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엄(趙?, 1719-1777)이란 사람이 있다. 1763년 일본에 통신사로 갔을 때 고구마를 가지고 와서 동래와 제주도에 심게 한 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고구마는 대표적인 구황작물이니, 조선후기의 굶주린 사람들은 조엄의 덕을 본 셈이 된다. 이런 점에서 퍽 좋은 일을 한 사람이지만, 정조 즉위년의 『일성록』을 보면 조엄은 뜻밖에도 대단한 탐관오리로 나온다. 『일성록』정조 즉위년 6월 3일조에 의하면, 조엄은 평양감사로 있을 때 60만 냥을 횡령한 조선 최고의 탐관오리다. 쌀 한 가마니 값이 2냥에서 4냥 정도였다고 하니, 실로 엄청난 횡령액이다.
한몫 잡기 위한 자리로 여긴 지방 관직
관직을 이용한 횡령은 조엄만 저지른 것이 아니었다. 정조 즉위년 5월 3일 홍술해(洪述海, 1722-1777)는 황해감사로 있을 때 12만 냥을 횡령했다 하여 귀양을 간다. 같은 해 5월 28일에는 원의손(元義孫, 1726-1793)은 전라감사로 있을 때 10만 냥을 횡령했다 하여 역시 귀양길에 오른다. 조엄의 경우는 당시 권력을 잡고 있었던 홍국영이 음모를 꾸며 탐관오리로 몰았다는 설도 있지만, 그가 만약 정말 청백(淸白)한 사람이었다면, 그렇게 어마어마한 횡령액을 덮어씌울 수는 없었을 것이다.
조엄과 홍술해, 원의손은 모두 당대 최고의 양반가문 출신이었다. 조엄은 이조판서 조상경(趙商絅)의 아들로서 좋다는 벼슬을 다 지내고 그 자신 역시 이조판서까지 지낸 인물이다. 그의 가문은 이후 번성하여 19세기가 되면 이른바 ‘풍양조씨 세도’를 이루게 된다. 홍술해 역시 고위관직을 독점하다시피 한 남양 홍씨 가문 출신이다. 아들 홍상범이 정조를 제거하려는 음모를 꾸민 사건으로 인해 가문이 일거에 풍비박산이 나지만, 그 전까지는 엄청난 위세를 가진 가문이었다. 원의손은 영조의 탕평책에 적극 동조하여 신임을 받았던 원경하(元景霞)의 아들이자, 우의정을 지낸 원인손(元仁孫)의 동생이다. 거기에 증조부는 효종의 부마인 원몽린(元夢麟)이다. 원의손 가문 역시 당대 최고의 양반가인 것이다.
조선시대의 관료들은 녹봉을 받았다. 하지만 고급관료라도 녹봉이 그리 많은 것은 아니었다. 최고의 품계인 정1품이 받는 녹봉도 그리 많지 않았다. 『경국대전』에는 쌀과 좁쌀, 콩, 밀, 명주, 삼베, 저화 등 제법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을 정도였지만, 조선후기로 가면 점점 줄어들어 녹봉 자체가 그리 큰 의미를 지니지 못하는 형편이 된다. 하지만 관료는 그것을 가지고 사는 것이 원칙이었다. 하지만 원칙을 지키는 관료는 예외적이라고 말할 정도로 드물었다. 대부분은 자신이 차지하고 있는 관직을 이용해서 부를 쌓았다. 특히 지방관으로 나가는 목적 자체가 한몫 잡기 위한 것이라 할 정도로 지방수령이 되면 한 살림 마련하는 것은 당연한 일로 알았다. 위의 예를 보라. 조엄은 평양감사(평안도 감사), 홍술해는 황해도 감사, 원의손은 전라도 감사로 있을 때 한 몫을 단단히 잡았던 것이다. 감사는 곧 황금알을 낳은 거위였던 셈이다.
국가권력을 이용한 부패를 국민이 감시할 수 있어야
정조 시기의 『일성록』이나 『승전원일기』를 읽어보면, 탐관오리에 대한 보고와 징치가 없는 날이 거의 없다. 중앙관청의 서리는 물론이거니와 지방의 향리, 수령 등은 전세(田稅)를 거두는 과정에서, 환곡을 빌려주고 받는 과정에서, 군포를 징수하는 과정에서 오만 가지 희한한 방법으로 농민의 생산물을 갈취하기에 여념이 없다. 거의 모든 과정에서 부패가 일상화된 것이 조선후기의 상황이었던 것이다. 정조는 성실하고 똑똑한 임금이었고, 그 자신 행정에 열심이었지만, 끝내 만성화된 관리들의 부패를 해결할 수는 없었다.
감사(監司)의 부패는 오늘도 줄기차게 계속된다. 지방자치단체장의 부패는 다반사다. 가장 청렴해야 할 교육감(예컨대 전 서울시 교육감 공정택 씨!)이 뇌물을 받아 구속되는가 하면, 전라남도 교육감 당선자에게 교육청의 일부 공무원들이 돈봉투를 건네려는 사건도 있었다. 깨끗해야 할 교육계가 이렇다면, 다른 곳이야 말할 필요조차 없다. 관직을 이용한 부패는 조선시대부터 지금까지 줄기차게 이어진다. 감사의 부정부패를 백성들이 감시할 수 없었던 것처럼 오늘날 국민에게는 국가권력을 이용한 관료의 부패를 감시할 방법이 전혀 없다. 이것이 부정부패를 영원한 ‘민족의 전통’으로 만드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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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강명관 · 부산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 저서 : 『조선의 뒷골목 풍경』, 푸른역사, 2003 『조선사람들, 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나오다』, 푸른역사, 2001 『조선시대 문학예술의 생성공간』, 소명출판, 1999 『옛글에 빗대어 세상을 말하다』, 길, 2006 『국문학과 민족 그리고 근대』, 소명출판, 2007 『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 푸른역사, 2007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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