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의 귀향
김동국
남들은 논밭을 챙겨 떠나는 고향을
나는 스무 살의 3월에 빈 마음으로 돌아왔다
낮아진 뜰 아래 하늘은 엎드려 뒹굴고
쌓이지 않는 얘기를 쌓으며 봄눈이 내렸다
울 밑에 붙어선 개나리 마른 가지
아버지의 농업은 봄눈이었을까
내가 도시의 하늘에 외롭게 떠서
구석기 시대를 외우고 미적분을 푸는 동안
유물처럼 늙으신 아버지
풀리지 않는 가난을 노랗게 가꾸시다
산으로 떠나셨다
그것은 꿈이었을까
지붕 타고 내려와 쌓이는 山 그늘을 부지깽이로 휘저으며 저녁 소죽을 끓이는 아궁이에 검불은 타닥타닥 불똥 튀기는 햇살로 되살아나고, 불꽃 사위면 더욱 진한 어둠에 빠져들던 幼年의 안마당, 성큼 다가서는 西山 숲에서 귀신처럼 실눈 뜨고 소쩌앙 소쩌앙 울어대는 손톱달이 묵은 묘지 위로 물구나무 서 갈 때, 삽짝길 들어서는 아버지의 헛기침 소리에 내 손목 탈치고 손톱달 깜짝 숨어버리는 숲에서 먹물처럼 번져오던 어둠, 어둠, 그 푸근한 어둠 속으로 아버지를 따라 들어서던 해빙의 들판과 들바람, 시린 물소리, 왁자지껄 안마당에 쏟아지던 별들 별들, 그 빛나던 所有, 그건 정말 꿈이었을까?
한 평생 지고 다니시던 골짜기 논바닥들
헛간의 빈 지게 위에 이승을 벗어 놓고
산으로 떠나신 아버지
지금은 殘雪을 베고 누워
풀리지 않던 가난 삶의 의문표들을
하얀 낮달로 띄워놓고 계실까
울밑에 돌아와 선 내 스물의 3월
개나리 마른 가지에
무엇인가 따뜻하게 쌓으며 쌓으며 봄눈이 내린다
-1983년 한국방송통신대학문학상 수상작-
출처 : 수천윤명수시인과함께
글쓴이 : 수천/윤명수&짝꿍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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