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언의영혼

[스크랩] ‘포카혼타스 신화’의 탄생

문근영 2015. 12. 26. 05:32

‘포카혼타스 신화’의 탄생

 
 
 

[선샤인 논술사전]

버지니아 정착민들은 흑인 노동력에 의존하였을 뿐만 아니라 인디언들을 효과적으로 제압했다. 이 과정에서 디즈니의 만화영화로도 만들어진 그 유명한 포카혼타스(Pochahontas) 신화가 탄생한다. 이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제임스타운 식민지의 용감한 지도자 존 스미스 선장은 포와탄(Powhatan) 인디언들에게 생포되었다. 인디언들이 스미스를 머리를 돌덩이 위에 얹어놓고 몽둥이로 내려치려는 찰나 포와탄 추장의 딸인 11세 소녀 포카혼타스(본명: 마토아카)가 “팔로 그의 머리를 감싸며” 스미스의 목숨을 구해달라고 간청해 그의 목숨을 살렸다.(Davis, 2004)

스미스가 영국으로 떠난 뒤 2년동안 토마스 데일 경(Sir Thomas Dale)은 포와탄 인디언을 무자비하게 공격했고 그 과정에서 포카혼타스를 납치했다. 이때 그녀는 17세였다. 포우하탄이 몸값을 지불하고 그녀를 되찾아가기를 거부하자, 포카혼타스는 백인들과 살게 된다. 그녀는 1614년 담배로 제임스타운을 살린 존 롤프와 결혼했다.(Brinkley, 1998)

1615년 롤프는 포카혼타스와 그녀 사이에서 낳은 아들을 런던으로 데리고 갔다. 이미 기독교 세례까지 받은 그녀는 ‘레이디 레베카’로 불렸다. 런던에서 그녀는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국왕 알현의 기회까지 얻었다. 그간 죽은 것으로 알고 있던 존 스미스도 만났다.(Davis, 2004)

그런데 포카혼타스가 스미스를 구했다는 이야기는 스미스의 자서전에 나오는 이야기로 신빙성이 좀 의심된다는 주장이 있다. 스미스가 1616년에서야 그 얘기를 꺼낸 이유가 뭐냐는 것이다. 스미스의 주장을 믿는 옹호자들은 당시 포카혼타스가 왕실의 환대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스미스가 왕가의 환심을 사기 위해 포카혼타스 얘기를 꺼냈다고 말한다.(Shenkman, 2003)

포카혼타스는 22살 먹은 해에 천연두로 사망했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1995년 디즈니사가 33번째 장편 만화영화로 <포카혼타스>를 제작해 개봉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으리라. 이 영화는 역사적 사실의 왜곡이 너무 심했지만 그렇다고 디즈니사만 탓할 일도 아니다. 서정아(1995)는 “디즈니 만화영화 <포카혼타스>가 전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가운데 실존인물 포카혼타스에 대한 재조명이 활발하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포카혼타스는 자신의 어떤 말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으나 그녀의 삶은 호사가들에 의해 이리저리 부풀려졌다. 신대륙으로 이주한 영국인들이 토착 영웅을 찾아헤맬 때 포카혼타스의 얘기가 그들의 의도에 들어맞았던 것. 이때부터 그녀의 이야기는 아름다운 전설이 돼 웨브스터사전에 실렸으며 포카혼타스의 조각품도 만들어져 한 성당에 영구전시됐다. 포카혼타스는 사람들의 입맛에 따라 시시때때로 변했다. 남부사람들은 그를 귀족가정의 시초로 숭앙했으며 북부인들은 노예제도 철폐주의자의 상징으로 여겼다.…몸을 사리지 않는 구조, 영국왕실의 연회, 비극적인 단명 등 포카혼타스 실제의 삶도 마치 소설같다. 그러나 포카혼타스 전설을 소재로 삼은 시인이나 극작가들은 단 한가지 구조적 결함을 발견했다. 바로 포카혼타스와 스미스 사이에 로맨스가 부족하다는 것. 따라서 존 데이비스라는 소설가는 1798년 롤프라는 재미 없는 인물을 버리고 스미스를 주요 인물로 꾸몄다. 포카혼타스는 이후 미국의 ‘뮤즈’로, 순결한 영혼의 처녀 등으로 탈바꿈하다가 마침내 95년에 ‘흥행의 마술사’ 디즈니사를 만나 슈퍼모델 나오미 캠벨을 본뜬 멋쟁이 여성으로 변모했다. 게다가 시공을 초월해 헌신적으로 스미스를 사랑하는 착한 마음씨에 평화·환경보호주의자이기도 하다. 포카혼타스는 숨진지 3백여년만에 17세기판 원더우먼으로 거듭나게 됐다.”

그렇다. 포카혼타스는 나오미 캠벨이 되고 말았다. 디즈니 만화영화를 좋아하는 어린 학생들은 그대로 믿기 마련이다. 그래서 역사가들은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데이비스(Davis, 2004)는 다음과 같이 개탄한다.

“역사 선생님들은 디즈니사가 창조한 새로운 신화인 <포카혼타스>를 보고 역사를 배운 사춘기 이전의 미국 어린이들과 싸움을 벌여야 하는 상황이다. 이 영화에서 풍만한 가슴을 가진 관능적인 인디언 처녀는, 멜 깁슨이 목소리 연기를 한 서핑 선수처럼 생긴 존 스미스 선장에게 광적인 사랑을 느끼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아이고 맙소사.”

연동원(2001)은 영국에서 포카혼타스의 가족은 “아메리카 대륙으로의 이주의 성공 가능성을 홍보하기 위한 광고용 가족처럼 행동하였다. 즉 영화 속에서는 포카혼타스가 왜 미국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를 전혀 설명하고 있지 않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영화는 역사적 고증을 통해 그려낸 최초의 작품이라는 디즈니의 슬로건과는 달리, 원주민과 침략자간의 갈등을 양비론적 시각으로 단순하게 미화한 데 지나지 않다. 더불어 디즈니가 인디언과 백인간의 충동을 ‘화해’라는 형식으로 결말짓기에는, 아메리카대륙의 실제 주인이라 할 수 있는 인디언들이 이제까지 당한 ‘피의 역사’를 너무나도 뻔뻔스럽게 도외시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1619년 이전만 해도 제임스타운에는 여자가 매우 드물었다. 포카혼타스의 영국 방문 덕분이었는지는 몰라도, 1619년 처녀 90명이 영국에서 도착했다. 신부 한 명을 얻는 데 드는 비용은 담배 120 파운드로 영국에서 제임스타운까지의 수송 비용과 같았다.(Davis, 2004)

토지를 소유하게 해주겠다는 유혹에 빠져 1624년까지 버지니아로 이주해온 정착민 수만도 6천여명에 이르렀지만, 그해의 인구 통계를 보면 6천여명 중에서 1천277명만이 생존한 것으로 돼 있다. 본국의 왕실회의에선 “실종된 여왕 폐하의 5천명 백성들에게는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라는 질문이 제기되었다. 견디다 못해 떠난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굶주림, 나머지는 인디언과의 전투로 죽었다. 국왕은 이에 대한 책임을 물어 1624년 버지니아사에 내린 특허장(patent)을 취소하고 버지니아를 왕실의 직할 식민지로 만들었다.(Brinkley, 1998; Davis, 2004)

식민지의 인구 구성상 독특한 계급은 계약하인(indentured servants)이었다. 이는 주인이 아메리카로 가는 경비, 음식, 숙소를 제공해주는 대신에 정해진 기간 동안(주로 4-5년) 하인으로 봉사하는 제도였다. 대부분의 계약 하인들은 자발적으로 식민지에 왔으나, 1617년부터 영국 정부는 수척의 배에 죄수들을 실어서 그들을 하인으로 팔아넘겼다. 고아, 부랑자들, 빈민들을 비롯하여 1650년대에엔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와의 전쟁에서 잡은 포로도 이주시켰다. 탐욕스러운 투기꾼들에 의해 납치돼 강제로 끌려온 사람들도 있었다. 17세기 말에 이르면 식민지 계약 하인의 수가 식민지 인구 중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가장 높아진다.(Brinkley, 1998)

참고문헌

서정아, <포카혼타스는 실존 인물인가/백인남성과 최초로 결혼한 전설의 인디언>, 『서울신문』, 1995년 8월 29일, 11면.
연동원, 『영화 대 역사: 영화로 본 미국의 역사』(학문사, 2001).
앨런 브링클리(Alan Brinkley), 황혜성 외 공역, 『미국인의 역사(전3권)』(비봉출판사, 1998).
케네스 데이비스(Kenneth C. Davis), 이순호 옮김, 『미국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 미국사』(책과함께, 2004).
리처드 솅크먼(Richard Shenkman), 이종인 옮김, 『미국사의 전설, 거짓말, 날조된 신화들』(미래M&B, 2003).

출처 : 어둠 속에 갇힌 불꽃
글쓴이 : 정중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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