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에 오면/ 황인동
산이 산을 업고
동해의 한 자락처럼 출렁이는
청도에 오면
바람마저도 미나리 향 같은
청도 바람만 분다
복사꽃 따스한 마을마다
아름다운 사람들이
팽이 버섯처럼 모여 사는
청도에 오면
햇살은 하얀 맨발로 들녘을 누비고
새벽별은 주먹만하게 다가온다
미나리 새순같이
추억 몇 개 돋아나는 날
청도에 오면
감꽃이 줄 지어 선
맑은 길 하나 트일 것이다
나는 지금 소뿔처럼 서서
청도 하늘을 안고 있다
- 시집『비는 아직도 통화중』(만인사,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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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에는 시인의 말마따나 청도의 특산물이 다 들어있다. 우선 운문산은 옛날 운문적이란 산적의 본거지일 만큼 심산유곡이고 ‘산이 산을 업고’ 출렁이는 첩첩산중으로 빼어난 경관의 깊은 산이다. 그곳에 자리 잡은 운문사는 정갈한 비구니사찰로 진입로의 소나루 군락과 처진 반송 등으로 알려졌지만 특히 새벽예불은 그 어떤 음악보다도 장엄하고 청량하여 늘 감동을 자아낸다. 아마 그 소문은 유홍준의 '문화유산답사기'가 처음 퍼뜨린 것이 아닐까 짐작된다.
미나리는 맑은 물과 햇살이 만들어낸 한재미나리를 말하는데 봄철에 이것 무침에다 동곡막걸리 한 사발이면 나그네에겐 더 이상의 성찬은 없다. 여기에다 역전 추어탕 한 그릇 후딱 해치우면 그날은 제왕의 하루가 부럽지 않다. 배 두드리며 유등연지를 시작으로 청도팔경을 돌아 용암온천에 당도하면 어느새 어둑해진 하늘에 별이 솟는다. 그리고 복사꽃과 감꽃이 번갈아 피고지면서 과실을 맺어 청도하면 복숭아와 감을 떠올린다.
청도반시는 씨가 없는 감으로 감식초와 와인으로도 제조되어 그 이름값이 높다. 이곳의 토질이 워낙 좋아 여기 감나무를 다른 지방에 옮겨심으면 씨가 생기고 반대로 다른 지방의 씨있는 감나무를 이곳에 옮겨오면 씨가 생기지 않는다. 사실 그게 감나무의 입장에서는 좋은 건지 어쩐지 잘 모르겠는데 아무튼 저네들이 등 따시고 배부른 태평성대를 구가하면 자손에 대해 별 신경을 쓰지 않는 생물생태학적 이치와도 같은 것은 아닐까.
또한 팽이버섯 공장이 유난히 많은 것도 특징이라면 특징이고 한옥학교가 있으며 감물로 천연염색을 하는 곳도 여러 곳이다. 몇 년 전부터 소싸움으로도 명성을 크게 얻고 있는데 정식으로 소싸움 경기장까지 지어 지역의 주요 관광소득원으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것들이 모두 매력적인 고장으로 청도를 총체적으로 알리는데 한 몫들을 하고 있다. 그래서 가수 이동원과 개그맨 전유성 등은 이런 산수 푸른 청도의 매력에 반해 아예 그곳에 터를 잡아 눌러앉은 것으로 소문은 그렇게 나있다.
이 시는 청도 역전 추어탕 집인 '의성식당'과 ‘감 와인터널’에 각각 걸려있어 오가는 이의 눈길을 끌고 있다. 그런데 시의 제목을 눈여겨보면 ‘청도에 가면’이 아니라 ‘청도에 오면’이라고 되어있다. 왜 그럴까. 이는 나그네로서의 청도를 칭송하기 보다는 손님을 부르고 맞이하는 입장에서 작정하고 쓴 시라서 그렇다. 그도 그럴 것이 황인동 시인은 현재는 공직에서 은퇴를 하였으나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청도군의 부군수와 공영공사 사장으로서 청도라는 상품에 직접 깊숙이 간여한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그 구역에서 ‘소뿔처럼 서서 청도 하늘을 안고 있는’ 자세가 아니 나올 수 없겠다. 요즘은 청도에 다녀왔다 하면 중국의 ‘청도(칭따오)’에 다녀온 걸로 얼른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무리 세계화 시대라지만 한국인으로서 이곳 청도를 알지 못하고 그 청도를 생각하는 것은 좀 우습다. 지금 청도는 늦가을 햇살에 감이 발갛게 완전 익어 온 천지가 가을빛으로 곱게 물들었다. 비가 뿌리면 또 그런대로 운치가 그만이다. 20번과 25번 국도의 휴일도 꽤나 붐비겠다.
권순진
Beyond Borders - Tol & T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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