. 음력 팔월 보름이 추석인데, 한가위라고 부르기도 하지요. 추석에는 집안 식구가 한데 모여 잔치를 벌이고, 여러 가지 놀이도 하고, 송편도 빚어 먹어요.”라며 다양한 세밀화와 함께 세시풍속까지 담았다.
어디 그뿐인가? 가락장갑(손가락을 끼울 수 있게 구멍을 낸 장갑), 애군(남한테 늘 애를 먹이는 사람), 키등(어린아이가 잔뜩 울상을 하고 조르거나 못마땅해하는 모양) 등 800여 개의 북녘말을 올려놓아 통일을 대비한 사전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또 각색/옮겨지음, 개표/표찍기, 건망증/잊음증, 보조개/오목샘, 잔돈/부스럭돈처럼 남북이 다르게 쓰는 말도 2,500개나 실어 견주어 공부할 수 있게 했다.
사전 맨 뒤를 한번 보자. 여기엔 유엔 가입국 192 나라와 대만, 바티칸시국의 국기와 함께 나리 이름, 위치, 쓰이는 언어, 나라의 간단한 특징 등을 설명해 놓은 “나라 이름”이 있다. 이쯤 되면 백과사전을 방불케 한다.
이런 사전이 나오기까지 얼마나 정성을 쏟았을까? 도서출판 보리에 따르면 제작기간 8년, 사전편찬 작업에 같이 한 이가 수십 명이고, 제작비가 무려 30여억 원이 들었단다. 변산공동체 대표인 윤구병씨가 기획과 감수를 맡았는데 이 사전 속에는 그동안 많은 어린이책을 내면서 담았던 생태공동체를 이끄는 윤씨와 도서출판 보리의 아름다운 철학이 배어 있다.
보리에선 이 사전에 쓰인 세밀화를 바탕으로 약초, 곡식, 풀, 바닷물고기 등을 다룬 새 도감을 펴낸다고 하니 기대된다. 또 그동안 ‘겨레고전문학선집’ 34권을 펴냈는데 이를 청소년용으로 새롭게 내놓을 예정이라고 한다. 보리가 그런 책을 제대로 내게 하려면 ≪보리국어사전≫에 들인 비용을 모두 회수할 수 있어야 하는데 30만 부는 팔려야 한다니 걱정이다.
▲ 다양한 약초를 세밀화를 통해 설명한다. ? 도서출판 보리
▲ "글자'라는 글자를 찾으면 문자로 설명한 것은 물론 한글을 비롯하여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
고대 인도 글자, 고대 오리엔트 쐐기 글자, 고대 페르시아 글자 등의 예를 들어준다. ? 도서출판 보리
고은 시인은 “참 좋은 세상의 선물이 나왔습니다. 참 좋은 어린이 세상의 선물이 나왔습니다. 우리 겨레말을 지키고 사랑하는 길이 바로 이 국어사전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갈라진 남북의 어린이가 함께 겨레말의 삶을 살 수 있는 터전이 되는 것이 이 사전의 뜻이기도 합니다. 윤구병 선생의 생태사상은 이제 겨레말의 생태에까지 이르렀습니다. 보리출판사의 벗들 장하십니다.”라며 ≪보리국어사전≫을 칭찬했다.
감수를 한 윤구병 씨는 말한다. “우리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풀이말을 달고 문어체 일색의 용례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또 기존 사전들이 남북 분단이 변하지 않을 일인 것처럼 남녘 편에서 낱말을 고르고 풀이하고 편집하는 태도가 눈에 거슬렸고 그래서 남북에서 쓰이는 쉬운 말들을 빠짐없이 챙겨 넣고 빠뜨리지 않으려고 하다 보니 사전의 부피가 1,500쪽이나 되었다.”
다만, 이 책에도 옥에 티가 보인다. 그것은 여유가 있음에도 개다리소반, 개떡, 개기일식 등 정말 세밀화가 필요한 낱말에 세밀화가 보이지 않았음이다. 또 그리고 가야금, 거문고 등은 그림이 너무 작아 구분하지 못할 정도였다. 이 사전이 도입한 세밀화가 가치를 가지려면 가능한 한 크기를 조정했어야만 했지 않을까? 또 비교적 잊힌 아름다운 토박이말을 찾아주려는 노력이 좀 부족했다는 생각도 든다.
그럼에도, 한 출판사와 사전 편집진들의 노력이 이렇게 대단한 사전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국립국어원과 사전 출판을 하는 출판사들은 도서출판 보리를 본받으라! 자녀가 있는 부모들이여! 자신의 아이를 진정 사랑한다면 먼 미래를 위해 ≪보리국어사전≫ 한 권 사주면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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