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 시간의 태엽’을 되감는 언어 - 고인환

문근영 2014. 5. 5. 10:19

‘시간의 태엽’을 되감는 언어

ㅡ정수경 신작시 작품 세계

 

   고인환

 

 

 

   이상(李箱, 1910~1937)은 자신을 “박제剝製가 되어버린 천재(새)”에 비유했다. 오만한 천재성에서 비롯된 섬세한 자의식과, 식민지 근대라는 암울한 현실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이 명제는, 일제강점기를 온몸으로 살아간 한 시인의 절규이기도 하다.

   우리 문학에서 ‘말소된’ 과거의 기억을 되찾기 위한 열망을 이처럼 처절하게 보여준 예도 드물 것이다. 이후의 한국문학은 이 박제된 몸의 흔적(날개)을 좇는 여정, 즉 현실 속에서 현실 너머를 꿈꾸는 길 떠남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푸르른 창공을 자유롭게 비상했던 존재의 기억을 무의식의 심연深淵에 가두고, 이제 그러한 흔적이 존재했는지조차 인식하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박제剝製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라는 질문을 던지는 충격은 여전히 강렬하다.

   정수경의 신작시를 감상하며 이상의 「날개」가 떠오른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박제剝製가 되어버린 일상의 속살’을 시적 언어를 통해 생생하게 되살려내는 시인의 연금술 때문이리라. 그의 시는 “시간의 태엽”을 되감으며 “검은 피로 흥건한 갯벌의 몸”(「밤, 폭우」)을 따뜻하게 어루만진다. 이를 통해 “밟히고 짓이겨진”(「밤, 폭우」) “해묵은 일상”의 “후미진 곳이 화들짝 환해진다(「서랍이 있는 풍경」).”

   충만한 시적 언어를 통해 일상의 속살을 더듬는 내밀한 풍경을 감상해보기로 하자.

 

        눈이불 뒤집어쓰고

        재개발지역 지키는 책상이 하품을 한다

        반쯤 열린 입 속에

        동짓달 청동하늘 그리려다

        부러진 크레파스,

 

        운전사만 태운 버스가

        정거장을 빠르게 지나치고

        깨진 유리조각에 목이 걸린 시계는

        바람의 울음을 빌린다

 

        서랍의 내력이 궁금한

        관절 꺾인 담벼락 너머

        석양이 야트막한 능선으로 녹물처럼 흘러내린다

        뼈대만 남은 창문은

        달 없는 밤을 처마 밑으로 불러들이고

 

        혼수트럭에 실어 보냈던 내 젊은 날은

        저 서랍 속에 있다

        시간의 태엽을 되감는다

        뒤늦은 근황이 발뒤꿈치로 키를 늘이며

        낡은 사진첩에서 걸어 나온다

 

        침침한 가로등이 찍어낸 추억들

        한장 한장 인화되고

        오랜 침묵이 흔들린다

        가파른 절벽 쪽으로 기울었던 시간이

        평형을 회복하자

        실밥처럼 풀려나오는

        해묵은 일상이 오히려 따뜻하다

 

        세발자전거 탄 아이의 경적 소리에

        후미진 곳이 화들짝 환해진다

  

                  ㅡ「서랍이 있는 풍경」전문

 

 

    “청동하늘 그리려다/부러진 크레파스”, “깨진 유리조각에 목이 걸린 시계”, “관절 꺾인 담벼락” 너머 “녹물처럼 흘러내”리는 “석양”, “달 없는 밤”을 “불러들이고” 있는 “뼈대만 남은 창문”(강조는 인용자)등 시인이 응시하는 일상의 풍경은 상실과 퇴락의 이미지로 가득 차 있다. 시인은 이 “반 쯤 열린” 서랍의 “입 속”에서 “젊은 날”의 “뒤늦은 근황”을 불러오고 있다. “시간의 태엽”이 감기며 “박제가 된 풍경들”, 즉 “침침한 가로등이 찍어낸 추억들”이 “한장 한장 인화”되자 “낡은 사진첩”의 “오랜 침묵이 흔들린다.” 곧이어 “가파른 절벽 쪽으로 기울었던 시간이/평형을 회복”한다. 비로소 “혼수트럭에 실어 보냈던” “젊은 날”에서 “실밥처럼 풀려나오는” 청춘의 언어가 “해묵은 일상”과 만나 “후미진 곳”을 환하게 밝히기에 이른다.

   이렇듯 정수경 시인의 언어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우울한 일상의 상처, 즉 “피신해 있는 병실”의 고독,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고립”, “납덩이같은 외로움의 무게”(「아를의 방 후기」)등을 쓰다듬는 “현명玄冥의 손”(「밤, 폭우」)이다.

   이 ‘마이더스의 손’은 “돋보기 쓰고 문자 메시지”를 보낸 후 “답을 기다리며 전화기를 몇 번이고 쓰다듬”는 노인의 손으로 변주되어 “그늘 뒤”의 “푸른 기억”을 길어 올리기도 한다.

 

 

        돋보기 쓰고 문자 메시지 보내는 노인

        답을 기다리며 전화기를 몇 번이고 쓰다듬는다

        도꼬마리 씨 같은 메시지 삭제하고

        몽글몽글 살 오른 꽃나무들 한낮의 시간을 즐기는 동안

        시든 꽃나무는 어디로 갈까 망설이다

        물컹한 제 그늘 속으로 발을 옮긴다

 

        그늘은 어둠 쪽으로 자꾸 깊어지는데

        제게로 오는 젖은 길의 지도를 그가 지우고 있다

        지워진 길 밖으로 시든 꽃의 허공이 열린다

        허공 딛고 오히려 가벼워진 발자국이 걸어간다

        꽃의 계절은 사라진 지 이미 오래

 

        화안한 꽃나무를 떠올리는 생각의 무게만큼

        살아온 모서리의 각은 허물어지고 있다

        그늘 뒤에도 푸른 기억은 생생하였으므로

        가지마다 힘을 나눠주느라 제 그림자 키우는 것 몰랐다

        미처 거두지 못한 그늘

        망루를 지키던 바람이 뿌리를 흔들었다

 

        얼마큼의 햇빛이 침묵의 질문을 한 움큼 던진다

        속이 타도 끓지 않고

        끓어 넘쳐도 분노하지 않는

        줄기, 잎새, 인연까지 다 잘라도 눈물 흐르지 않는

        그런 불 다시 지필 수 있을까

 

        그믐밤을 건너가야 하는 달빛은

        보름밤이 더 깊은 벼랑이듯

        그늘 속으로 들어갈 수 없는 젖은 그늘,

        젖은 그늘의 속은 그래서 더 푸르다

 

               ―「그늘의 미학」전문

 

  

   “몽글몽글 살 오른 꽃나무들”이 “한낮의 시간”을 만끽하는 동안, “시든 꽃나무”는 답신이 없는 “도꼬마리 씨 같은 메시지 삭제하고” 물컹한 제 그늘 속으로 발을 옮긴다.” “꽃의 계절”이 사라진 “시든 꽃”으로 난 “젖은 길의 지도”는 지워진 지 오래다. “지워진 길 밖으로 시든 꽃의 허공이 열린다.” 이 “허공 딛고” “침묵의 질문을 한 움큼” 머금어 “오히려 가벼워진 발자국”이, “그늘 뒤에도” 생생한 “푸른 기억”, 즉 “가지마다 힘을 나눠주느라” “미처 거두지 못한” “제 그림자”를 향해 새로운 길을 낸다. 이 내면으로 난 ‘뿌리의 길’은 지금까지 “살아온 모서리의 각”을 허물고 “속이 타도 끓지 않고/끓어 넘쳐도 분노하지 않는/줄기, 잎새, 인연까지 다 잘라도 눈물 흐르지 않는/그런 불”을 다시 지피기에 이른다. “그믐밤을 건너가야 하는 달빛”에게 “보름밤”은 오히려 “더 깊은 벼랑”일 수 있다. 그래서 “그늘 속으로 들어갈 수 없는” “젖은 그늘의 속”이 더 푸를 수 있는 것이다.

   이렇듯 정수경의 시는 “시든 꽃나무”의 “그늘”(박제된 몸의 기억)을 추슬러 그 이면의 “푸른 기억”을 생생하게 되살려낸다. ‘청춘’, ‘열정’을 품었던 “ 그런 불”, 지금은 없다. 하지만 그 “물컹”했던 기억을 부여잡고 박제된 일상의 “젖은 그늘”을 탐색하는 일이야말로 포기할 수 없는 서정의 운명이 아닌가? 시인의 따스한 공감의 언어가 퇴색한 일상의 “그늘”에 스며들어 독자들의 가슴을 훈훈하게 적시는 지점도 바로 여기이다.

   떨어질 줄 알면서도 바위를 굴려 올리는 ‘시지포스’의 형벌처럼 아득해 보이지만, 이를 기꺼이 감수하며, ‘박제剝製된 꽃나무’의 기억을 찾아 일상의 바다를 항해하는 “그늘의 미학”이 있기에, “천둥과 번개 사이 난기류”로 서 있는 우리들의 삶이 “새로운 바다의 배경”(「밤, 폭우」)이 될 수 있는 것이다.

                                                  

-------------- 

고인환 : 문학평론가, 2001년 (중앙일보)로 등단. 현재 경희대 교수.

 

      -《시로 여는 세상 》2010년 겨울호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우가희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