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함께읽기

[스크랩] 오늘도 ‘비리 백화점’이 있다니

문근영 2014. 8. 25. 00:31

오늘도 ‘비리 백화점’이 있다니
  글쓴이 : 관리자     날짜 : 2010-12-27 09:10    
 

1794년 10월, 33세이던 다산 정약용은 홍문관의 교리(校理)와 수찬(修撰)이라는 명예로운 벼슬에 올라 양양한 미래를 기약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거기에다 더 요직(要職)인 암행어사에 임명되었으니 권력의 절정에 오른 셈이었습니다. 경기도 북부 4개 군현(郡縣)을 돌아보고 탐관오리의 수령들을 징치하라는 엄명을 받은 것입니다. 젊고 패기에 가득찬 다산, 민완기자처럼 삭명(朔寧)군수와 연천(連川)현감의 부정과 비리를 명확하게 밝혀내서 산천초목도 벌벌 떤다는 어사의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범법행위를 의법처리하는데는 적잖은 애로가 있었습니다. 삭영군수 강명길(康命吉)은 어의(御醫)로서 임금을 가까이 모셨던 최측근 출신이었고, 연천현감 김양직(金陽直)도 궁중의 지사(地師)로서 왕가(王家)의 묏자리 잡던 측근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의 죄상을 낱낱이 밝혀 보고서를 작성하여 나라에 올렸더니 대신(大臣 : 정승)들이 가로막으며 처벌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서 불문에 부치고 말았답니다. 이에 참을 수 없던 다산은 정식으로 격식을 갖춰 임금에게 직접 상소로 아뢰었습니다.

참으로 짤막한 상소문이었지만, 여기에는 똑똑하고 원칙주의자였던 암행어사로서의 다산의 면모가 확실하게 드러난 당대의 명상소였습니다. “법의 적용은 마땅히 임금의 최측근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用法宜自近習始), “그들이 뇌물죄를 범하지 않았고 가혹한 형벌을 남용하지 않았다면, 그들의 공로를 인정해서라도 처벌을 면하겠지만”, “이두사람의 죄악은 참으로 수령(守令)이라는 제도가 생긴이래 들어보지 못한 죄상” (此兩人之罪 誠有守令以來所未聞也) 이라고 극언을 했습니다. 요즘말로 ‘비리의 백화점’ 이라는 지적을 하면서, 이들을 엄벌하여 “백성의 삶도 중요하게 여기고 나라의 법도 존엄하다는 것”(以重民生 以尊國法)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끝을 맺었습니다. 정말로 통쾌한 내용이면서 다산의 국정철학이 그대로 담긴 상소였습니다. (경기어사복명후논사소)

현명한 정조는 다산의 상소를 외면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혹독한 처벌을 받았습니다. 요즘 전 성남시장의 ‘비리백화점’을 검찰이 발표하면서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전 성남시장과 그의 친척이 시청공무원과 건설업자들과 저지를 수 있는 온갖 비리를 보여줬다”고 언론은 보도했습니다. 강명길?김양직이 다시 나타난 모습입니다. 집안이 ‘뇌물창고’였다면 더 무슨 말이 필요할까요. 8년이나 그런 짓을 계속했다니, 사정당국이나 감찰기관은 그 동안 도대체 무엇을 했다는 겁니까. 시장의 임기가 끝나고 나서야 죄상이 밝혀지다니 참으로 한심스러운 세상입니다. 오늘에는 왜 다산같은 암행어사는 없으며, 왜 정조같은 임금도 없는가요.

 

박석무 드림.

출처 : 좋은 세상 물꼬 만들기
글쓴이 : 박종국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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