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고 싶은 시

[스크랩] 제25회 현대시학 신인상 당선작 /김인숙 조영민

문근영 2015. 4. 29. 05:51

제25회 현대시학 신인상 당선작 /김인숙 조영민

 

어떤 울음, 대숲의 유전자를 가진 (외 4편)

                                                                조영민

 

 

 

망각의 배후에서 일평생 울음 음계만 섭취하던 종족을 나는 본 적 있다

 

이를테면,

내가 밤  새 왼쪽 옆구리로 몰린 상념들을 일으켜 오른쪽으로 다시 돌아누웠다거나

창가에 누군가 서성이며 밤새 눅눅한 공명의 휘파람을 불다 떠난 날이면

여지없이 아침 대숲에는,

 

밤새 누군가가 적시다 남긴 슬픔의 부스러기가 수북이 쌓여 있곤 했다

대숲의 유전자를 가진 울음은 언제나 야행성이다

그러나 세상 어느 누가,

푸른 울음들의 행방을 찾기 위해 도회지 골목 끝 야심한 발톱들을 수소문할 것이며

세상 어느 누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소문들을 조우하기 위해 여의도 광장으로 나갈 것인가

 

한때 나는, 야심한 시각 제 몸의 늑골 속에다 울음의 음계를 저장하는 대숲에 든 적 있다

소리가 나는 것들은 죄다 동물성이라고 믿었던 그 때

밤새, 퍼 올려도 퍼 올려도 뿌리가 잘 마르지 않던 그녀의 젖은 밤을 본 후

나는, 울음을 관절 속에 저장하는 푸른 家系들의 경전을 찾아 얼마나 먼 길을 허비했던가

 

길을 걸으면, 지난날 내 청춘의 상념 안쪽에서 누군가 울음을 엎지르는 소리 들린다

그런 날, 나의 잠은 늘 성장을 더디 했고

어머니는 대숲처럼 방 안에서 몇날 며칠이고 두문불출하곤 했다

 

오늘 또 다시 내 불혹의 입구 저쪽 어딘가에서 오래전 듣던 대숲이 운다

 

 

 

 

이상한 나라

 

 

 

 

퇴근 후, 몸은 벽걸이에 걸렸던 옷처럼 떨어졌어요 나는 어떤 계절일까요

 

아프리카의 코 같은 말라위나 세상의 허파 같은 미국도 아니에요 유럽이 신다 버린 구두 한 짝 같은 이탈리아도 아니에요 일찍이 들판에 물이 오를 때부터 이 땅은 왜, 반란이라는 바람이 자주 부나요 많은 꽃들은 염소울음 같은 연기들을 뿜어대고 자객들은 밤마다 곤충처럼 날아다니네요 비와 안개는 길을 지우고 슬픔은 잡초처럼 쑥쑥 자라고 저 많은 들판 냇물 언덕은 누가 함부로 그어놨을까요 싱싱한 까마귀 떼들은 누가 함부로 삭제했을까요 들꽃 영토 게시판에는 의문의 몽타주가 늘어나고요 해안 초소의 경계병인 해당화 꽃은 달의 속치마나 들추고 있지요

 

온종일 들꽃 공화국의 바람들은 어떤 주머니를 찾아다니는지 옷에서 비린 세탁소 냄새가 나네요 잦은 변화로 옮겨 심어도 소용없는 이 들판의 해충들. 꽃들의 신앙인 카멜레온은 더디고요. 제가 낳은 씨앗들은 이미 알 수 없는 벌레들의 자치구 태양은 왜 꽃들의 위험을 눈부시게 비추고만 있나요

 

들꽃장부보관소의 민들레 통치 자료를 난로 속에 쉴 새 없이 태우는 겨울, 본래 이 들판은 통치가 필요 없었을지도 몰라요 흙이면서도 흙이 아닌, 우주가 아니면서도 우주인 허공처럼 태어날 때부터 이미 다른 계절들의 식민지는 아니었을까요 개화의 전성기도 없는 해충들의 배후, 다스릴수록 병명만 늘어가는

 

사람들은 가끔 저를 엘리스 왕국이라고 부르지만, 정확한 이름은 아닐 거예요 들판의 처음과 나중이 엉켜버린 계절에 이름 따위가 무슨 소용이겠어요 저는 누군가의 아이디 속 까맣게 잊힌 비밀번호인지도 몰라요

 

 

 

길갓집

 

 

 

 

고속도로 한켠

‘배 팝니다’ 를 온종일 머리에 이고 서 있는 집 한 채

달리는 졸음들이 던진 타액은, 유리창에 탁한 구름이 되고

인적이 끊긴 그곳은, 언제부턴가 햇빛이 단일품목이다

무료한 오후가 되면, 먼지 앉은 햇빛을 꾸벅꾸벅 손질하던 강아지와

더러는 갓 출하된 소음이 간판보다 환히 눈에 띄기도 하고

흐린 날에는 처마 밑이 그렁그렁, 속눈썹을 잠재우기도 하는 집

 

밤이면 희미한 적막 하나 방석처럼 가로등을 깔고 앉아

마실 나온 달빛을 물고 쫄랑대는 강아지와 함께 사는,

속도를 놓친 바람이 그 집을 여인숙으로 착각했는지

허기에 지친 발길로 해진 유리창 안쪽을 기웃거리다 사라진다

더는 팔 것이 없는 야심한 밤이면

폭주의 굉음들이 남기고 간 헤드라이트 불빛을 떨이하거나

끝도 시작도 없는 길의 입구를 양손에 들고 한참을 서성인다

 

그러나 봄이면, 배꽃과 함께 인기척도 돌아와

진도 바닷길이나 산청 약초축제를 곰곰 서두를 것도 같은

 

앞으로도 한동안

길갓집은 빨리 낡아갈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 늙음만큼 새 것이 있는가

생의 기울어짐은 이곳에 새로운 계절들을 불러올 것이고

당신도 어느 날 이곳에 다다르면 한때 이곳이 까마귀와 배의 우화가

하얗게 피고 지던 곳임을 알고 그리움 안쪽으로 화.들.짝.

길을 잃을 것이다. 망각도 오래되면 새로운 이정표가 되는지

취기에 흔들리던 트럭 하나 적막한 집 앞에 차를 세우고

아득히 먼 유년의 저장고를 열고서

지퍼 안쪽 시간들을 들풀 저쪽으로 배설하고 떠나간다

 

 

 

 

 

소리꽃

 

 

 

 

 

나팔꽃이 햇살 한 모금 길게 연주를 하는 공원 벤치

 

언제부터 소리가 주식이었을까, 저 비둘기들

소리에 저렇게 배가 고팠다니, 잘 데워진 공원 한켠에서

길거나 짧은 음표로 늦은 공복을 수선하고 있다

 

한낮의 태양이 나른하고 미지근한 바람과 앙상블로

나팔꽃을 연주하는 그 곁에서

생의 무대를 막 은퇴한 곱슬머리 지팡이 하나가

뒤틀린 몸으로 까마득히 졸고 있는 한낮, 그러나 소리들은

우리의 방심을 틈타 오후보다 빨리 시들곤 했고

가끔은 잘 열리지 않는 기억의 틈바구니에서

시든 악보 한 송이 불협화음의 세월을 견디기도 한다

한 소리가 지고 나면 다른 소리가 그 자리로 되돌아오는지

해마다 오월이면 우리의 망각 속으로, 소리들이 피어난다

 

저, 앙상하고 질긴

엽록의 덩굴들이 퍼 올리는 소리는 어떤 음계일까, 나 오늘

저녁 바람이 모두 소화불량에 걸린 것도 잊은 채

푸르거나 붉은 음계들 몇, 오래 듣고 있다

 

 

 

 

 

가을史

 

 

 

 

카드를 슬쩍 바꿔치기한 날씨였다

골목을 나서면 옷을 차려입은 바람이 달려왔다

바람의 근육에서 향수가 느껴질 때

내가 바람의 지인 같았다

하늘은 노름판이어서 꼭 패를 맞춰보고 싶었다

구름은 오후에 맞춰 보아야할 패였지만

아침부터 돌렸다 나는 밤보다 아침에 잃은 게 많았다

길이나 태양을 까면 빈껍데기뿐이었다

날마다 시간은 패를 돌리지만

내가 애인처럼 데리고 들어가는 고독도

짜고 쳤다

돌 틈에 꽃이 만발하고 냇물에 간밤 별들의 겨드랑이 냄새가 날 때

판을 뒤엎고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누군가가 미리 본 것들이다 뒤돌아보면

마을이라는 것은

산들이 카드 패를 즐기다 오줌을 누러 일어선 자리

집을 하나하나 엿보면 빈 카드나 들고 있다

오래 전부터 남은 패를 들고 있던 아버지가

훤히 들여다보이는데, 식구들은

밥상에 패를 놓지만 아버지는 끝내 내놓지 않았다

보여주지 않는 것은 다 보여준 걸 알기 때문이라는 걸 모르고

아버지는 남은 패를 모종에 맞추곤 했다

아침이면 패가 돌아가고 내놓을 패가 없어지자

자리에서 우리를 털곤 했던 아버지

우리는 아버지의 새 카드 패였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

조영민 / 전남 장흥 출생.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및 삼육대 대학원 졸업. 2012년 영남일보 문학상 시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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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쇄회로 (외 4편)

 

 

                                                   김인숙

 

 

 

 

 

나는 TV를 켜고 채널을 돌린다

하루를 여는 CCTV.

멈춰진 많은 시간을 창밖에 두고 잘 수 없다

한 번도 허기진 적 없다

항상 허공에 의지한 육중한 체중, 그리고 고통,

도망치는 발소리 쫓아 눈을 회전시킨다

그림자가 줄어든 겨울

내 관절에 시간을 쏟아내는 밤

구겨진 계단을 재단하던 가로등이

내 옆구리에 눈을 밀어 넣고 있다

숨을 몰아쉬면서 인기척을 듣는다

왕성한 이빨만 드러낸 호기심 섞인 차가운 속내

그들은 내 시야를 벗어나려고 발버둥친다

어떤 이는 안테나로 달빛을 끌어당기고

누군가는 고양이 꼬리를 넘나들며 주정을 부린다

개 짖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소리 없는 폭설은 아우성쳤다

그들은 내 삶 밖에서

그들의 삶 속에서

비밀이 살해된 세상

나로 돌아가고 있다

 

 

 

여름 판타지

 

 

 

햇살을 양푼에다 비벼 먹어야지

일요일은 일렁이는 포도나무 아래로

기어다녀야지 쏟아지는 비를

기다려야지 하늘이 뚫린 작은 방에

내 우울을 가둬야지

벌겋게 타올라야지 쑥쑥 자란

말들을 비워내야지 슬픔은

목젖 아래 밀어붙여야지 말라터진

입술로 긴 촉수를 뻗어야지

내 우울을 뿌리째 뽑아들고

덜덜 떨어야지 난 맨발로

뛰어들어 일요일을 부숴버려야지,

신경줄처럼 매달린 내 분노의 포도알들을 으깨버려야지,

내 속의 비명을 들어야지,

그물처럼 출렁이면서

 

 

 

 

순간 스케치

 

 

 

 

그녀는 용수철 튀어오르듯 소리쳤다 눈싸움을 하세요 골목의 눈을 밀고 내려오자 그녀는 다시 외쳤다 안돼요, 거기는 썰매가 지나갈 곳이에요 어설피 잡은 눈덩이가 손에서 미끄러진다

 

 

눈발의 아우성, 이쪽저쪽에서 사람들의 눈 터는 소리, 눈발마저 잠재우는 포장마차의 김발, 뚫고 나갈 틈이 없다 파리바게트 유명약국 애플피시방 간판까지 바꾸는 눈발, 바람 한 자락 내려와 불 켜진 십자가에 블록을 쌓는다 낡은 집 처마 걱정, 나는 서둘러 걸음을 옮긴다 눈싸움을 하세요

 

골목 끝 집의 소녀, 붉은 망토를 걸친 푸들과 썰매를 탄다 내일을 바겐세일하는 전당포, 사람들은 눈을 헤치고 비틀비틀 꿈을 빌리러 간다 고래라도 잡을 듯이 속력을 내는 망사스타킹들의 발길, 쌓인 눈이 스르르 돌아앉는다

폭설, 내가 던진 눈덩이가 사람들 가슴에 떨어지는 소리, 투명하다

 

 

 

 

작별 판타지아

 

 

 

그림자가 일렁이는 어둠 속에서는 죽어 있는 자신을 본다고 그는 15년째 말하고 있다 어째서 죽어 있는 자신이냐는 질문은 이제 와 부질없다 그는 그것이 고양이를 업고 전생, 후생을 넘나들었던 핏줄의 대물림 탓이라고 믿었다

 

그는 자신을 찾기 위해 위험한 빙판길을 나서지는 않는다 대추나무 빗으로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면 그는 죽어 있는 자신을 볼 것이라고 했다 내 주검 앞에서 사람들이 사탕 알을 굴리는지 쓸개를 씹는지 볼 것이라고 했다 그것이야말로 씁쓸한 영화일 것이라고 그는 재미있어 했다

 

“그렇긴 해도 벗어놓은 모자만큼의 허전함이겠지요?”

 

그의 최후는 모든 꿈이 빈 껍질로 허우적거릴 뿐이라는 그의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마지막 순간에 고양이 울음이라도 남기기를 바랐다

 

TV에서 저 세상 악귀들이 신음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밧줄을 잡아 오르려고 아우성치는 것이 당연한 게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다

 

그래 고양이의 투시안? 신의 흔적마저 꿰뚫는 귓바퀴?

그는 그것이 고양이를 업고 전생, 후생을 넘나들었던

그의 가계(家系) 물림이라고 믿었다

 

 

 

사각형의 한쪽 모서리

 

 

 

 

12월, 그날, 나는 기차를 탄다 am7, 아침이 휘파람을 분다 균열을 보인 역엔 소주병들이 구른다 나무의자, 유리창에 눌린 얼굴, 뼈마디에 새겨진다 기차가 숨을 토해낸다 누군가 뿜어 올린 담배 연기, 천안, 익산, 지도를 그린다 폰은 9시쯤 폭우를 만날 것이라고 예보했다 말라비틀어진 내 이름, 패배감의 무게, 바깥 풍경, 하얗게 저울질한다 그 시소놀이, 목구멍 가득 들어찬다

 

 

허물어지듯 급정거하는 기차, 난 셔터 누르듯 기차에서 내린다 네거티브 필름이 깊이 새겨진 내 이름, pm6, 기차는 역을 출발한다, 나는 악수를 한다 하늘 한쪽으로 기운 내가 허물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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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숙 / 강원 강릉 출생. 성신여자대학교 동대학원 일문학 석사. 관동대학교 일어일문학과 겸임교수 정년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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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이미지의 확장, 환상과 실체 / 정진규

 

 

 

신인들의 시를 읽어가다 보면 유독 눈에, 그리고 가슴에 와 닿는 대목이 있다. ‘와 닿는’이라는 말에는 어떤 긍정적인 충격의 새로움만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부정적인 타기의 대상이 또한 아울러 자리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이번 투고 작품 1,160편을 읽어가는 동안에도 이 같은 상황은 선자를 자유롭게 열어주기도 하고 무섭게 가두기도 했음을 고백한다. 어쩐 일인지 이번에는 그 양자의 비중이 후자에 크게 기울였다. 선자의 체험으로 비추어 볼 때, 기성 시단의 작품 자체가 지니고 있는 기류가 그때그때에 따라서 혼미에 빠질 때가 있고 새롭게 탄력을 회복할 때 가 있는데, 신인 응모 작품의 수준도 이에 그대로 비례하는 것이 그동안의 사례였다. 요즈음 기성시단의 형편이 전에 없이 이완되고 혼미 속에 빠져 있음을 이번의 경우에서도 만날 수가 있었다.

이러한 가운데서도 탐색을 거듭한 끝에 조영민, 김인숙, 김상지, 장진영 등의 시편을 끝까지 읽어내는 가운데 있었던 것은 다행한 일이었다

조영민의 시가 ‘와 닿는’ 첫 번째 요인은 처음부터 일상적인 전개 속에서도 시로서의 화법, 그 문맥이 주는 시 공간을 잊지 않고 열어 보이고 있음에 있었다.

우선 그의 「가을史」만 해도 일상의 사물이나 상황의 전이를 화투나 투전의 ‘패’로 자리바꿈, 한바탕 이미지의 끗수 노름을 전개하고 있음은 얼마나 신선한가. “날마다 시간은 패를 돌리지만/ 내가 애인처럼 데리고 들어가는 고독도/ 짜고 쳤다”에서 보이는 표현 또한 굴신자재하는 유연성을 지니고 있다. 이 같은 시의 운용은 다른 작품으로 넘어갈수록 활달해져서 이미지 확장에 가속이 붙고 있다. ‘나팔꽃’을 “길거나 짧은 음표로 늦은 공복을 수선하고 있다”(「소리꽃」)고 거침없이 가시화하고 있음은 흔치 않은 ‘열어 보임’이다.

한 가지 유의할 점은 반복적 구조로 리듬화하는 이미지에도 장광설이 있을 수 있어 이럴 때 탄력과 긴장을 잃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 기미가 조영민의 시에도 있어 자신도 모르게 리듬에 예인되는 흥분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가을史」, 「소리꽃」, 「길갓집」, 「이상한 나라」, 「어떤 울음, 대숲의 유전자를 가진」 다섯 편을 당선작으로 동의했다. 고른 수준의 작품이었다.

김인숙의 환상적인 이미지들이 단순치가 않았다. 그야말로 지나친 내면 굴절의 ‘폐쇄회로’에 갇혀서 객관적 등가성을 폐기한 시편들이 횡횡하는 작금의 한 흐름으로 보아서는 아니 됨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내면이 지니는 ‘견성貝性’의 과정이 외연의 사물들과 만나 벌이는 이미지의 싸움이 그의 환상이다. 그래서 그의 환상에는 객관적 실체의 동력動力이 감지된다. “내 관절에 시간을 쏟아내는 밤/ 구겨진 계단을 재단하던 가로등이/ 내 옆구리에 눈을 밀어 넣고 있다/ 숨을 몰아쉬면서 인기척을 듣는다/ 왕성한 이빨만 드러낸 호기심 섞인 차가운 속내 폐쇄회로 그의 속내”(「폐쇄회로」) 그의 ‘속내’엔 끊임없는 ‘동력’의, ‘생동’의, 그림이 그려지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 유의할 점이 없지 않다. 설정한 이미지의 초점이 너무 환상으로 기울어 경직된 관념의 덩어리를 노출할 때가 있다는 점이다. 「여름 판타지」에서처럼 경쾌하고 유니크한 대목도 없지는 않았으나, 자신의 의식을 제어하지 못할 때 환상의 무방비 상태가 올 수 있다 .그러나 대체로 균형을 잡고 있는 작품들이어서 조영민의 시편들과 함께 당선작으로 동의했다.

끝까지 남은 장진영, 김상지 씨의 작품도 일정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위의 작품들과 함께 논의되었으나, 장진영 씨의 경우는 선시적 깨달음에 너무 비중을 두었다는 지적이었고 김상지 씨의 경우는 사유의 깊이가 모자라고 작위적인 이미지의 병치가 문맥에 혼란을 보였다는 지적이었다. 앞으로 좀 더 분발하시기 바란다.

 

 

 

 

풍류와 이미지 / 상희구

 

 

 

이번에 최종심에 넘어온 조영민 씨의 작품 「가을史」는 우선 시를 빚어내는 솜씨가 범상치 않았고, 이미지의 전개가 마치 찰깍찰깍 넘겨지는 슬라이드 환등기처럼 리드미컬하고 능숙하다. 우리네의 외롭고도 복잡한 日常事를 화투짝의 ‘패’를 끌어다가 눙치는 솜씨가 여간내기가 아닌데 특히 “내가 애인처럼 데리고 들어가는 고독도/ 짜고 쳤다”라든가 마지막 연에 “아침이면 패가 돌아가고 내놓을 패가 없어지자/ 자리에서 우리를 털곤 했던 아버지/ 우리는 아버지의 새 카드 패였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같은 대목은 압권이었다. 씨의 작품 「가을史」를 당선작으로 미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전연 문제가 없지는 않았다. 選考를 쓰느라 무려 100여 차례나 숙독을 하였으나 손아귀에 잡히는 묵직한 알맹이가 없었다. 이즈음 시를 쓰려고 하는 신인들이 흔히 가지는 병폐들을 그대로 답습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 차라리 제목을 「가을史」보다는 「패」로 하였으면 어땠을까?

김인숙 씨의 작품「폐쇄회로」는 다소 무거운 주제를 간결한 필치로 엮어낸 솜씨가 돋보인다. 보통 우리가 보는 TV를 개회로(開回路), 오픈 시스템이라고 하는데, 이는 불특정 다수에게 영상을 송신하는 것인데 반하여 대개 CCTV라고 하는 폐쇄회로는 제한된 범위의 사람에게만 보여지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흔히 감시카메라라고 하는 것인데 주로 음침한 뒷골목이나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사각지대(死角地帶)를 비추어 범인들을 추적하거나 범죄 예방용으로 쓰이곤 한다. 그러므로 당연히 폐쇄회로라는 명칭이 주는 어감은 음습하고 무겁다. 씨는 작품「폐쇄회로」에서 “항상 허공에 의지한 육중한 체중, 그리고 고통/ 도망치는 발소리 쫓아 눈을 회전 시킨다”라든가 “구겨진 계단을 재단하던 가로등이/ 내 옆구리에 눈을 밀어 넣고 있다”라고 하여 무겁고 음습한 분위기를 잘 그려내고 있다. 어둡고 습한 것을 간결하고 드라이한 것으로 빚어내는 솜씨에 씨의 작품을 당선작으로 올리는데 흔쾌히 동의했다. 한편 씨의 「여름 판타지」는 이번 응모작 대부분의 주제가 무겁거나 난삽한 데 비하여 파스텔톤의 가벼운 터치로 한 ‘계절’을 그려낸 것이기에 퍽 인상적이었다.

이번에도 신인상 후보 응모작에는 이미지 시가 주류를 이루었다. 우리 시에 두 가지 큰 갈래가 있다면 풍류와 이미지가 아닐까, 그 중에도 풍류는 그 극점을 찍은 황진이 이래 未堂에 이르기까지 한시, 시조 등을 통하여 보아왔듯이, 우리 시의 大宗은 풍류였으나, 언제부터인가 이러한 풍류는 사라지고 이미지만 난무하는 세상이 되었다. 하기는 이 복잡한 세상에서 자연이니 관조(觀照)니 하여 음풍농월하고만 있을 수는 없지만. 앞서 얘기한 시를 쓰려는 젊은 신인들의 병폐란 다름 아닌 시상(詩想)을 아주 난삽하게 전개하는 것이 유행병처럼 번져 있다는 것이다. 국적불명의 아주 희귀한 이미지에다 이상한 세기(細技)를 가져다가 붙이고 더하여 종내에는 독자들로 하여금 시의 의미를 도저히 따라갈 수 없게 만들어 마침내 미로에 빠뜨리고 마는 것이다. 시를 지향하는, 젊은 신인들이여! 단 한 줄짜리 시라도 좋으니 그동안 가슴에 맺혔던 것을 ‘팡’하고 한 번 터뜨려 보았으면 하는 그런 풍류가 아쉽다.

 

 

 

 

사유의 깊이와 경쾌한 이미지 / 이경림

 

 

 

보르헤스의 소설 「거울과 가면」에는 한 왕이 자신의 전승을 후세에 길이 남길 수 있는 시를 지어 오라는 명령을 시인에게 내리고 일 년의 기한을 준다. 시인은 자신이 온갖 지식과 말을 부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것을 장황하게 자랑한 뒤 꼭 써 오겠노라고 장담하며 돌아간다. 일 년 후 그는 약속대로 시를 지어 왔는데 그걸 본 왕의 대답은 이러했다.

“그대의 시는 한 마디 한 마디에 독창적인 의미를 담고 각 명사에는 이전의 시인들이 붙였던 의미를 다시 부여해 주었다. 그러나 그대의 시에는 옛사람이 사용하지 않은 이미지는 단 하나도 없다. 피는 칼의 눈물이요, 바다는 자신의 신을 가졌고, 구름은 미래를 예언하고, 그대는 운율과 동음반복과 풍요로운 수사학의 기술을 능숙하게 교직해 놓았다. 그런데 그걸 읽은 내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혈관 속의 피가 빨리 달리지도 않고, 손은 활을 움켜쥐려고 하지도 않고 얼굴이 창백해지지도 않고 전쟁 때 지르는 고함도 지르지 않았다.”며 그러나 수고의 대가로 은으로 된 거울을 준다. 일 년의 시간을 다시 받은 시인이 다음 해에 써간 시는 전의 것보다 짧았지만 전혀 본 적이 없는 기이한 형태의 시였다. 그 속에는 하나이면서 셋인 신과 수많은 아일랜드의 우상 신들과 몇 백 년 후 전쟁을 벌일 신들이 뒤범벅이 되어 들끓고 있었다. 단수명사에 복수가 사용되고 조사들은 일반적인 용법을 어기고 있었고 비유들은 임의적이거나 또 그렇게 보였다. 그걸 본 왕은 “이 시는 사람을 놀라게 하고 현기증이 나게 하고 경악을 느끼게 한다. 비록 적은 수이긴 하지만 학식 있는 자들은 이 시를 이해하리라”며 수고의 대가로 황금가면을 내린다. 다시 일 년 후에 나타난 시인은 호기에 싸여 있던 옛 모습은 간데없고 마치 다른 사람이 된 듯한 모습이었다. 얼굴에는 시간이 아닌 다른 무엇이 주름을 만들고 그의 모습 전체를 바꿔 놓은 듯했다. 그는 왕과의 독대를 청했다. “시를 쓰지 않은 건가?” 왕이 물었다. “썼습니다.” 그가 슬프게 대답했다. “그러나 신께서 시를 쓰지 못하도록 해 주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왕의 앞에서 그가 입속으로 우물거리며 암송한 시는 단 한 줄이었다. 그걸 들은 왕은 경악을 했고 시인처럼 넋이 나가 있었다. 시인이 말했다. “어느 새벽, 처음에는 이해조차 할 수 없는 말들을 뇌까리며 잠에서 깨지 않았겠습니까? 그 말들이 바로 이 시입니다.” 왕이 슬프게 말했다. “인간은 알지 못하도록 되어 있는 美를 알게 된 죄를 지었으니 우리는 함께 죗값을 치러야 하네.” 왕은 그에게 단도를 내렸고 시인은 그것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왕은 왕좌를 내놓고 걸인이 되어 아일랜드의 곳곳을 헤매다 죽었다는 이야기이다.

위의 소설이 말하고 있는 바와 같이 시를 쓰는 일은 어쩌면 현상 속에 숨겨 놓은 신의 비의를 훔쳐보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시인은 본질적으로 불경하고 불운하고 불행한 존재인지도 모른다.

현대의 많은 시편들에서 발견되는 문제도 앞의 소설에서 왕이 지적한 두 가지 문제에서 과히 벗어나지 않는 것 같다. 가령 탈락한 장진영 씨의 시를 예로 들면 위 소설에서 나타난 첫 번째 문제에 해당될 것 같다. 성실한 시인의 눈을 가지고 열심히 썼으나 막상 당선작으로 밀기에는 새로움이 없다는 것이 문제로 지적되었다. 또 한 분, 김상지 씨의 「경우의 문」외 9편은 앞의 경우와는 정반대의 문제를 가지고 있다. 위 소설을 예로 들자면 두 번째 문제에 해당하는 것으로 너무 남다르게 쓰려는 의욕이 승하다 보니 사유의 깊이를 놓치고 작위적인 이미지들의 병치에 불과한 시가 되었다는 의견들이었다.

당선작은 조영민의 「가을史」외 4편과 김인숙의 「여름 판타지」외 4편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조영민의 「가을史」외 4편에서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사유의 틀이 깊고 신선하며 무엇보다 언어를 부리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는 점이었다. “뒤돌아보면/ 마을이라는 것은/ 산들이 패를 즐기다 오줌을 누러 일어선 자리”라는 시인만의 인식은 그의 만만치 않은 내공을 짐작하기에 충분하다. 다만 「길갓집」에서 보이는 불필요한 수사들의 남발은 유념해야 할 부분이라 하겠다.

김인숙의 「여름 판타지」 외 4편은 도회적 삶의 풍경을 간결하고 경쾌한 이미지로 그려나가는 솜씨가 돋보인다. 좀 더 성실한 탐색을 통해 현상이 보여주는 현상 너머의 말을 보여줄 날을 기대해도 좋겠다. 두 분의 출발에 축하를 보낸다.

 

 

 

 

 

유장한 리듬, 환상적 이미지 / 우대식

 

 

상반기 신인상 응모자가 116명이었다. 개인당 십여 작품씩만 생각해도 1,160여 편의 시가 접수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그 가운데 조영민과 김인숙의 작품을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우선 조영민의 작품은 전체가 고른 솜씨를 보였다. 관념과 현상을 잇는 솜씨는 기성 시인과 견주어도 모자람이 없을 정도였다. 소재로 선택된 것들이 약간은 낡은 듯 보였지만 유장한 문장으로 밀고 이어나가면서 사물 속에 감추어진 전언들을 찾아내고 있었다. 내면에 고인 소리를 발성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한때 나는, 야심한 시각 제 몸의 늑골 속에다 울음의 음계를 저장하는 대숲에 든 적 있다

소리가 나는 것들은 죄다 동물성이라고 믿었던 그 때

밤새, 퍼 올려도 퍼 올려도 뿌리가 잘 마르지 않던 그녀의 젖은 밤을 본 후

나는, 울음을 관절 속에 저장하는 푸른 家系들의 경전을 찾아 얼마나 먼 길을 허비했던가

—— 조영민, 「어떤 울음, 대숲의 유전자를 가진」에서

위와 같은 시들은 유장한 리듬을 타고 쉽게 읽히면서도 다시 한 번 내용을 되돌아보게 하는 독특한 매력을 발산하고 있었다. 지나온 삶의 내력을 풀어내는 솜씨가 만만치 않게 느껴졌다. 「소리꽃」같은 시에서도 비둘기의 울음을 “잘 데워진 공원 한켠에서/ 길거나 짧은 음표로 늦은 공복을 수선하고 있다”와 같이 독특하면서도 안정적인 시적 구사를 보여주었다. 당선작으로 선정하면서도 약간의 바람이 있다면 지나친 장광설은 오히려 시적 긴장을 와해시킬 수도 있다는 점을 감안했으면 하는 것이다. 말을 이어가는 탁월한 장기가 오히려 사족으로 전락한 경우도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한 소리가 지고 나면 다른 소리가 그 자리로 되돌아오는지”, “세상에 늙음만큼 새것이 있는가”, “망각도 오래되면 새로운 이정표가 되는지”와 같은 표현들은 오히려 긴장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었다. 이것을 넘어서는 것은 앞으로 시인 자신의 몫이다.

또 다른 당선작인 김인숙의 작품들은 행보가 가벼우면서도 환상적인 이미지들을 자유롭게 그려내고 있었다. 돌출적인 시적 발언들이 시를 도리어 망치는 경우를 종종 보아오곤 했는데 김인숙의 시들은 그러한 오류들을 잘 극복하고 있었다. 그것은 비시적인 요소들이 시적 맥락 속에 잘 아우러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내 우울을 뿌리째 뽑아들고/ 덜덜 떨어야지 난 맨발로/ 뛰어들어 일요일을 부숴버려야지”(「여름 판타지」에서) 같은 표현들은 여름이라는 전체 이미지와 맞물리면서 유니크한 시적 매력을 발산하였다. 또한 미묘한 순간의 시적 아우라를 형상화하는 솜씨도 눈여겨보았다. “폭설, 내가 던진 눈덩이가 사람들 가슴에 떨어지는 소리, 투명하다”와 같은 표현들은 비가시적인 세계를 감각적으로 포착하고 있었다. 그러나 시적 치열성이 사라진 지점에 그가 관성으로 써낸 구절들은 더러 지루하기도 했다. “내 관절에 시간을 쏟아내는 밤/ 구겨진 계단을 재단하던 가로등이/ 내 옆구리에 눈을 밀어 넣고 있다”와 같은 구절들은 오히려 그가 구사하는 환상적인 이미지들을 해친다는 느낌을 받았다.

본선 끝까지 올라온 김상지(김선미)와 장진영의 작품들도 눈여겨보았다. 김상지의 경우는 요설적 문장으로 이어가는 시의 매력이 있었으나 요설 이후의 전언들이 가슴에 와 닿지 않았다. 산문적 요설은 보다 치밀한 시적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 개인의 생각이다. 장진영의 작품들은 말을 이어가는 힘은 돋보였지만 어딘지 낡은 느낌을 주고 있었다.

당선자들에게 축하를 드린다. 뒤에 사족으로 달아놓은 충고 비슷한 이야기는 무시해도 좋다. 각자의 길을 가시기 바란다. 본심에 올라온 두 분도 앞으로 좋은 결과가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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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위원 / 정진규 • 상희구 • 이경림 • 우대식

 

 

출처 : 작가 사상
글쓴이 : 황봉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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