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불교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그 흰 빛 / 박지선
장롱 맨 아래
한지에 곱게 싸여 있는 한 필의 모시
철이 바뀌어도
결코 위아래 섞이는 일 없다.
깊은 禪定에 든 석불 같다.
하나의 풀씨가
한 필의 베로 태어나기까진
잿물로 살과 피를 녹이는 고통이 필요하다.
흐르는 시냇물 속에서도
물살 거스르지 않고 버티다가
올곧은 백발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쪼개지고 비벼지고
다시 수많은 시간을
모닥불로 담금질을 당하는 동안에도
모시의 生은
동그랗게 이어져간다.
마냥 엉클어져 있다가도
북이 오가고 딱딱 바디 오르내리며 장단이 울리면
모시는 그것이
죽비의 깨우침이란 것을 안다
죽비가 어깨를 내려칠 때마다
몸을 낮게 낮추던
씨줄과 날줄이
서로 손 내밀며 정갈하게 일어선다
달구어진 여름 내내 매미의 울음소리
지천으로 흐르다가
겨우 엷어질 즈음
비로소 그 흰 빛 모시는 긴 터널을 빠져 나온다.
한번 흘러간 것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오래 견뎌야만 하는 것을 알았을까.
풀기 빠진 가슴을 서로 맞잡은
모시의 손이 따뜻하다
장롱의 어둠 속에서 홀로 깨여있는
그 흰 빛.
아직도 긴 겨울밤 잠 못 드는 어머니다.
[시 당선 소감]
“기쁘다 삼보전에 참배 가야겠다”
만선의 깃발을 날리며 포구에 들어서는 아버지의 불콰한 얼굴은 우리 육남매의 풍요로운 삶을 제공하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유년은 늘 행복했고 영원히 지속되리라 믿었었다. 풍족함으로 출렁이던 바다는 하루 아침에 소금기로 반들거리는 성에에 조금씩 절룩거리기 시작했다. 정부의 산업개발로 호남정유공장이 세워지고 나의 유년의 꿈이 뿌리내린 터전을 제칠 비료공장은 먹어버렸다. 비료공장은 소화불량으로 쉼 없이 방귀를 뀐다. 지독한 유황냄새를. 그 냄새에 산천은 중독되어 해골처럼 청 푸르던 소나무 꼬챙이가 되어버렸다.
봄이면 꽃피고 가을이면 튼실한 감이 물결치던 나의 집 도토리 같은 육남매가 골목을 지날 때면 애기씨 라는 호칭이 내 앞에서 허리를 굽혀오곤 하던 고향 그 골목 굽혔던 허리들이 빳빳하게 펴지면서 더 이상 애기씨는 없었다.
내 앞에 옹벽처럼 서있던 이웃들 세상엔 영원으로 이어지는 것은 불성 뿐이라는 걸 그때는 몰랐었다 ‘소유(所有)’는 ‘비소유(非所有)’라는 걸.
나의 내륙에 짠물이 차오르고 어머니는 길쌈을 하기 시작했다. 베틀 밑에서 자고 밥을 먹고 학교를 다녔다. 바디소리에 잠을 깨고 나는 그 바디소리가 끔찍이도 싫었었다. 낮이나 밤이나 베틀에 앉아있는 어머니는 왜 그리 싫었을까?
그렇게도 혐오스럽던 베가 나의 혼수품이 되었다. 어머니는 명주, 삼베, 모시, 무명베 한 필씩을 주셨다. 명주 베는 지인들 머플러로 나누어주고 삼베는 홑이불이 되어 어머니 말씀대로 아이들을 고슬고슬하게 키웠다. 촘촘히 짜 내려간 어머니의 삶이….
혹여나 하면서 기다리던 소식 너무나 기쁘다. 삼보전에 참배를 가야겠다. 108배는 해야 할 것 같다. 지금부터 나는 뭍에 매여 땔감밖에 되지 못했던 아버지의 배 세척을 내안의 시의 바다에 띄우고 파도 보다 사나운 언어들로 어머니의 베를 한 올 한 올 직조 하련다. 그리고 늘 시 공부 한다고 늦도록 불을 끄지 않아 방 밖을 서성거렸던 남편과 사랑하는 아들, 딸, 늘 함께했던 시의 도반 박성희님 이선애님과 이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다.
[시.시조 심사평]
“멸치떼 빛깔처럼 반짝인 작품”
내가 불교신문 신춘문예 응모자와 한자리 앉아보기는 참 오랜만이다. 아무러나 ‘재회’라는 것은 어떤 의미로거나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도 60년 세월을 그 둘레에서 방황해 온 문학도로서 하나의 도반의식에서 더더욱 반갑기도 하다. 선자의 손에 넘어 온 작품이 무려 천 3백 여 편, 시와 시조가 예심도 거치지 않고 한 타래로 묶여져 있다.
한 작품에 한 번씩만 눈길을 돌리자해도 사나흘이 걸렸다. 고역이 아닐 수 없다.
그 보다 더 큰 고역은 운문도 산문도 채 아닌 불성실한 작품이 너무 많았다는 사실이다.
이 거품을 걷어내는 초선을 거쳐 선자의 손에 쥐어진 작품은 20여 편, 재심에서 10여 편을 줄이고, 종심까지 온 작품이 6편이다.
‘그 흰 빛’(박지선), ‘돌의 幻 ’(김자성), ‘치자 향’(임형신), ‘ 華嚴의 꽃’(이우식), ‘산소에 앉아’(김종빈), ‘동자꽃 필무렵’(김용채), 자유시가 3편, 시조가 3 수이다.
‘돌의 幻’과 ‘치자 향’도 좋은 작품이기는 하나, 장롱 속에 갈무려 둔 한 필의 명주, 그 잔잔한 심층의식이 과장 없이 결 고운 호흡을 하고있어 마치 ‘어느 아침바다에서 건져 올린 멸치 떼 그 빛나는 비늘들을 보는 것 같아’ ‘그 흰 빛’ 에게 자리를 내 주기로 했다.
나머지 3수는 시조인데, 시조는 자유시에 비해 절제와 응축, 관조와 직관 , 그리고 그 지절을 세우는데 있어서 자유시보다 더 앞서가야 한다는 것을 말해 두고 싶다. / 정완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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