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평 : 황동규, 이시영
'복숭아'는 일견 평범하기 짝이 없는 시적 진술로 시작된다. 사내가 자전거를 세우고 길바닥에 흩어진 복숭아들을 줍는 1연부터가 그러한데 특히 비닐봉지에서 흩어져 나온 복숭아들을 '우르르 교문을 빠져나오는 여고생'에 비유하는 것은 더욱 그렇다.
시인의 시선은 사내가 '허리를 굽혀 복숭아를 주울 때마다 / 울상이던 바지주름이 잠깐 펴지기도'하는 데까지 머물면서 이 가난한 날의 삽화를 돌연 활력 있는 어떤 것으로 만들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이런 시대에도 시를 쓰고 읽는 이유일 것이다.
당선시 : 복숭아
서광일
1974년 정읍출생
1994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복숭아
비닐 봉지가 터졌다
우르르 교문을 빠져나오는 여고생들처럼
여기저기 흩어진 복숭아
사내는 자전거를 세우고
떨어진 것들을 줍는다
길이가 다른 두 다리로
아까부터 사내는
비스듬히 페달을 밟고 있던 중이었다
허리를 굽혀 복숭아를 주울 때마다
울상이던 바지주름이 잠깐 펴지기도 했다
퇴근길에 가게에 들러
털이 보송보송한 것들만 고르느라
봉지가 새는지도 몰랐던 모양이다
알알이 쏟아져 멍든 복숭아
뱉은 씨처럼 직장에서 팽개쳐질 때
그리하여 몇 달을 거리에서 보낼 때 만난
어딘가에 부딛혀 짓무른 얼굴들
사내는 아스팔트 위에사
그것들을 가지런히 모아두고
한참을 두리번거렸다
얼마만에 사들고 가는 과일인데
흠집이 있으면 좀 어떤가
식구들은 둥그렇게 모여
뚝뚝흐르는 단물까지 빨아먹을 것이다
사내는 겨우 복숭아들을 싣고
페달을 힘꼇 밟는다
자전거 바퀴가 탱탱하다
출처 : 작가 사상
글쓴이 : 엘시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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