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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창수 화백의 그림 '농무' ⓒ 문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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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창수 화백의 그림 '농무' ⓒ 문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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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 서구문물이 급격히 들어오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김윤식, 김홍집, 어윤중 등 온건파는 서양의 우수한 기술을 수용하되 제도나 사상은 우리의 것이 우수하니 이를 지켜야 한다는 주장 즉 ‘동도서기론(東道西器論)’을 폈다. 동도서기론(東道西器論)은 우리의 전통적인 제도와 사상인 도(道)는 지키되, 근대 서구의 기술인 기(器)는 받아들이자는 이론이다.
이 이론은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비판도 물론 있다. 하지만, 서양 것을 무조건 배격하는 것보다는 한국의 정체성, 민족정신을 유지한 채 서양의 그릇 즉, 우리보다 발달된 기술이나 재료만 빌리자는 이야기는 설득력이 있는 내용이며, 그 이론은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한복을 디자인하는 데도 이젠 서양에서 개발된 디자인 캐드를 활용하며, 김치를 수출하기 위해서는 현대과학이 개발한 밀폐용기를 사용한다. 위대한 난방방법인 온돌을 쓰기 위해 아궁이에서 불을 때는 대신 온수 파이프가 들어간다. 이런 것들이 바로 동도서기의 한 예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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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창수 화백의 그림 '농무' ⓒ 문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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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창수 화백의 그림 '농무' ⓒ 문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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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 미술전에서도 ‘동도서기’를 본다. 경기도 광명시 광명시민회관 전시실에서 열리는 “로명 화인아트” 첫 번째 회원전에서 서양 유화에 풍물굿의 혼을 담은 그림들을 발견한 것이다. 한국미술협회 광명지부장을 역임했던 문창수 화백의 “농무”란 화제의 그림엔 분명 서양 미술재료를 썼지만 그 속엔 온통 조선의 정신이 들어 있는 것이 아닌가?
화폭 속엔 꽹과리, 장구, 징, 북 따위가 어우러지고, 상모의 긴 끈이 휘돌아가며, 세상을 열어젖히는 소리들이 공간 여기저기를 휘젓고 다닌다. 그리고 흔적을 남긴다. 어떤 것은 불타고, 어떤 그림은 신명이 어우러지고, 어떤 화폭은 천지를 진동케 한다.
소를 통해 민족적 정서를 다룬 이중섭과 회백색을 주로 하여 단조롭지만 한국적 주제를 서민적 감각으로 다룬 박수근 역시 서양화지만 한국적인 정체성을 담아내는데 혼을 쏟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나는 문창수에게서 이중섭과 박수근의 그런 생각을 읽었다 해도 그리 앞선 짐작은 아닐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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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호규 화백의 그림 '기다리는 여인' ⓒ 배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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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부 작가의 '아담과 이브' 조소상 ⓒ 김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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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은 광명시 철산동에 사무국을 둔 "로명 화인아트(RoMyeong FineArt, 회장 김수부)"의 첫 번째 회원전에서 볼 수 있다. 이 회원전은 경기도 광명시 ‘광명시민회관’ 전시실에서 오는 3월 30일(금)까지 열린다. 이 자리엔 김수부 회장과 문창수 화백을 비롯 박병오, 배호규, 신삼일, 유경희, 윤영배, 윤영숙, 윤태식, 이관호, 장희주씨가 출품하고 있다.
이제 꽃보라가 흩날리는 봄이 우리 곁에 다가섰다. 목련이 하나 둘 피어가고, 저 멀리 산모퉁이엔 진달래와 산수유가 흐드러지기 시작한다. 이 새봄 우리는 "로명 화인아트“ 회원전에서 한국적 정서를 만끽해보면 어떨까? 문창수 화백이 그린 동도서기의 정체성 짙은 그림을 살펴보는 것도 좋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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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물굿은 영혼의 소리, 화폭에 담는 즐거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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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동도서기의 그림을 그린 문창수 화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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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풍물굿을 주제로 한 그림을 설명하는 문창수 화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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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조
| - 언제부터 그림에 인생을 맡기게 되었나? “그림은 초등학교 때부터 좋아했다. 중학교 때 미술학원에 가고 싶었지만, 집안 형편이 어려워 학원비를 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한 달을 쫓아다니며 공들인 끝에 학원 원장선생님은 나를 내제자로 삼아 가르쳐주셨다. 본격적인 공부는 홍익대학교 미술교육원 최명영 교수님께 배운 9년간이다.”
- 그림은 거의 풍물굿으로 일관했는데 그럴 까닭이라도 있는가? “풍물굿은 내가 좋아하는 소리이다. 그 속엔 상모의 선이 있고, 율동미가 있으며, 강한 원색과 기운이 있다. 꽹과리, 징 등 4가지의 화음은 영혼이 소리이다. 그 풍물굿의 기와 율동미를 드러내 보고 싶었다. 오랫동안 풍물굿만 그리다 보니 주위 사람들이 ‘너무 우려먹는다.’ 또는 ‘매너리즘에 빠진 것 아닌가?’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리 해도 아직 만족스러운 그림을 그리지 못한 걸 어떻게 하나? 서양화에 한국문화를 담는 작업은 정말 어렵다. 이것을 제대로 해냈다는 생각이 들어야 다른 소재로 옮길 수 있을 것이다. 만족감이 들고, 제대로 평가받을 때까지는 그릴 것이다. 아직은 풍물굿을 소재로 그리는 것이 정말 즐거울 뿐이다.“
- 이 사회나 후배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은? “유럽에서는 한국을 가장 유력한 그림시장으로 선정했다. 중국 미술계는 아직 고유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고, 일본은 미흡하다고 평가하지만, 한국 작가들의 역량은 충분하다고 말한다. 또 우리 사회가 아직 문화ㆍ예술이 절박하지 않지만 머지않아 절박한 사회가 올 것이란 생각이다. 시민들에겐 좀 더 문화ㆍ예술에 대한 관심을 둬달라고 부탁하고, 후배들에겐 희망을 가진다면 머지않아 좋은 날이 올 것이라 말해주고 싶다.” / 김영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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