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밤, 꿈꾸듯 전통가곡의 향연이 펼쳐지다
제6회 “김영기가곡연구회” 정기공연 열려
▲ 전통가곡 우조 이수 “동짓달”을 부르고 있는 중요무형문화재 제30호 가곡 예능보유자인 김영기
@김영조
흔히 사람들은 가곡 하면 ‘선구자’나 ‘가고파’ 등 서양발성에 의한 노래로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에겐 오랫동안 불러왔던 전통가곡이 있다. 가곡은 시조시를 노랫말로 삼아 관현악 반주에 맞춰 부르는 노래인데 고려말부터 이어져 조선 영조 무렵 가장 꽃을 피운 것이다. 그러나 이 전통가곡을 별로 아는 이는 없다. 그 까닭의 하나는 들어볼 기회가 별로 없다는 점이다.
그 전통가곡과 시조로 가을밤을 수놓는 공연이 있었다. 지난 10월 24일 저녁 7시 30분 서울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에서 한국문화보호재단 주최, “김영기가곡연구회” 주관으로 제6회 김영기가곡연구회 정기공연 “이야기가 있는 가곡, 동명이인”이 열렸다. 김영기가곡연구회는 중요무형문화재 제30호 가곡 예능보유자인 김영기와 그의 제자들로 구성된 단체로서 가곡을 비롯하여 가사와 시조를 전수하고 보존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가곡은 다른 성악곡과는 달리 남·여 노래로 나뉘어 있는데, 이는 가곡이 양성에 대한 특색을 요구하는 음악임을 알 수 있게 하는 것으로, 이 안에는 남창 26곡과 여창 15곡이 있다. 남창에서는 모든 음을 다 겉목 곧 진성으로 내는 발성법을 사용하는 데 반하여, 여창에서는 겉목과 속목이 다 쓰인다. 속목은 가성인데 목 뒷덜미로부터 곱게 내는 소리를 말한다.
가곡의 악조에는 평조(또는 우조)와 계면조의 두 가지가 있으며, 장단은 16박 장단과 10박 장단의 두 종류가 있다. 또 가곡은 거문고·가야금·세피리·대금·해금·장구 등 관현악기의 편성으로 반주하는 것이 원칙이고, 여기에 양금과 단소를 곁들이기도 한다.
▲ 맛깔스럽게 해설을 하는 김영기 보유자 @김영조
그런데 이번 공연엔 가곡과 시조를 비교 감상하는 기회이다. 가곡과 시조는 각자 고유한 선율로 구성되어 있으나 3장 형식의 시조시가 각각 가곡과 시조에 얹혀서 완전히 다른 노래로 불린다. 다른 노래라는 말은 시조는 초장 중장 종장 3장 형식으로 부르고 가곡은 5장 형식인데, 대여음(전주)-노래 1· 2? 3장 - 중여음 (간주) -노래 4? 5장 순으로 노래한다. 그래서 시조에 비하면 가곡은 훨씬 긴 시간을 노래해야 한다는 말이다.
중요무형문화재 제30호 예능보유자인 김영기는 “본 공연에서는 전공자뿐 아니라 가곡에 관심이 있는 기악 전공 학생들과 가곡을 좋아하는 일반 문하생들도 같이합니다. 시조 한 수는 누구나 부를 수 있는 국민의 노래가 되었으면 하는 저의 바람이 여러분과 더욱 공감하는 무대가 되었으면 합니다.”라고 인사를 한다.
보유자는 시조 '동창이'를 예로 들어 시조와 가곡의 차이를 설명했다. ‘동창이’를 시조로 하면 초·중?종장을 그대로 부르지만 가곡인 평조(우조) 초삭대엽(초수대엽)으로 하면 대여음(3장단 5박) - 초장(동창이 밝았느냐) - 2장(노고지리 우지진다) - 3장(소치는 아희놈은 상긔아니 일었느냐) - 중여음(1장단) - 4장(재넘어) - 5장(사래긴 밭을 언제 갈려 하느니)처럼 길게 늘여 부른다는 것이다.
김영기 보유자가 공연 전 가곡과 시조가 무엇인지를 적절히 그리고 맛깔스럽게 설명한다. 이 공연은 보유자의 해설이 중요한 몫을 해주고 있다. 맨 처음 공연은 우조 이수 “동짓달”(가곡)을 보유자가 부르고, 여창 지름시조 “동짓달”을 전수장학생 김유라, 전수자 김승예·이아름·이현서가 불렀다.
▲ 여창 지름시조 “동짓달”을 전수장학생 김유라(왼쪽에서 세번째), 전수자 김승예·이아름·이현서
@김영조
“동지(冬至)달 기나긴 밤을 한허리를 둘에 내여
춘풍(春風) 이불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룬님 오신날 밤이여든 굽이굽이 펴리라”
우리가 익히 들었던 조선 중종 시대의 유명한 기생 황진이의 시이다. 정든 임을 기다리는 여인의 애틋한 마음
을 아름답게 노래한다. 비교해 들으니 확연히 다르다. 시조는 전체를 부르는데 약 4분 정도 걸렸지만, 가곡은
약 10분30초 정도나 걸렸다. 길게 뽑아가는 선율 속에 임에 대한 간절한 마음이 담뿍 담겨 있음이다.
그리고 중요무형문화재 제30호 가곡 예능보유자인 김영기의 목소릴 확인할 수 있었다. 높은 소리는 청아하고
낮은 목소리는 그윽하여 객석을 꼼짝 못하게 하는 마력을 내뿜는다. 그런가 하면 시조를 부른 전수자들의 소
리는 풋풋한 내음을 담아낸다. 무엇이 가곡이고, 무엇이 시조인지 대충 가늠이 되었다.
▲ 평시조 “이화에”를 부르는 전수자와 문하생 이기쁨, 심운정, 윤영지, 윤소라, 김혜인, 황진아,
이지혜, 주애솔 @김영조
▲ 계면조 중거 “이화에”를 노래하는 전수장학생 박민희
두 번째 평시조 “이화에”는 전수자와 문하생 이기쁨, 심운정, 윤영지, 윤소라, 김혜인, 황진아, 이지혜,
주애솔 등이 계면조 중거 “이화에”는 전수장학생 박민희가 불렀다. “이화에”는 고려 충렬왕 때 대제학을
지낸 이조년의 작품으로 봄밤의 정취와 임을 향한 그리움을 잘 표현한 시이며 ‘다정가’로도 불린다. 계면조
중 <중거>라는 곡은 여창가곡 한바탕 15곡 중 두 번째 느린 곡으로 한 곡을 부르는데 9분 30초 정도 걸렸다.
세 번째는 계면조 계락 “바람도 쉬여넘고”는 이수자 이유경이, 지름시조는 전수자와 문하생 하윤주, 박희수,
강슬기, 윤인아가 부른다. 김영기 보유자의 해설로는 “사랑하는 이를 향한 의지의 노래인데 힘 좋은 야생
매조차 한 번에 넘을 수 없을 정도로 높은 고개라 할지라도 쉬지 않고 넘겠다.”라는 뜻이다.
마지막 “청산리 벽계수야”를 듣는다. 먼저 계면조 계락은 전수자 이현정, 나경은, 이지은, 장보람이 부르고, 평
시조는 이수자 이아미와 취미로 시조를 배운 김미경, 김숙, 김영동, 남기선, 박일엽, 송현이, 안현숙, 정의범,
최미라가 불렀다. 일반인도 익히 아는 시조를 비교적 빠른 박자로 부른다.
▲ 계면조 계락 “바람도 쉬여넘고”를 노래하는 이수자 이유경 @김영조
▲ 지름시조를 부르는 전수자와 문하생 하윤주, 박희수, 강슬기, 윤인아 @김영조
“청산리(靑山裡) 벽계수(碧溪水)야 수이감을 자랑마라
일도(一到)창해(蒼海)하면 다시오기 어려워라
명월(明月)이 만공산(滿空山)하니 쉬여간들(감이) 어떠리.”
명기 황진이의 유명한 시인데 연인 벽계수를 흐르는 물에 빗대었고, 종장의 명월은 황진이 본인의 예명이다.
떠나려는 남자의 마음을 붙잡고자 하는 여인의 마음을 은근히 표현하고 있다. 이수자 한 명을 빼고는 초등학
교 5학년부터 모두 일반인이다. 한두 군데 실수도 보였지만 단순히 취미로 배우는 사람들이라 생각하지 못할
만큼 기가 막히다.
마지막으로 인사를 하러 나온 김영기 보유자는 객석과 공연자들이 함께 “청산리 벽계수야”를 부르자고 제안하
여 즉석에서 흥겨운 “다 함께”가 되었다. 보유자는 말한다. “객석에는 전통가곡이 있는 줄도 모르는 보통 일반
인들인 줄 알았는데 가곡을 공부한 사람들처럼 기막힌 노래를 한다. 이 정도라면 조금만 배우면 모두 공연을
할 수 있을 정도이다.”
▲ 계면조 계락 “청산리 벽계수야”를 하는 전수자 이현정, 나경은, 이지은, 장보람 @김영조
▲ “청산리 벽계수야” 평시조를 이수자 이아미와 취미로 시조를 배운 김미경, 김숙, 김영동, 남기선,
박일엽, 송현이, 안현숙, 정의범, 최미라가 부른다. @김영조
▲ 김영기 보유자는 객석과 공연자들이 함께 “청산리 벽계수야”를 부르자고 제안하여 즉석에서
흥겨운 “다 함께”가 되었다. @김영조
보유자의 말이 과장은 아닌듯했다. 공연 분위기가 만들어낸 결과가 아닐까? 공연 반주는 가곡 이수자 김지은
의 장구를 빼고는 경기도립국악관현악단 피리 수석 박영기와 그 외 4명이 모두 KBS국악관현악단 단원이어서
최고 수준의 연주가 되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흔히 들을 수 없는 이 공연은 대단한 성공을 거뒀다. 다만, 좀 더 발전을 위한다면 자칫하면 따분하게 느낄 수
있는 가곡과 시조만의 공연이 아니라 반주자들로 하여금 시나위합주를 하게 했더라면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마지막 연주는 다시 김영기 보유자가 등장하여 가곡의 진수인 우락이나 편락을 소리하는 것도 좋
았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깊어가는 가을밤, 서울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을 채운 청중들은 듣기 어려운 귀한 전통가곡 그리고
시조와 함께하는 귀중한 시간을 가졌다. 객석에 있었던 이들은 이런 공연이 더 많이 기획되고 연주되기를 간
절히 바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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