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평 : 김종길 , 정진규
심사를 끝내고 바람 부는 광화문거리를 지나 종로까지 오면서 선자들이 나눈 이야기들을 이어주고 있던 어휘들은 대체로 '자안', '경계를 보였다' '견자' 와 같은 것들이었다. '자안'이나 '경계를 보였다'는 말은 주로 한시를 논하는 자리에서 그 표현이 새로운 세계를 열었거나 초월을 보였을 경우 그 살아 움직이는 생명성을 크게 긍정하는 말이요, '견자'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아내는 시인을 이르는 프랑스 상징주의의 용어이다.
이런 말들을 우리가 나누었던 것은 이번의 시들이 시의 생명이라 할 그러한 세계를 보였다기 보다는 오히려 결핍현상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던가 여겨진다. 예의 신춘문예 응모 시들이 보여온 수다스러움이 가시지 않고 있었고 딴은 대단한 상징체계를 세우고 있는 것으로 시적 포즈를 보이고는 있었으나 원관념과의 연계성이 찾아지지 않는 애매성을 그대로 방치하고 있는 부분들도 적지 않았다.
이 가운데서 우리가 함명춘의 '활렵수림'을 당선작으로 뽑았던 것은 현실의 상황을 수용하는 그의 폐활량이 보다 컸고, 이에 따라 시적 공간이 왜소하지 않은 확산의 동력을 지니고 있었다는 데에 있었으며 "바람이 긴 머릿자락을 휘날리면 / ㅈㅊㅋ 격음화 현상이 일어나는 활엽수림" 이라든가 "잠들지 못하는 바다 그 어디에서 / 삭정가지처럼 걸린 수평선이 부러져 내릴 것만 같다"와 같은 부분들에서 보이는 만만치 않은 이미지의 제시들을 높게 보았기 때문이다. 한 신인을 내보낸다는 것은 또 하나의 소우주를 세상에 보내는 일이어서 조심스럽기도 하고 보람있는 일이기도 하다. 정진을 기대한다.
당선시 : 활렵수림
함명춘
1966년 강원 춘성 출생, 서울예전 문창과 졸업
활렵수림
1.
빛을 찾아나선 나뭇가지들이
돌아오지 않는다
한 세기를 줄이고 깎으며 살아온 잡목들
빽빽이 들어차고 간간이
바람이 긴 머릿자락을 휘날리면
ㅈㅊㅋ 격음화현상이 일어나는 활엽수림
저녁은 관습처럼 무섭게
산허리를 들이받으며 내 행동반경권 안으로
진입해 들어오고 바로
코앞에서 길 하나가 논두렁에
처박히고 한 떼의 곤충들이 증발한다
문득 어디선가 맵고 차고
단단하게 들려 오는 어둠의 호각 소리
불규칙하게 연소해 들어가는
꿈속처럼 깊은 바다,
활렵수림이여
먼 순례의 길에 오르는가
퇴색한 나의 멜라닌 색소에 푸른 물을
들이고 싶다
2.
잠들지 못하는 바다 그 어디에서
삭정가지처럼 걸린 수평선이 부러져
내릴 것만 같다
빛바랜 꽃잎 혹은
빈 술병으로 나뒹구는 어둠 속에서
꾸겨진 나를 발견한다
나를 조소하듯 어두운 곳에서 촉망받는 별들
얼마쯤 걸어왔을까 뒤돌아보면
급격하게 커지는 바람의 폐활량
숨이 가쁘다 가면 갈수록
뒤로 물러서는 활렵수림이여
육안으로 볼 수 없는 등줄기가 몹시
가렵다 긁기 위하여 손을 갖다 대면
새까맣게 타들어 오는 밤 12시
아직도 빛을 찾아나선 나뭇가지들이
돌아오지 않는 활렵수림으로 남아
희미한 고요의 불빛을 지키는 밤은
저울추처럼 좀더 엄숙한 곳으로
기울어진다.
심사를 끝내고 바람 부는 광화문거리를 지나 종로까지 오면서 선자들이 나눈 이야기들을 이어주고 있던 어휘들은 대체로 '자안', '경계를 보였다' '견자' 와 같은 것들이었다. '자안'이나 '경계를 보였다'는 말은 주로 한시를 논하는 자리에서 그 표현이 새로운 세계를 열었거나 초월을 보였을 경우 그 살아 움직이는 생명성을 크게 긍정하는 말이요, '견자'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아내는 시인을 이르는 프랑스 상징주의의 용어이다.
이런 말들을 우리가 나누었던 것은 이번의 시들이 시의 생명이라 할 그러한 세계를 보였다기 보다는 오히려 결핍현상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던가 여겨진다. 예의 신춘문예 응모 시들이 보여온 수다스러움이 가시지 않고 있었고 딴은 대단한 상징체계를 세우고 있는 것으로 시적 포즈를 보이고는 있었으나 원관념과의 연계성이 찾아지지 않는 애매성을 그대로 방치하고 있는 부분들도 적지 않았다.
이 가운데서 우리가 함명춘의 '활렵수림'을 당선작으로 뽑았던 것은 현실의 상황을 수용하는 그의 폐활량이 보다 컸고, 이에 따라 시적 공간이 왜소하지 않은 확산의 동력을 지니고 있었다는 데에 있었으며 "바람이 긴 머릿자락을 휘날리면 / ㅈㅊㅋ 격음화 현상이 일어나는 활엽수림" 이라든가 "잠들지 못하는 바다 그 어디에서 / 삭정가지처럼 걸린 수평선이 부러져 내릴 것만 같다"와 같은 부분들에서 보이는 만만치 않은 이미지의 제시들을 높게 보았기 때문이다. 한 신인을 내보낸다는 것은 또 하나의 소우주를 세상에 보내는 일이어서 조심스럽기도 하고 보람있는 일이기도 하다. 정진을 기대한다.
당선시 : 활렵수림
함명춘
1966년 강원 춘성 출생, 서울예전 문창과 졸업
활렵수림
1.
빛을 찾아나선 나뭇가지들이
돌아오지 않는다
한 세기를 줄이고 깎으며 살아온 잡목들
빽빽이 들어차고 간간이
바람이 긴 머릿자락을 휘날리면
ㅈㅊㅋ 격음화현상이 일어나는 활엽수림
저녁은 관습처럼 무섭게
산허리를 들이받으며 내 행동반경권 안으로
진입해 들어오고 바로
코앞에서 길 하나가 논두렁에
처박히고 한 떼의 곤충들이 증발한다
문득 어디선가 맵고 차고
단단하게 들려 오는 어둠의 호각 소리
불규칙하게 연소해 들어가는
꿈속처럼 깊은 바다,
활렵수림이여
먼 순례의 길에 오르는가
퇴색한 나의 멜라닌 색소에 푸른 물을
들이고 싶다
2.
잠들지 못하는 바다 그 어디에서
삭정가지처럼 걸린 수평선이 부러져
내릴 것만 같다
빛바랜 꽃잎 혹은
빈 술병으로 나뒹구는 어둠 속에서
꾸겨진 나를 발견한다
나를 조소하듯 어두운 곳에서 촉망받는 별들
얼마쯤 걸어왔을까 뒤돌아보면
급격하게 커지는 바람의 폐활량
숨이 가쁘다 가면 갈수록
뒤로 물러서는 활렵수림이여
육안으로 볼 수 없는 등줄기가 몹시
가렵다 긁기 위하여 손을 갖다 대면
새까맣게 타들어 오는 밤 12시
아직도 빛을 찾아나선 나뭇가지들이
돌아오지 않는 활렵수림으로 남아
희미한 고요의 불빛을 지키는 밤은
저울추처럼 좀더 엄숙한 곳으로
기울어진다.
출처 : 작가 사상
글쓴이 : 엘시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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