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나 지금이나 정치(政治)라는 두 글자는 가까이 할 수 없는 것으로 여긴 것만은 사실입니다. 도대체 어떤 이유 때문에 정치라는 것이 그렇게 혐오의 대상이 되고 말았을까요. 결론적으로 말하면 정치에 몸담았던 사람들의 책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 차례 이야기했던 대로, 다산은 정치란 바르게(正)하는 일이자 백성들이 고루 잘살도록 해주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정치에 몸담은 사람들이 공정하고 바른 세상이 되게 해주고 약한 백성들이 빈부의 격차나 신분의 차별 없이 고루고루 잘살도록만 해주었다면 정치에 대한 혐오증은 이미 없어졌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옛날의 선비들도 정치 없이는 세상사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정치라면 무조건 기피하며 허송세월로 세상을 마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지금 세상의 선비나 학자들도 ‘정치’라면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면서, 거기에서 멀리 할수록 깨끗하고 정직하며 학자다운 삶이라고 잘못 판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산의 시 한 편을 읽어보면 그간의 선비들의 의식이 어떤 것인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공자님 유도(儒道)를 강론할 때마다 / 魯?講斯道
절반은 언제나 왕도정치에 대해서였네 / 王政居其半
주자께서 여러 번 올린 항의의 상소 / 晦翁屢抗章
주장한 바는 모두 나라 건질 계책이었네 / 所論皆廟算
오늘의 유자들 성리(性理)이야기만 좋아하며 / 今儒喜談理
현실 정치에는 얼음과 숯처럼 어긋나기만 / 政術若氷炭
깊이 숨어살며 감히 출사도 못함은 / 深居不敢出
출사했다가는 남의 노리갯감 되기때문 / 一出爲人玩
마침내는 물정모르는 경박한 사람들만이 / 遂令浮薄人
앞장서서 나라 일을 맡고 만다네 / 凌?任公幹
(古詩二十七首 중 하나)
다산의 이런 핍진(逼眞)한 시를 읽어보면, 조선시대 선비들의 문제점이 무엇인가를 곧바로 알 수 있게 해줍니다. 평생에 도(道)만 닦아 성인의 지위에 오른 공자는 강론의 절반은 요순시대를 만들자는 왕도정치의 요체에 대해서였습니다. 성리학의 집대성자인 주자도 임금에게 올린 여러 차례의 상소도 대부분 국가정책의 올바른 수립을 촉구한 내용이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참다운 유자들은 어떻게 처세하였나를 명확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무런 능력을 갖추지 못한 선비들, 정치나 행정의 실무능력은 전혀 닦지 못해서, 실현성이나 실천력은 없는 성리설만 즐기고 있었으니 정치는 그냥 싫기만 했을 겁니다.
정치혐오증, 오늘의 위선적 지식인들의 공통된 태도이자 마음입니다. 정치 없이는 세상 자체가 존재하기 어려운데, 정치라면 악의 상징인양 혐오만 하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입니다. 조선시대의 역사적 악폐가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으니, 요순시대나 잘되는 정치가 언제쯤 실현될까요.
박석무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