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남산 일원(南山 一圓)
칠불암 바위
칠불암 마애 석불
칠불암 마애 석불
칠불암 마애 석불
불곡 마애 여래 좌상
삼릉곡 선각 여래 좌상 전경
삼릉곡 선각 여래 입상 삼존불
삼릉곡 마애 여래 좌상
삼릉곡 관음보살 입상
탑곡 사방불 동면불, 보살, 비천상
탑곡 사방불 북면 쌍탑, 여래 좌상
•지정 번호; 사적 311호
•소재지; 경상북도 경주시 인왕동 외 4개동, 내남면 용장리 외 2개리
•지정일; 1985년 2월 23일
•시대; 신라
•분류; 기타 유적지
•내용; 경주 남산은 금오산(金鰲山)이라고도 하며, 신라 천년의 역사를 통해 가장 신성시 되어왔던 곳이다. 경주 남산 일원은 주봉인 금오산을 비롯해서 도당산(都堂山), 양산(楊山), 그리고 외산의 주봉인 고위산(高位山) 등으로 이루어졌으며, 높이 468m의 정상으로부터 사방으로 흘러내린 계곡이 30여 소 이상이다. 이 산에는 수많은 전설과 역사 유적들이 펼쳐져 있는 곳으로 절터・석탑・석불 등 불교 유적 외에도 왕릉・고분・궁궐 터・산성 터 등이 남아 있어 신라 천년의 미술사를 펼쳐 놓은 듯하며 신라 문화가 이곳에 집결된 느낌이 드는 곳이다. 지정 면적은 1,809만 9,000㎡[약 548만 4,545평]에 이르는 광대한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남산에서 나라 일을 의논하면 반드시 성공하였다는 기록이 있는데 그런 까닭에 남산에 얽힌 전설이 많은 편이다.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朴赫居世)는 남산 기슭의 나정(사적 245호)이라는 곳에서 태어났다고 하며, 남산의 산신이 나타나 헌강왕(憲康王)에게 신라의 멸망을 경고하였지만 깨닫지 못하여 결국은 멸망을 하게 되었다는 전설도 전해지고 있다. 남산에 있는 유적 중 중요한 것으로는 미륵곡 석조 여래 좌상(보물 136호), 옥룡암계곡(玉龍庵溪谷)의 부처바위, 포석정지(사적 1호), 배리 3존 석불(보물 63호), 3릉계곡의 산신불, 약수계(藥水溪)의 대마애불(大磨崖佛), 용장사지(茸長寺址), 백운대(白雲臺)의 마애불, 서출지(사적 138호), 남산성(사적 22호), 천룡사지(天龍寺址), 창림사지(昌林寺址) 등이 있다.
•특기 사항; 주요 문화재로는 미륵곡 석조 여래 좌상, 포석정지, 남산성 등이 있는데 다양한 문화재가 곳곳에 있어 신라 천년의 역사가 펼쳐진 듯하다.
•이야기; 아주 오래 전 쇠벌이라 불리던 경주는 맑은 시내가 흐르는 푸른 벌판이었다. 평화로운 쇠벌에 두 신이 찾아왔다. 맑은 시냇가에서 빨래하던 처녀가 두 신을 보았다. 강한 근육이 울퉁불퉁한 남신과 부드럽고 고운 얼굴의 여신이었다. 두 신은 아름답고 기름진 쇠벌의 경치를 둘러보더니 남신이 입을 열어 “우리가 살 곳은 바로 이 곳이로구나!” 하고 외쳤다. 이 때 강가에서 빨래하던 한 처녀가 너무 놀라 “저기 산 같은 사람 봐라!” 해야 할 것을 “산 봐라” 하고 소리를 질려버렸다. 비명에 놀란 두 신이 발길을 멈추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다시는 발을 옮길 수 없었다. 처녀의 외침으로 두 신이 산으로 변하게 된 것이다. 여신은 남산 서쪽에 아담하게 솟아오른 망산(望山, 232m)이 되었고, 남신은 장엄한 남산이 되었다. 두 신이 변해 이루어졌다는 남산과 망산은 지금도 나란히 정답게 솟아있다. 망산 곁에는 젊은 산인 벽도산(碧桃山)과 선도산(仙桃山) 등이 있다. 이들은 젊음을 힘으로 해서 얌전한 망산을 쉴 새 없이 유혹한다. 그래도 망산의 머리는 언제나 남산 쪽으로 향하고 있으니 망산의 절개가 변치 않는 한 쇠벌 처녀들의 순결도 변치 않는다고 딸을 가진 쇠벌의 부모들은 언제나 망산을 바라보면서 한시름 덜고 살아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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