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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조선 초에 새긴 천상열차분야지도 한글판 탄생

문근영 2015. 11. 19. 00:44

조선 초에 새긴 천상열차분야지도 한글판 탄생

나일성 교수, 조선 초기의 천문도 복원

 

 

 

                        국보 제228호 천상열차분야지도 각석은 612년 전에 새긴

                              천문도로 현재 국립고궁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 ⓒ 김영조

                           

 

고구려는 군사적으로 강대한 나라였을 뿐만이 아니라 우수한 천문학적 지식을 가지고 있었음이 고구려 고분 벽화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고분벽화에 그려진 동방과 서방의 쌍삼성, 남방의 남두육성, 북방의 북두칠성 등은 고구려식 천문방위 관념을 나타내는 별자리이고 하늘의 28개 별자리는 방위 별로 7개씩 나뉘어 청룡, 백호, 주작, 현무로 형상화되었는데 이 사신(四神)이 고분벽화의 주역으로 등장하는 것도 고구려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한다.

 

또 별자리를 표시함에 밝은 별은 크게 새겼고 어두워질수록 크기를 작게 새기는 것은 우리나라의 천문도에만 볼 수 있는 독창적인 기법이기에 고구려의 천문기법은 다른 데서 유래한 것이 아니라 독자적인 우주관을 가지고 있던 고구려만의 것이며 당대의 하늘에 대한 관찰이 얼마나 철저했는지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조선 초기에 그려진 천문도들은 모두 이 고구려 것을 토대로 약간의 수정만 한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그 조선 초기의 천문도들은 태조 4년(1395년) 검은 석판에 새긴 국보 제228호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 숙종 13년(1687)에 새긴 보물 제837호 “복각천상열차분야지도(複刻天象列次分野之圖刻石)”, 박연이 그린 “혼천도(渾天圖)” 등이 있다.

 

하지만 이 천문도들은 한자로만 쓰인 탓에 한자에 능통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무용지물이었다. 그런데 최근 이를 한글판으로 번역해 그린 천문도가 나와 화재이다. 국제천문연맹 천문학사위원회 위원장이며, 연세대 나일성 명예교수는 “한글판 천상열차분야지도”를 그려 일반에 공개했다. 무려 25년의 삶을 바친 역작이다.

 

 

 

       나일성 교수가 한글로 번역한 국보 제228호 천상열차분야지도 ⓒ 김영조

 

 

 

 

       나일성 교수가 복원한 박연이 그린 혼천도, 가운데 분홍빛 동그라미는 적도이며, 

         노랑빛은 황도, 넓게 흰빛으로 보이는 부분은 은하수다. ⓒ 김영조

 

 

나일성 교수는 “아무리 귀중한 국보와 보물이라 하여도 그것에 담긴 내용을 일반 대중들이 이해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다. 현재와 앞으로의 세대를 위하여 우리 겨레의 귀중한 과학문화 유물을 널리 인식시키려고 한글로 번역했다. 이 한글판은 옛 천문용어와 별자리 이름은 음을 따랐고, 해설문은 의역하였다. 그리고 제작에 참여한 관상감의 학자들의 이름에는 괄호 안에 한자를 넣어서, 관계있는 가문의 후손들이 알아볼 수 있게 했다.”고 말한다.

 

특히 이번에 같이 복원판을 낸 박연의 “혼천도”는 우리나라에 없고, 현재 일본 국회도서관에 보존되어 있다. 나 교수는 이 혼천도를 처음엔 직접 보지 못하고 가로세로 15센티미터 정도의 작은 흑백사진으로만 접했다. 이 작은 사진의 별들은 동그라미로 그려져 있었는데 검정빛과 회색으로 다른 것들이 있어서 별들엔 분명히 색깔이 있다는 확신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일본 동경대학 천문대 교수의 도움으로 직접 확인해 보니 이 혼천도는 5가지 색깔로 되어 있었는데 대충 사생을 해온 다음 색깔을 칠하고 다시 가서 잘못된 데가 없나 맞춰보고서 완성했다고 나 교수는 말한다. “박연혼천도”는 가로세로 164센티미터의 크기이다.

 

만일 나 교수가 일본 국회도서관에 가서 확인과 모사를 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이 소중한 천문도를 영원히 잊었을 것이다. 나 교수는 사람들이 박연을 음악가라고만 알고 있지만 사실은 뛰어난 천문학자이기도 했다고 말한다.

 

 

 

      ▲ 왼쪽은 각석 탁본, 오른쪽은 나일성 교수의 복원판 ⓒ 김영조

 

 

 

       가운데 별자리를 보면 위에 있는 랑성(狼星, 이리별)을 호성(弧星, 활별)이 활 모양으로

        쏘는 모양새로 별자리를 그렸다. 아래는 우리나라는 서귀포에서만 보인다는 노인성이

        보인다. ⓒ 김영조

 

 

이번 나 교수가 이뤄낸 공은 이것뿐이 아니다. 그는 오랜 세월을 거치는 동안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달아버린 천상열차분야지도를 탁본 형식으로 종이에 그려냈다.

 

국보 제228호 천상열차분야지도는 612년 전에 검은 석판에 새긴 천문도로 현재 국립고궁박물관에 보존되어 있으나 오랜 세월의 흔적으로 새긴 글씨와 별들을 잘 알아볼 수 없으며, 보물 제837호 천상열차분야지도도 현재 국립고궁박물관에 잘 보존되어 있지만 바탕이 흰 대리석 이어서, 글자와 별이 뚜렷하지 않다. 또 돌의 재질이 묽은 대리석이어서 만지면 표면에서 부스러기가 떨어지는 것이 목격되고 있다.

 

또 이 천상열차분야지도 탁본들이 여럿 남아 있지만 완전한 것은 하나도 없다. 게다가 가장 잘 보존된 것이라 하더라도 일부는 파손되고 남아 있는 부분도 글자를 정확하게 해독하기 어렵다. 나 교수는 이를 안타깝게 여겨 기존의 탁본을 원본으로 종이에 그리는 새로운 시도를 한 것이다.

 

나 교수는 설명 도중 재미있는 사실 하나를 귀띔해준다. “서양 천문도는 별자리 이름을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이나 동물 이름을 붙였다. 그렇지만 우리 천문도는 왕궁을 중심으로 직제와 직위를 별자리 이름으로 했다. 재미있는 것은 뒷간이나 창고 이름도 들어 있다는 것이다.”

 

또 나 교수는 말한다. “옛 사람들은 하늘을 천문도로 담아냈다고 했다. 하지만 왕궁의 직제와 직위, 심지어 뒷간과 창고 이름을 별자리에 쓴 것을 보면 사실은 옛 사람 자신들의 생각을 하늘에 그려 넣었다고 보아야 한다.”

 

 

 

     나일성 교수가 중국인 전문 화가에게 의뢰하여 강서대묘 현무도를 유화로 그렸다. ⓒ 김영조

 

 

조선왕조가 몰락하고 일제식민통치가 시작되자 아무도 각석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았는데 1960년대에 창경궁의 명정 전 추녀 밑에서 이 천상열차분야지도 각석은 풀밭에 내팽개쳐진 채 사람들의 발길에 이리저리 차이고 있었다고 한다. 전상운 성신여대 명예교수가 이 각석이 중요한 문화재임을 처음 알아봤다. 자칫하면 귀중한 문화재가 그대로 사라질 수도 있었던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런데 1910~1930년대 연희전문학교에서 근무했던 루퍼스란 미국학자는 1936년 출간한 ≪한국 천문학≫이란 책에서 천상열차분야지도를 “동양의 천문관이 집약된 섬세하고도 정확한 천문도”라고 격찬했지만 조선의 천문도는 중국 황제가 하사한 것이라는 엉뚱한 주장을 폈다고 한다.

 

이에 대해 나 교수는 “천상열차분야지도의 별자리는 중국의 별자리와는 별의 연결, 별자리의 형태에 차이가 있으며, 위치가 다르거나 목록에 없는 별자리도 있다. 특히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중국의 별자리 그림과는 달리 실제 밝기에 따라 그 크기가 다르게 표현되어 있다. 또 중국에서 이 커다란 바위, 더구나 옛 사람들이 중요하게 여겼던 천문도를 몇 천 리나 떨어진 조선에 갖다 줬을 까닭이 없다.”고 말한다.

 

 

 

      독일인 김에델트루트(Kim Edeltrud·69)씨는 나일성 교수가 번역한 천문도를 극찬했다.

        ⓒ 김영조

 

 

 

      한글판 혼천도 설명을 하는 나일성 교수(왼쪽) ⓒ 김영조

 

 

전시된 나 교수의 천문도를 보던 독일인 김에델트루트(Kim Edeltrud, 69살) 씨는 “나는 천문학을 전공하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그저 대단하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는다.”라며 극찬했다. 그녀는 한국말을 유창하게 했는데 1975년 한국에 왔고, 현재 한국문학을 독일어로 번역하고 있으며, 오정희의 《새로》대산번역상을 받았다고 한다.

 

나 교수는 앞으로 연세대 중앙도서관에 있는 “건상열차분야지도(乾象列次分野之圖)”를 복원하고 한글 번역을 해야 필생의 사업을 마무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나 교수에게 이 천문도들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우리는 이 노교수가 천문도를 우리에게 어떻게 전할 것인가 많이 고민하며 일생을 바쳤음을 알았다. 얘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그 안에는 엄청난 내공이 쌓였음을 짐작하게 했지만 또 한편으로 천진한 모습이 천문도에 삶을 바칠 수 있게 했음을 알게 했다.

 

 

※ 이 기사에 실린 천문도의 사진들은 저작권 문제 때문에 일부만 잘랐습니다. 양해바랍니다.

공동취재 김슬옹 목원대 겸임교수

 

 

 

출처 :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
글쓴이 : 김영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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