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실(名實)의 일치를 기대하며
글쓴이 : 염무웅 날짜 : 2010-12-21 09:24
한해를 마감하기에 바쁜 요즈음 법조계로부터 한 가지 기쁜 소식과 다른 한 가지 가슴아픈 소식이 동시에 전해져 착잡한 마음을 금하지 못하고 있다.
기쁜 소식이란 1970년대 박정희 정권 당시에 서슬 퍼렇게 시민들을 떨게 했던 ‘긴급조치 1호’가 36년의 세월이 지난 오늘 마침내 대법원 전원회의에서 위헌판결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 당시 문인 64명은 장준하 선생이 시작한 유신헌법 개정운동에 호응하여 개헌청원 지지성명을 발표했는데, 바로 다음날 기다렸다는 듯이 ‘긴급조치 1호’가 발동되었다. 그 긴박했던 날들을 아직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사람으로서는 이번의 위헌판결이 어떤 실효를 행사하게 될지를 떠나 남다른 감회를 금할 수 없다.
박래군·이종회, 인권상과 중형 구형이 엇갈려
그러나 잘못된 역사의 매듭 하나가 이렇게 풀리는 듯할 때, 이번에는 한국 사법사의 오욕이 될지 모르는 또 다른 판결 하나가 가까워지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작년 1년여 동안 용산철거민 참사문제의 해결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했고 그 때문에 오랜 수배생활과 잠시의 영어생활을 겪었던 인권운동가 박래군씨와 이종회씨에게 징역 5년과 4년의 중형이 구형되었다는 소식이 그것이다. 너무나 뜻밖이고 충격적이다.
알다시피 박래군씨와 이종회씨는 우리 사회가 알아주는 인권운동가들이다. 그들은 참사 후 1년여 동안 철거민들의 주검이 안치된 순천향병원 영안실과 명동성당에서 감옥 아닌 감옥 생활을 했고, 그러느라 소위 불법시위나 집회에는 참석조차 할 수 없었다. 그들은 용산참사를 안타깝게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을 대표해, 더 분명하게 말하면 시민사회의 여론에 떠밀려서 시대의 십자가를 메었던 우리 시대의 의인들이라고 할 수 있다. 대통령을 대신해 국무총리가 국민들에게 ‘유감’과 ‘위로’를 전하고 서울시가 공식 중재에 나서서 꼭 1년 만에 장례식을 치름으로써 절반의 해결에 이를 수 있었던 것은 어떤 의미에서 그들의 공로이다. 그렇기에 우리 사회는 박래군씨와 이종회씨에게 ‘5.18인권상’과 ‘NCC인권상’, ‘2010 세상을 밝게 만든 사람들’ 등 상을 수여하지 않았겠는가.
생각해보면 작년 용산철거민 참사는 우리 사회의 심층적 균열을 보여주는 아픔이었다. 용산참사의 근본 원인은, 단순히 발화의 직접적 계기가 어디 있었느냐를 따지는 것과는 전혀 차원을 달리하는 우리 사회의 양극화구조의 문제이다. 전국 600여 군데에서 자행되는 무분별하고 무자비한 투기개발이 재개발-재건축의 이름으로 거듭해서 서민들의 생활터전을 파괴하는 한, 참사는 언제 어디서든 다시 일어날 개연성을 가지고 있다. 많은 뜻있는 분들의 주장대로 철거민들은 결코 무슨 ‘테러리스트’나 ‘개발이익에 눈먼 이익집단’이 아니라 20년 30년 우리 주위에서 생업에 종사해 오던 평범한 이웃들이었다. 다만 그들은 옮겨갈 집도 비축해놓은 재산도 없었기에 결사적으로 자기들 삶의 터전을 지키고자 했던 것뿐이다.
정부·사법부·언론이 공정한 중립에 서야
이처럼 평범한 서민들의 생존 문제이기 때문에 종교계와 문화예술계를 비롯한 전체 시민사회가 참사의 아픔에 동참해 나섰고, 또 그렇기 때문에 박래군·이종회 같은 인권운동가들은 자기 본래의 업무로 받아들이고 여기에 헌신했을 것이다. 그런데 제도권 법정은 어떻게 대응했던가. 작년 내내 용산 구속자 석방을 촉구하는 각종 모임이 계속되고 8월에는 25만 명의 탄원서가 제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금년 2월의 항소심 재판부 교체라는 우여곡절을 거친 끝에 지난 11월 11일 대법원은 이충연 철거민대책위원장 등 7명에게 4~5년 징역형을 확정했다. 그리고 이제 그 철거민들의 인권과 사회적 권리를 위해 헌신했다는 이유로 이 시대의 의인들은 현실의 법정에 서서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재개발-재건축을 비롯한 모든 사회문제에는 어느 나라, 어느 곳에서나 당연히 날카로운 이해의 충돌이 따르게 마련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이익과 손해가 갈라지는 경계선이 사회의 모든 층위에서 국가를 ‘두 개의 국민’으로 분할하고 있다. 이때 결정적인 것은 정부와 사법부와 언론이 공정한 중립의 위치에 서야 한다는 점이다. ‘친서민’ ‘공정성’ 같은 구호들의 명실(名實)이 일치하는 것만이 우리의 살 길이다.
글쓴이 / 염무웅 · 문학평론가 · 영남대학교 명예교수 · <창작과비평> 발행인, 민예총 이사장,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 등 역임 · 저서:<민중시대의 문학><혼돈의 시대에 구상하는 문학의 논리>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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