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함께읽기

[스크랩] 강위에 배를 띄운 달밤의 노래

문근영 2014. 8. 16. 07:00

정확하지는 않으나, 대체로 경인(庚寅: 1830)년 쯤의 가을에 지은 다산의 시가 마음에 듭니다. 다산의 나이 68~9세 때로 짐작이 되는데, 그 무렵의 다산의 시심은 참으로 멋지기만 합니다. 세상에 귀한 신분, 만인이 우러러보던 임금의 사위, 해거도위(海居都尉) 홍현주(洪顯周)가 능내로 다산을 찾아오자, 함께 달밤의 강가에 배를 띄우고 읊은 시입니다. 홍현주는 풍산홍씨의 명문대가로 정조대왕의 외동딸인 숙선옹주(淑善翁主)에게 장가들었습니다. 시문(詩文)에 뛰어나고 학문도 깊은데 영명위(永明尉)에 봉작되어 당대의 명사들과 자주 어울리면서 문화창달에 큰 힘을 보탠 분이었습니다.

 

그는 다산선생의 학문과 인격에 깊은 존경심을 지녀서 시간만 나면 먼 길인 능내로 자주 다산을 찾아뵈었습니다. 자신의 아버지보다 더 높은 나이의 다산이었지만 서로 뜻이 맞아 흉허물 없이 왕래가 빈번했습니다. 홍현주와 달밤에 배를 띄우고 함께 노닐던 때의 다산시 한편은 너무 좋습니다.

 


이제껏 물마을에 살아오면서                       我玆居水鄕
이처럼 밝은 달은 보지 못했네                     未見此明月
비바람 앞세워 앞으로 몰아붙여                   風雨使前驅
강한 군사처럼 소탕전 벌렸네                      掃蕩如勁卒
일체의 티끌 기운을                                     一切埃?氣
추호라도 전혀 남기지 않았네                      斷不留絲髮
위로는 붙박이 별 하늘까지 이어지니          上連恒星天
하늘의 맑음이 뼈에까지 미치네                  玉宇淸到骨
달 하나가 온 하늘 차지하여                        一輪專九?
외롭게 높이 떠서 오만을 피우네                 孤高矜傲兀
이태백 서거한지 이미 오래나                     李白雖已逝
달이야 끝내 사라질 수 없구려                    此月不可沒
이태백 대신하여 그대 달주인 되면             許君遞作主
풍류까지 끝내 사라지지 않으리                  風流未銷歇
                                                        (秋日海尉至前江泛月. 其二)
  

“달아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라는 유명한 노래가사처럼, 달하면 이태백이고, 이태백하면 달밤에 배타고 술 마시다가 물속의 달을 잡으로 들어가서는 끝내 생환하지 못하고 말았던 고사(故事)를 만든 사람입니다. 달밤, 그것도 가을의 달밤, 티끌 하나 없이 맑고 청명한 달빛, 강위에 배를 띄우고 놀다보니 이태백은 이미 간지 오래여서 풍류도 기억하기 어려웠습니다. 이태백과 그의 풍류는 가고 없으나 아름다운 달은 그때보다 더 밝고 맑게 떠올라 있었습니다. 홍현주의 풍류도 만만치 않으니, 이태백 대신 그대가 달의 주인이 된다면, 그대도 있고 달도 있고 풍류까지 남아있다는 표현이 너무 좋습니다.

 

근년에는 기후가 이상하여 겨울 내내 춥다가는 봄은 건너뛰고 바로 무더운 여름이 오고, 더운 여름에서 가을은 없이 추운 겨울이 오고 말았습니다. 그러더니 금년의 가을, 요즘 날씨는 참으로 아름다운 가을입니다. 달이 밝은데 공기와 하늘도 맑아 달밤에 강위에 배를 띄우면 다산의 그 때가 올 법도 합니다. 맑고 밝은 달밤, 뜻 맞는 귀공자와 뱃놀이하는 즐거움이 너무 좋아서, 이태백에 귀공자를 대신 넣어, 그만한 풍류 있음을 은근하게 칭찬하고 있습니다.

 

이태백과 홍현주의 풍류를 이해한 다산, 자연과 사람과 시가 함께하여 그림같이 아름다운 달밤 뱃놀이 풍경이 살아나고 있습니다.

출처 : 좋은 세상 물꼬 만들기
글쓴이 : 박종국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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