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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이야기]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는 탄식

문근영 2014. 8. 19. 00:40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는 탄식 
 글쓴이:금장태 날짜:2010-12-10 12:07      
 
퇴계가 이담(李湛)에게 보낸 답장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사람들이 항상 하는 말이 있는데, 모두가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나도 이러한 탄식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 포부를 알아주지 못함을 탄식하고, 나는 내 허술함을 알아주지 못함을 한탄합니다.”

 

남들이 나의 허술함을 알아주지 못함을 한탄하다

 

‘자기를 알아준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자기 존재의 가치를 확인하고 실현할 수 있게 하는 소중한 조건이다. 가장 가까운 부모나 자식도 자기를 몰라주고, 형제도 자기를 몰라주며, 아내나 남편도 자기를 몰라준다고 한탄하는데, 다른 사람이 자기를 알아주기를 바란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가장 절친한 친구가운데서 자기를 알아주는 경우가 있는가 보다. 춘추시대 관중(管仲)은 “나를 낳아준 이는 부모지만, 나를 알아준 이는 포숙(鮑叔)이다”라 하여, 낳아준 부모에 못지않게 포숙에게 대해 자신을 알아준 벗이라 하여 깊은 감사와 애정을 밝혔던 일이 있다. 그래서 자기를 알아주는 벗(知己之友)이란 우정의 가장 고귀한 모범으로 제시되고 있다.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만난다면 그것은 바로 자신을 실현하는 길이다. 전국시대 예양(豫讓)은 “선비란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고, 여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단장한다”고 말했던 일이 있다.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하나 뿐인 자신의 생명을 바쳐도 아까울 게 없다는 말이다. 진정으로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만난다면 이미 자기존재는 의미와 보람으로 충만하게 되니, 세상에 아까울 게 무엇이 있으랴.

 

이렇게 모든 사람은 누군가 자기를 알아주기만을 바라고 있는데, 막상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기는 정말 어렵고도 어려운 일인가 보다.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더라도 노여워하지 않으면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논어』, 學而)라고 말씀하여, 남이 알아주기를 구하지 말라고 충고하였던 공자도 어떤 대목에서는 “나를 알아주는 이는 하늘이런가!”(『논어』, 憲問)라고 말씀하기도 했다. 이 세상에서는 자신을 진정으로 알아줄 사람을 만날 수 없다는 안타까운 현실을 절감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모든 사람들은 남들이 자기 포부와 재능을 알아주지 못한다고 탄식할 때에, 퇴계는 그 반대로 남들이 자기 허술함(空疎)을 알아주지 못한다고 탄식하였다. 세상사람들이 자기를 몰라주어 자기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상실감으로 괴로워 할 때, 퇴계는 남들이 자신의 실상을 넘어서 과대하게 평가하는 부담감으로 괴로워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퇴계의 이 편지 구절을 읽고서 다산은 퇴계가 탄식하는 바의 의미를 자신의 경험 속에게서 생생하게 확인하고 있다.

 

헛된 명성이 재앙이 될 수 있음을 두려워하다

 

“‘헛된 명성’[虛名]이란 이로 말미암아 비방이 일어나고 재앙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나는 평소에 총명이 부족하고 원활하지 못한데, 모르는 사람들이 혹시 ‘잘 기억한다’고 하면, 이 말을 들을 적마다 나도 모르게 땀이 나고 송구스럽다. 태연하게 받아들이면서 사람들이 속아 주는 것을 즐기다가, 어느 날 천근의 무게를 난장이에게 지워서 메고 가라 책임지운다면, ‘검땅 나귀의 재주’[黔驢之技(검려지기): 재주가 졸렬함]가 다 드러나서 군색하고 답답하여 몸둘 곳이 없을 것이다. 이는 매우 두려워할 일이다.”<『陶山私淑錄』>

 

그래도 자기 포부와 재능을 알아주기 바라는 것이라면 크게 허물할 것이 없다. 다만 남들이 자신을 실상에서 벗어나는 헛된 명성으로 알아주는 것에 취해 있다가는 어떤 위험이 따르는지를 경계할 필요가 있다. 퇴계처럼 자신의 허점과 소홀한 점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탄식하는 것은 다만 명성과 실상이 일치를 추구하는 것이요, ‘헛된 명성’이 결국에는 자신을 파탄시키는 재앙이 될 수 있음을 분명하게 각성하고 있는 것이다. 다산이 퇴계에게서 본받고자 한 것은 바로 이 점이었던 것 같다.

 

여기서 다산은 실상이 없는 명성을 경계하는 퇴계의 겸허한 인격을 발견하고서, “선생(퇴계)은 오히려 허술함으로 자처하여 포부를 알아주지 않음을 한탄하지 않았으니, 겸손한 군자이시다. 선생이 아니면 내 누구에게 의탁하랴”고 하여, 비록 학문적 견해에서야 첨예한 차이를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인간적으로는 퇴계를 인격의 모범으로 삼아 따르겠다고 고백하였다. 이 자리에서 아마도 퇴계는 자기의 허술함을 알아주는 ‘지기’(知己)의 벗으로 다산의 손을 따스하게 붙잡아주지 않았을까.

 

글쓴이 / 금장태

· 서울대 종교학과 명예교수

· 저서 : 『실천적 이론가 정약용』, 이끌리오, 2005

               『한국의 선비와 선비정신 』, 서울대학교출판부, 2000

           『한국유학의 탐구』, 서울대학교출판부, 1999

           『퇴계의 삶과 철학』, 서울대학교출판부, 1998

           『다산 정약용』,살림, 2005

              『다산 실학 탐구』, 소학사, 2001


 

출처 : 좋은 세상 물꼬 만들기
글쓴이 : 박종국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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