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할머니의 손에 이끌려 절에 따라 다녀 본 적이 있다. 절은 세속을 벗어나 지옥과 극락이 혼재하고 있는 것 같은 미지의 세계로 어린 나를 이끌었다. 아직도 절에 대한 생생한 추억은 절에 들어가면 속세의 번잡함과 잘못을 모두 벗어 버리고 새로운 또 하나의 세계로 발을 들여 놓는 것 같은 왠지 두려움과 신비함의 대상이었다. 어린 나이에도 사후의 세계를 생각하게 되고 삶에 대해 반성을 하게 하던 묘한 느낌이 아직도 남아 있다.
때에 따라 달리 보이는 부처님 얼굴
일주문을 지나 사천왕문을 들어설 때면 왠지 잘못한 것이 많아 벌을 받을 것 같은 두려움에 머리가 쭈뼛 서고 입안으로는 소리를 죽인 반성의 주문이 우물우물 배어 나오곤 했다. 사천왕문턱을 넘어 펼쳐지는 아주 넓고 정갈하게 빗질해 놓은 마당은 우리를 편안한 새로운 세계로 인도했고, 그런 마당에서 올려다보는 대웅전은 거창했다. 돌계단을 올라서서 대웅전을 들여다 보면 어두컴컴한 법당 안에 인자한 부처님이 안에서 우리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하지만 대웅전 안에 앉아 있는 불상을 보면 묘한 감정이 솟아 올랐다. 왜일까? 어떤 때는 매우 인자한 모습으로 보이고, 어떤 때는 준엄하게 꾸짖는 모습으로 보이고, 어떤 때는 아무런 관심도 없는 그냥 조각처럼 보이기도 했다. 마치 모나리자의 미소처럼 웃는 것인지, 슬퍼하는 것인지, 화가 난 것인지, 무관심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할머니의 설명은 간단했다. 부처님은 원래 그대로 계신데 부처님을 보는 내 마음이 어떠냐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는 것이다. 마음이 평안하고 즐거우면 인자한 부처님의 모습이 보이고, 마음이 고통스럽고 아플 때에는 함께 슬퍼하는 부처님의 모습이 보이고, 잘못한 것이 많으면 무서운 부처님의 얼굴이 보인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부드럽고 인자한 모습의 부처님을 만나기 위해 세상에서 착한 일을 많이 해야 한다는 말씀을 덧붙이셨다.
우리나라 선거를 보면 언제나 예측이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지난 18대 국회의원 선거는 한나라당이 압승을 했다. 하지만 올해 6.2 지방선거에서는 한나라당이 참패를 했다. 그러나 지난 7.28 재보선에서는 다시 한나라당이 완승을 했다고 한다. 대개 지난 선거에서 승리를 거둔 정당이 다음 선거에서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선거 결과가 나오면 여당과 야당은 기대 이하의 참패, 기대 이상의 대승이라고 자평을 한다. 대부분의 언론에서는 역시 국민의 심판이 무섭다는 평을 내놓곤 한다.
정치인들이 국민의 반가운 얼굴을 보려면
선거결과에 대한 정당의 대응도 극단적이고 신속하다. 6.2 지방선거의 결과가 나오자마자 한나라당의 정몽준 대표가 사퇴를 했고, 7.28 재보선 결과가 나오자마자 민주당 정세균 대표가 사퇴를 했다. 한번 승리하면 당 지도부의 역할을 극찬하고 한번 실패하면 당 지도체제의 리더십을 문제 삼고 심지어 당의 체질을 바꾸어야 한다고 내분이 일어난다. 선거결과를 놓고 이번에는 젊은 네티즌들이 결집을 했다고도 하고, 또 다음번에는 보수층이 총 집결하여 지난번 선거 이후 교만해진 정당과 정치지도자들을 심판했다고도 한다. 정말 우리 국민들의 성향이 정당과 정치지도자들의 행동에 대해 모두 그처럼 극단적으로 평가를 내리고 그리 쉽게 돌변하는 것인가?
선거결과는 정당이나 후보자들에게는 승자와 패자라는 지옥과 극락과 같은 차이를 보여주지만 국민들에게서 나타나는 차이는 실제로 그리 크지 않다. 대부분 5% 안팎의 지지율의 차이로 당선이 되기도 하고 실패의 눈물을 삼키기도 한다. 결국 유권자 전체의 성향이 승자에게만 지지를 보내는 성향으로 갑자기 바뀌는 것은 아니다. 승자의 득표율에는 조금 모자라지만 승자에 못지않게 패자에게 지지를 보낸 유권자도 언제나 상당수 존재한다. 정치적 분위기, 선거전략, 정책의 차이 등이 승패를 좌우하는 5% 안팎의 차이를 나타내고 이것이 모아지게 되면 어느 당이 압승, 완승 등으로 나타나게 되는데 그렇다고 국민들의 모든 정치적 성향이 급변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국민들이 정치적으로 지향하는 이념과 정책선호, 그리고 정당에 대한 평가가 있는데 정당이나 후보자들이 이를 잘못 읽어내면서 선거 결과에 실망하는지 모른다.
연약한 중생들이 바라보는 부처님의 얼굴처럼 정치인들에게 우리나라 국민은 다양한 얼굴 모습으로 비쳐질지 모른다. 국민들이 언제나 무섭게 표변하는 유권자라고 인식하는 것은 약점 많은 정치가나 정당이 인식하는 국민의 얼굴이다. 국민들은 그리 쉽게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는데 정치를 잘못하는 정치인들이 스스로 무서운 국민의 얼굴을 보게 되는 것이다. 착하고 선하게 살면 인자한 부처님의 모습을 언제나 보게 되는 것처럼, 올바르고 참된 정치를 하게 되면 언제나 반갑게 맞아주는 국민의 얼굴을 보게 될 것이다. 정치인들만 모르는 것은 아닌지.
-------------------------------------------------------------
|
글쓴이 / 염재호
· 고려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 고려대 법대 졸업
· 미국 스탠포드대 정치학 박사
· 한국고등교육재단 이사
· 한국 정책학회 회장 역임
· 저서: <딜레마 이론> 등.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