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경남신문]신춘문예 시 당선작
동전위의 탑
- 이 영 자
달동네 언덕바지 구멍가게에서 LG25시 편의점까지
떡볶기집 지나 맥도널드 빠리바케트 건너 뛰고 붕어빵집까지
딸아이는 떼굴떼굴 굴러다니는 중입니다
자, 지금
어디론가 내처 달리는 당신 호주머니 속의 짤랑거림
그것은 동전마다 아름아름 굴리고 온 바퀴들의 볼멘 혓바닥
바퀴 사이로 휘감겼던 눈빛들이
뜨겁게 조였다 헐거워지는 소리 잠겨 있지요
울퉁불퉁 바퀴가 되기 전
한 잎의 해였고 한 잎의 달이었고
해와 달이 구름에게 먹힌 날의 막 구워낸 한 입 빵이었던
동전의 길
빵을 사먹을까? 돼지저금통에 넣을까?
고민에 빠진 딸아이와 뜨거운 이마 맞대고
자, 이제 날아올라 볼까요
까마득히
어머니 먹지 않고 입지 않고 쌓아올린 동전 위의 탑까지
팔랑팔랑
날아올라 가만히 손바닥 펴면
매질처럼 따가운 햇살의 가지 위로 벙긋벙긋 피어오른
딸아이 얼굴 한 잎 붕어빵 한 입
눈앞이 아찔합니다
더 이상 굴러 떨어질 바닥이 보이지 않는 곳입니다
당선소감
시를 쓰기 위해 나는 감자가 된다
나는 식인종은 싫다시를 쓰기 위해 나는, 감자를 먹을 때는 감자가 되고 고구마 먹을 때는
당연히 고구마가 된다.닭고기 먹을 때는 닭이 되어 닭똥 같은 눈물 뚝뚝 흘리기도 하고, 소고
기 먹을 때는 소가 되어 열심히 일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개고기 먹을 때는 개처럼 컹컹 짖어보기도 한다.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아직 사람이 아니다.내가 사람이 되려면 사람을 먹어본 적이 있어야 하는데 나는 그런 기억이 없다.전생에서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아직 사람이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하다 때문에 나는 사람 같은 시를 쓸 수 없으며 설령 쓴다고 하더라도 시라고 인정해 줄 사람이 없을 건 뻔하다. 결국 나는 시를 포기하거나 사람을 포기하거나 둘중 한가지를 선택해야 하는데, 아무래도 그것보단 사람 하나쯤을 먹어보는게 쉽겠다는 생각을 한
다. 어젯밤이었다.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사실은 어젯밤부터 슬슬 움직이기 시작했다.
누굴 희생양으로 삼아야 할지 지나간 사람들을 떠올려보았고, 전화번호 수첩을 앞에 놓고 고민에 빠지기도 했고, 어둔 거리로 나서 사방을 두리번 거려보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경남신문사에서 연락이 왔다. 시가 아니라 사람에게 쫓겨 짐승이 보낸 작품인데도 읽어낼줄 아는 분들이 계셨나보다. 이건 무슨 소식인가?
내가 사람을 잡아먹었다는 증거가 있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도대체 누구인가. 내가 잡아먹은 사람은? 당신인가? 무지 아픈 나날들이
었다. /이영자(함양읍 용평리 595-31번지)/
심사평
삶의 구체성 위에 생각의 깊이 갖춰
마지막까지 뽑는이들 손에 남은 작품은 모두 다섯 사람이 내놓은 여섯 편이었다.「내 마음의 호수」, 「휴식 같은 풍경」, 「고친다」, 「하얀 바다」 그리고 「동전 위의 탑」과 「청동 물고기」가 그것이다. 선에 오른 작품은 어느 것 없이 남다른 훈련을 거친 것들이어서 제 나름의 됨됨이가 빛났다. 그러나 신인다운 패기가 모자란다는 느낌은 지울 수가 없었다. 눈에 확 뜨이는 작품을 찾기가 어려웠다는 뜻이다.「휴식 같은 풍경」, 「고친다」, 「하얀 바다」는 모두 교과서 같은 품격을 지닌 작품이다.그만큼 발전 가능성이 엷다. 특히 「하얀 바다」는 아버지가 겪었을 법
한 종이 재생공장의 노동 체험과 그것을 바라보는 자식의 눈길이 잘 갈무리된 작품이어서, 발상이 신선했다.그러나 동어반복에 가까운 말씨는 시의 울림을 죽이는 결과를 가져왔다. 작품이 지닐 바 완결성에 대한 고심이 앞으로 승패를 가를 것이다.거기에 견주어 「내 마음의 호수」는 오히려 거칠고 들뜬 숨길이 뽑는이들 눈에 들었다.거침없는 시상 전개와 경쾌한 걸음걸이는 다른 이와 뚜렷이 나뉘는 가능성이었다.그러나 『내 마음에 작은 호수가 있어/ 페인트칠이 다 벗겨진 사람들 사
이로/ 걸어갈 때는 아주/ 조심스럽게 걷지』로 시작되는 첫머리의 긴장이 마무리까지는 이어지지 못했다.작품이 가볍다는 느낌을 밀쳐내기에 시의 뼈대가 약했던 셈이다.「동전 위의 탑」과 「청동 물고기」는 한 사람이 낸 작품이다. 그러면서 다른 이들 작품에 견주어 상대적으로 흠이 적었다. 「동전 위의 탑」이 나날살이 속에서 겪은 바를 섬세하게 그리고자 한데 골몰한 작품이라면,
「청동 물고기」는 매우 급박한 숨길에다 산사 물고기 풍경에서 얻을 수 있는 바 연상의 자유로움을 극대화하고자 한 것이다.그러다 보니 곳곳에서 읽기를 가로막는 비약이 눈에 거슬렸다. 자연스레 마지막까지 남은 작품이 「동전 위의 탑」이었다. 삶의 구체성에 든든하게 뿌리 내린 위에다 생각의 깊이를 갖추고자 한 몸가짐은 이즈음 신인들이 쉬 놓치고 있었던 덕목이다.『떼굴떼굴』과 같이 다섯 차례에 걸쳐 거듭한 첩어에다 시의 흐름을 내맡겨버린 안이함도 엿보인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차 건강한 생활시로 나아갈 자질을 이 작품은 숨기지 않았다. 당선자는 물론, 모든 응모자의 정진을 빈다.
■심사위원=양왕용(부산대 국어교육학과 교수·시부문 평론 )박태일(경남대 인문학부 교수·시인)
동전위의 탑
- 이 영 자
달동네 언덕바지 구멍가게에서 LG25시 편의점까지
떡볶기집 지나 맥도널드 빠리바케트 건너 뛰고 붕어빵집까지
딸아이는 떼굴떼굴 굴러다니는 중입니다
자, 지금
어디론가 내처 달리는 당신 호주머니 속의 짤랑거림
그것은 동전마다 아름아름 굴리고 온 바퀴들의 볼멘 혓바닥
바퀴 사이로 휘감겼던 눈빛들이
뜨겁게 조였다 헐거워지는 소리 잠겨 있지요
울퉁불퉁 바퀴가 되기 전
한 잎의 해였고 한 잎의 달이었고
해와 달이 구름에게 먹힌 날의 막 구워낸 한 입 빵이었던
동전의 길
빵을 사먹을까? 돼지저금통에 넣을까?
고민에 빠진 딸아이와 뜨거운 이마 맞대고
자, 이제 날아올라 볼까요
까마득히
어머니 먹지 않고 입지 않고 쌓아올린 동전 위의 탑까지
팔랑팔랑
날아올라 가만히 손바닥 펴면
매질처럼 따가운 햇살의 가지 위로 벙긋벙긋 피어오른
딸아이 얼굴 한 잎 붕어빵 한 입
눈앞이 아찔합니다
더 이상 굴러 떨어질 바닥이 보이지 않는 곳입니다
당선소감
시를 쓰기 위해 나는 감자가 된다
나는 식인종은 싫다시를 쓰기 위해 나는, 감자를 먹을 때는 감자가 되고 고구마 먹을 때는
당연히 고구마가 된다.닭고기 먹을 때는 닭이 되어 닭똥 같은 눈물 뚝뚝 흘리기도 하고, 소고
기 먹을 때는 소가 되어 열심히 일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개고기 먹을 때는 개처럼 컹컹 짖어보기도 한다.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아직 사람이 아니다.내가 사람이 되려면 사람을 먹어본 적이 있어야 하는데 나는 그런 기억이 없다.전생에서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아직 사람이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하다 때문에 나는 사람 같은 시를 쓸 수 없으며 설령 쓴다고 하더라도 시라고 인정해 줄 사람이 없을 건 뻔하다. 결국 나는 시를 포기하거나 사람을 포기하거나 둘중 한가지를 선택해야 하는데, 아무래도 그것보단 사람 하나쯤을 먹어보는게 쉽겠다는 생각을 한
다. 어젯밤이었다.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사실은 어젯밤부터 슬슬 움직이기 시작했다.
누굴 희생양으로 삼아야 할지 지나간 사람들을 떠올려보았고, 전화번호 수첩을 앞에 놓고 고민에 빠지기도 했고, 어둔 거리로 나서 사방을 두리번 거려보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경남신문사에서 연락이 왔다. 시가 아니라 사람에게 쫓겨 짐승이 보낸 작품인데도 읽어낼줄 아는 분들이 계셨나보다. 이건 무슨 소식인가?
내가 사람을 잡아먹었다는 증거가 있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도대체 누구인가. 내가 잡아먹은 사람은? 당신인가? 무지 아픈 나날들이
었다. /이영자(함양읍 용평리 595-31번지)/
심사평
삶의 구체성 위에 생각의 깊이 갖춰
마지막까지 뽑는이들 손에 남은 작품은 모두 다섯 사람이 내놓은 여섯 편이었다.「내 마음의 호수」, 「휴식 같은 풍경」, 「고친다」, 「하얀 바다」 그리고 「동전 위의 탑」과 「청동 물고기」가 그것이다. 선에 오른 작품은 어느 것 없이 남다른 훈련을 거친 것들이어서 제 나름의 됨됨이가 빛났다. 그러나 신인다운 패기가 모자란다는 느낌은 지울 수가 없었다. 눈에 확 뜨이는 작품을 찾기가 어려웠다는 뜻이다.「휴식 같은 풍경」, 「고친다」, 「하얀 바다」는 모두 교과서 같은 품격을 지닌 작품이다.그만큼 발전 가능성이 엷다. 특히 「하얀 바다」는 아버지가 겪었을 법
한 종이 재생공장의 노동 체험과 그것을 바라보는 자식의 눈길이 잘 갈무리된 작품이어서, 발상이 신선했다.그러나 동어반복에 가까운 말씨는 시의 울림을 죽이는 결과를 가져왔다. 작품이 지닐 바 완결성에 대한 고심이 앞으로 승패를 가를 것이다.거기에 견주어 「내 마음의 호수」는 오히려 거칠고 들뜬 숨길이 뽑는이들 눈에 들었다.거침없는 시상 전개와 경쾌한 걸음걸이는 다른 이와 뚜렷이 나뉘는 가능성이었다.그러나 『내 마음에 작은 호수가 있어/ 페인트칠이 다 벗겨진 사람들 사
이로/ 걸어갈 때는 아주/ 조심스럽게 걷지』로 시작되는 첫머리의 긴장이 마무리까지는 이어지지 못했다.작품이 가볍다는 느낌을 밀쳐내기에 시의 뼈대가 약했던 셈이다.「동전 위의 탑」과 「청동 물고기」는 한 사람이 낸 작품이다. 그러면서 다른 이들 작품에 견주어 상대적으로 흠이 적었다. 「동전 위의 탑」이 나날살이 속에서 겪은 바를 섬세하게 그리고자 한데 골몰한 작품이라면,
「청동 물고기」는 매우 급박한 숨길에다 산사 물고기 풍경에서 얻을 수 있는 바 연상의 자유로움을 극대화하고자 한 것이다.그러다 보니 곳곳에서 읽기를 가로막는 비약이 눈에 거슬렸다. 자연스레 마지막까지 남은 작품이 「동전 위의 탑」이었다. 삶의 구체성에 든든하게 뿌리 내린 위에다 생각의 깊이를 갖추고자 한 몸가짐은 이즈음 신인들이 쉬 놓치고 있었던 덕목이다.『떼굴떼굴』과 같이 다섯 차례에 걸쳐 거듭한 첩어에다 시의 흐름을 내맡겨버린 안이함도 엿보인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차 건강한 생활시로 나아갈 자질을 이 작품은 숨기지 않았다. 당선자는 물론, 모든 응모자의 정진을 빈다.
■심사위원=양왕용(부산대 국어교육학과 교수·시부문 평론 )박태일(경남대 인문학부 교수·시인)
출처 : 작가 사상
글쓴이 : 엘시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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