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고 싶은 시

[스크랩] 주산지 왕버들/ 반칠환

문근영 2015. 5. 26. 06:38

 

 

 

주산지 왕버들/ 반칠환

 

 

누군들 젖지 않은 생이 있으려마는

150년 동안 무릎 밑이 말라본 적이 없습니다

피안은 발 몇 걸음 밖에서 손짓하는데

나는 평생을 건너도 내 슬픔을

다 건널 수는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신은 왜 낙타로 하여금

평생 마른 사막을 걷도록 하시고,

저로 하여금 물의 감옥에 들게 하신 걸까요

젊은 날, 분노는 나의 우듬지를 썩게 하고

절망은 발가락이 문드러지게 했지만,

이제 겨우 사막과 물이 둘이 아님을 압니다

이곳에도 봄이 오면 나는 꽃을 피우고

물새들이 내 어깨에 날아와 앉습니다

이제 피안을 지척에 두고도 오르지 않는 것은

나의 슬픔이 나의 꽃인 걸 어렴풋이

알았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 시집『 전쟁광 보호구역』(지혜,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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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칼코마니처럼 나무가 비취는 호수, 그 호수를 품은 산. 그리고 적막. 이곳의 출입을 위해서는 우선 초입에서 그쪽 토박이 바람에게 무장해제 됨과 동시에 날숨을 맡겨야 한다. 눈은 절반쯤 감은 채 젖은 땅 무릎 세우고 느리게 걷는다. 함몰된 침묵 사이로 헛기침이 새어나오지 않도록 조심조심하며 행여 서툰 상상력이 발동하여 돌멩이 하나 호수를 향해 집어 들어서도 안 된다.

 

 하지만 청력에 문제가 없다면 황조롱이 그 울음은 천국의 종소리로 착각하여도 좋다. 역사의 난파선이 고스란히 수장되어 희빈 장씨 역전패의 한과 함께 이무기 두어 마리 도사리고 있을 호수는 얼핏 보면 참 그로테스크하다. 세상과의 교접을 허용하진 아니하되 산기슭에 땅 붙여먹는 몇 십 가구에만 조용히 물을 내려 보내며 예술이나 미학, 그도 아니면 박물학이나 중세철학에 실눈이나마 뜬 자 만을 제한하여 출입시키고 있다.

 

 150년이고 200년이고 왕버들의 나이는 묻지 않는 게 좋겠다. 차라리 호숫가로 유배된 목선의 정박을 두고 언제 바다로 갈 것이냐 물어라. 아마 그들은 말하리라. 우리는 바다보다 더 멀리 더 갈 곳 없는 극점까지 이미 왔노라고. 세상 다하는 날까지 그렇게 바람과 물과 일몰의 꽃만을 피우겠노라고. 이미 평생을 물의 감옥에 든 몸이니 생애를 건너도 다 건널 수 없는 슬픔 따위는 없다고.

 

 하느님은 말씀하셨다. 고통은 시련을 이겨낼 것들에게만 주는 선물이라고. 이제 그 시련 다 견디고 ‘겨우 사막과 물이 둘이 아님을’ 안다. 이곳에도 봄이 와서 연두로 물들고 꽃을 피우면 ‘물새들이 내 어깨에 날아와 앉’을 것이다. 그만하면 피안을 지척에 두고도 오르지 않는 이유를 알리라. ‘나의 슬픔이 나의 꽃’이라 말하지 않더라도. 그래서 주산지 왕버들은 탱탱하기만 한 당신의 삶에 한 방울로도 충분한 이완제이며 유연제인 까닭이리라.

 

 

권순진

 

Yanni - Tribute

출처 : 詩하늘 통신
글쓴이 : 제4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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