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전남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대동여지도 / 조다윗
1.
내 영혼이 어느 산천 물줄기의 방점이라면 그 더딘 물소리가 끝없는 방물장수의 노래여도 좋겠다. 까마득한 옛 생각, 지도
하나를 그리는 밤, 고요의 헤진 발자국을 따라 걷다보면 어찌,들이고 산이고 섬인지 헤아릴 수 있을 까마는 능선과 능선이
만나는 무등산엔 소리그림자 짙다. 평야와 평야가 나란히 도사리는 푸른 꿈도 젖는다. 지칠 줄 모르고 다가갈 것만 같은 어지간히 어지러운 삶 예견이라도 하는 듯이, 휘감고 되돌아가야 할 그 길 꼭 잊지 말란 듯이 그래도 살별처럼 떨고 있는 간이역을 처연(凄然)의 뒤안길에서 기다리고 있다.
2.
'그 끝이 어느 경계 하나 끊고 살았으면 참 좋겠다.'라고, 생
각하던 밤은 이토록 깊은 적막이다. 마치, 어머니의 가랑이처럼 길고 긴 포옹이다. 내 시의 근원지를 아직 잘 알지 못하겠으나, 늘 부려먹고 싶었던 어머니의 이름 대신 할미 가슴에 텃밭 한
평 가꾸던 이유가 옛 지도의 성지처럼 신성함을 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주 잠시 내 마음 속에도 초록의 활기가 꽃을 피우던 날, '모든 길은 다시 하나의 길로 마주본다.'고 여우비가 산
자와 죽은 자와 떠나간 자의 갈림길에서 등고선을 깊게 새겨두었다.
[심사평]
예심을 거친 작품들을 읽어가는 동안 선자의 눈길을 끈 작품들은 아래 다섯 분의 시편들이었다.
'월세 방 있습니다'(김기훈) 외 6편의 작품들은 시상의 전개가 자연스러웠고 한 장 한 장 찍어 올린 언어의 정교함이 미려해 보였다. 반면 삶을 바라보는 치열한 인식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한 신인의 탄생이란 안정과 조화보다는 세계에 대한 신선한 꿈과 패기에 찬 도전의식 쪽에 보다 강한 의미 부여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모란꽃 마차' (박성진) 외 2편의 작품들은 전통적인 한국 서정시의 계보를 생각게 하는 작품이었다. 서정이 사라진 시대에 감정의 선율을 자연 속의 풍경들과 견주어 이야기 할 수 있다는 것은 미덕이지만 이 작품 역시 신인이 지녀야 할 꿈과 패기의 차원에는 아쉬움이 있었다.
무늬들 (박시원)외 2편의 작품들은 꼼꼼하게 교직된 언어의 조각보를 바라보는 느낌이 있었다. 전통적인 여성 수공업의 세계에 현실의 삶을 투영하려는 노력은 소중하지만 보다 현대적이고 세련된 이미지를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선자의 최종적인 관심을 끈 작품은 '선운사 해우소 옆 홍매화' (정도전)외 3편과 '대동여지도' (조다윗) 외 5편이었다. 두 분의 작품들은 각각의 개성들이 차분하게 살아 숨쉬는 장점들을 지니고 있었다.
정도전의 '선운사 해우소 옆 홍매화'는 갓 핀 홍매화의 선선한 모습을 붙박이장의 문틈을 비집고 나오는 외투 깃과 자연스런 연결로 표현하고 있다. 꽃의 개화 속에서 낡은 외투. 삶의 개화를 꿈꾸는 시인의 눈길이 비범하지 않은 것이다.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모든 것들을 꽃으로 바라보고 싶은 시인의 마음은 긍정적인 힘으로 세계의 진보에 기여를 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다윗의 '대동여지도'는 언어를 다루는 시인의 힘이 우직하게 느껴졌다. 세계의 핵심에 정공법으로 접근하려는 이러한 정직한 힘은 언어의 충돌이나 지적인 교란에 전념하는 요즘의 신인들의 작품들에 비해서 상대적인 신뢰감을 주는 것이었다. 향후 그가 보다 따뜻한 시선으로 삶을 응시하고 세계의 순정한 꿈을 위한 서정성의 확보에 노력한다면 그가 한 신예작가로서 충분한 자기 목소리를 지닐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응모한 시편들이 일정한 수준을 균등하게 유지하고 있는 점을 상대적 우위로 여겨 최종 당선작을 '대동여지도'로 결정하였다. 한국 현대시를 위한 웅장하고 섬세한 소리결을 지닌 귀한 범종으로 거듭 태어나길 바란다.
곽재구 <시인ㆍ순천대학 문예창작과 교수>
[당선소감]
"더 좋은 시로 보답하고파"
먼저 이 모든 영광 주님의 것으로부터 주님께 돌립니다.
참으로 슬픈 소식들로 제 고향 일대는 지금 비통한 시간을 견디고 있습니다. 이제 막 여수에 내려와 어찌해야 할지 모르고 참담한 심정에 휩싸인 저는, 환한 자리에서 소감문을 쓰기가 이토록 두렵고 송구합니다. 오늘만큼이라도 이 삶에 대한 공동체적 책임과 의무를 통감하고자 합니다.
작품을 선해주신 전남일보사와 심사위원 분들께 경이와 감사를 표합니다. 또한 썩고 장애 입은 시절 저를 끌어안아주신 감당치 못할 스승님들과 사이좋은 이웃이 있었음도 여기 기록해 둡니다. 수수밭 전별기, 적멸을 꿈꾸며, 제비꽃 여인숙, 말향고래 시인님들, 잊지 않겠습니다. (이 못난 제자와 아들을 용서하십시오, 詩부모님들) 그분들의 기도와 가르침 앞에 우뚝 서서 훗날 좋은 시로 보답하고자 합니다. 늘 참시인과 참제자로 거듭날 수 있도록 소망하고 있사오니, 더욱 정진하여 부끄러운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항상 최선을 다해 살도록 하겠습니다. 저를 길러주시는 할머니 사랑합니다. 우즈베크에 계신 강회진 교수님!, 학교에서 꼭 다시 만나요. 제 든든한 강상대 주임교수님 외 단국대, 한서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님께도 감사합니다. 광주ㆍ전남 민족문학작가회의 박혜강 회장님, 귀한 술과 말씀 깊이 새겨둡니다. 김준태 선생님, 어린아이의 목소리로 힘차게 다시 보고 싶습니다. 시누리와 문우들을 위하여. 광덕고, 안양예술고교 문창과여 영원하라. 장경동 목사님, 파이팅 하세요.
마지막으로,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이를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내가 내 자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내가 자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사명을 받았노라 아멘. (고린도전서 9:16~17)
올 신춘의 시작과 끝을 저는 다만 이와 같이 뿌리고 맺었습니다.
△ 조다윗 시인 (본명 조우리)
△1983년 여수 출생 △광주 화정초/광덕중 졸업
△안양예술고등학교 졸업
△현 단국대학교 문예창작과 휴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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