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에서 으뜸가는 학자로 다산을 꼽는다면, 반대할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그가 남긴 학문적 업적의 양과 질, 그리고 그 내용의 진지함을 넘는 사람을 찾기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다산이니 어렸을 때부터 공부도 엄청 많이 하고, 또 부모가 공부를 많이 시켰을 것 같다. 하지만 그의 어린 시절에 관한 이야기라면 전설이 될 정도로 총명했다는 소문만 낭자할 뿐 정작 어떻게 공부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아이들 공부할 만한 날수, 9년에 3백일 정도뿐
그렇다면 그는 어린아이의 공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했던가. 다산의 글에 「『통감절요(通鑑節要)』에 대한 평(評)」이란 글이 있다. 22권 잡평에 「『사략(史略)』에 대한 평(評)」이란 글과 나란히 실려 있는데, 두 글 모두 다산 당시 아동용 교과서로 쓰이던 『통감절요』와 『사략』이란 책이 아동들에게 아주 불필요한, 아니 해롭기까지 한 책이라는 것을 역설한 글이다. 그 주장에 나 역시 사뭇 동감하는 터다. 하지만 여기서 그 주장을 반복하고 싶지는 않다. 정작 나의 관심을 끄는 것은 「『통감절요』에 대한 평」의 서두에 실린 아동의 공부하는 시간에 관한 부분이다.
다산은 아동의 공부하는 기간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어린이가 글을 읽는 기간은 대개 9년이다. 8세부터 16세까지가 바로 그 때다.” 지금으로 치면 얼추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다. 이 시기를 넘기면 어른으로 쳐 주는 것이다. 왜냐하면 조선시대에 군역도 16세부터 졌으니까 말이다. 다산은 이 9년을 몇 단계로 나눈다. 먼저 8세부터 11세까지. 이 시간은 “아직 소견머리가 나지 않아 글을 읽어도 그 뜻을 모른다.”고 한다. 즉 워낙 어려 책을 읽어도 무슨 소린지 통 모른다는 것이니, 요즘 말로 하자면 공부를 해도 학습 효과가 거의 없다는 뜻이다. 다음은 15,16세다. 이때는 “음과 양을 알고, 좋아하는 것이 생겨, 여러 가지 물욕이 마음을 어지럽힌다.”고 한다. 사춘기를 말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음과 양, 곧 남자와 여자의 차이를 알고, 자아가 형성되어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이 분명해진다. 그래서 마음이 따로 끌리는 데가 있어 공부하기 어렵다.
이런 까닭에 12살에서 14살까지의 3년이 독서를 할 만한, 즉 공부를 할 만한 시간이 된다는 것인데, 이 3년도 모두 공부에 바치는 것이 아니다. 다산은, 여름은 몹시 덥고, 봄과 가을은 아름다운 날이 많아서 아이들이 놀기 좋은 날이므로 모두 글을 읽기 적당하지 않다고 말한다. 이런 이유로 남는 것은 9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1백 80일 정도가 공부를 할 수 있는 시간이 된다. 즉 가장 공부하기 좋은 12살부터 14살까지도 한 해에 절반 정도만 공부할 수 있는 날이라는 것이다. 1년에 180일이면 3년에 5백 40일이다. 한데, 다산은 이마저도 모두 공부하는 날은 아니라고 한다. 세시(歲時)에 따른 놀이가 있다는 것이다. 썰매타기, 연날리기, 팽이치기 같은 것이다. 여기에 또 몸이 아파서 앓는 날, 기타 우환이 있는 날을 제하면 실제 공부할 수 있는 날은 약 3백일 가량이 된다는 것이다. 9년을 통틀어 3백일이 공부를 할 만한 날이라니, 너무나 적다. 하지만 적기에 또 너무나 귀중하다. 이런 귀중한 시간을 형편없는 교과서인 『통감절요』를 배우는 데 소모해서야 되겠는가 하는 것이 다산의 말이다.
귀중한 시간을 형편없는 것 배우느라 소모해서야
다산 같은 ‘공신’(공부의 신)도 아이들의 공부 시간을 9년에 3백일로 잡았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그 9년을 학교에다 아이들을 가두고, 일제고사니 과외니 하면서 아이들을 때려잡는다. 물론 전근대의 공부와 근대 이후의 공부가 다르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공부’라는 점에서는 다를 바 없다. 다산은 아이들의 지혜 구멍이 열리지 않은 시기를 고려했고, 아이들의 사춘기를 고려했다. 거기에 놀기 좋은 시절에는 또 놀아야 한다고 여겼다. 세시놀이도 빼먹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초등학교 어린 것들을 이 학원, 저 학원으로 돌리면서 시험 준비에 목숨을 걸라고 말한다. 경기도 어느 초등학교에 ‘필승, 6학년 목숨 걸고 공부하는 기간,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대비’란 플래카드가 걸렸다는 소식을 접하고 하는 말이다. 아동을 이토록 괴롭히는 공부가 어찌 공부란 말인가. 다산 같은 ‘공부의 신’도 아이들이 공부할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대한민국이 정말 발전하려면, 아이들을 공부에서 해방시켜 즐겁게 놀게 해야 할 것이다. 이 사회를 이끌 창의력, 자율성은 바로 거기서 생기는 것이다.
글쓴이 / 강명관
· 부산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 저서 : 『조선의 뒷골목 풍경』, 푸른역사, 2003『
『조선사람들, 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나오다』, 푸른역사, 2001
『조선시대 문학예술의 생성공간』, 소명출판, 1999
『옛글에 빗대어 세상을 말하다』, 길, 2006
『국문학과 민족 그리고 근대』, 소명출판, 2007
『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 푸른역사, 2007 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