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고 싶은 시

[스크랩] 나는 누구인가의 지주이다 / 차주일 / 제5회 시산맥 작품상

문근영 2015. 5. 14. 07:42

나는 누군가의 지주(地主)이다

-늙은 삼각형의 공식

 

           차주일

 

 

 

땀내 한 다랑이 경작하는 농사꾼과 악수할 때

손바닥으로 전해 오는 악력(握力)은 삼각형의 높이이다

얼굴이 경작하는 주름의 꼭짓점마다 땀방울이 열려 있다

땀이 늙은이 걸음처럼 느릿느릿 흘러내리는 건

얼굴에서 발까지 선분을 그어 품의 높이를 구하기 때문

소금기를 남기며 닳는 땀방울 자국을

사람의 약력(略歷)으로 출토해도 되나?

겨우내 무너진 밭두렁을 족장(足掌) 수로 재며

뙈기밭의 넓이를 구하던 이 허리 굽은 사내는 나의 첫 삼각형

등 굽혀 만든 앞품을 내 등에 밀착하고

새끼가 품의 넓이란 것 스스로 풀이하게 한 삼각형 공식

어린 손등에 손바닥을 밀착하여

까칠까칠한 수많은 꼭짓점을 별자리로 생각하게 한

엄지와 검지를 밑변과 빗변처럼 괴게 하여

절대 쓰러지지 않는 높이로 연필 거머쥐게 하고

내 이름자를 새 별자리 그리듯 처음 쓰게 한

피라미드처럼 몰락해버린 한 사내의 악력은, 왜 지금껏

사내의 품을 땀내로 환산하게 하는가

늙은 삼각형이 악수한 손을 놓지 않고 흔들어댄다

내 팔꿈치가 농사꾼의 허리 각도를 이해할 때

내 몸 통각점들이 지워진 선분을 다시 긋는다

내 이름자 획순으로 흐트러진 사내의 골격이 내 몸속에서 읽힐 때

연필심에 묻혔던 침만큼의 땀이 손바닥에 어린다

내 눈은 왜 땀에 젖은 손바닥을 꼭짓점으로 이해하는가

젖은 눈은 왜 나를 타인 되게 하는가

내가 누군가의 눈으로

그의 얼굴과 손과 발 세 변의 길이를 잰다

내가 누군가의 눈을 껌벅이며 곤혹스러워할 때

삼각형의 높이를 잴 눈물이 제자리에서 마른다

내가 이 점(點)에 염기를 경작하여

누군가의 발까지 이르는 높이 하나 짠내 나게 그으면

나는 누군가의 지주(地主)가 된다

 

 

 

-2013년 계간<시산맥> 겨울호 - 시산맥 작품상 추천글에서
 
출처 : 수천윤명수시인과함께
글쓴이 : 수천/윤명수&짝꿍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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