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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색(色)의 원형질과 시의 상징성 - 김병중

문근영 2014. 4. 3. 14:20

색(色)의 원형질과 시의 상징성

 

                                                                      김 병 중


   문학은 창의성을 근본으로 하고 있다. 그러므로 창의성이 없는 작품은 예술로 보기 어렵고 기록이나 서술로 간주한다. 특히 시에서는 창의성이 더 강조된다. 창의성을 이루는 3가지 구성요건으로 영역과 현장과 개인을 꼽는다. 영역이란 우리가 문명이라고 부르는 특별한 공동체나 인류 전체가 공유하는 상징적인 지식이다. 현장은 영역 속에 존재하는 문제의식이고, 개인은 음악, 미술, 건축, 수학, 스포츠 같은 다양한 영역의 상징을 이용하여 특별하고 새로운 세계를 구축해야 한다.

   우리는 지난달 광화문 거리를 누비던 촛불행진을 보았다. 촛불은 어둠을 밝히는 상징이지만 백주에 촛불을 밝히고 거리를 다닌다면 그것은 분명 이상한 일이다. 어둡지 않은 데도 촛불을 밝히고 거리를 행진하는 것은 촛불이 의미하는 숨어 있는 상징성 때문이다. 어둠같이 보이지않는 문제를 빛으로 밝혀 그 실체를 벗김으로써 문제의 해결점을 찾고자 하는 집회였다. 촛불은 스스로를 태워 어둠을 광명으로 바꾼다는 점에서 자기 희생과 사랑, 헌신, 열정과 생명력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안개꽃은 하얀 빛의 잔치집

  흰 옷을 입은 연인이 변신한

  눈물로 밝힌 촛불잔치 안개꽃


                    김요섭- < 흰 촛불잔치 > 일부


  김요섭 시인은 하얀빛 = 흰옷 입은 연인 = 눈물 = 촛불잔치로 이어지는 유사한 상징을 도입하여 안개꽃의 명징한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다. 촛불 행렬로 이어진 광화문 거리를 “안개꽃밭”으로 생각했다거나 아니면 “안개꽃밭”을 보고 “흰 촛불잔치”를 벌이고 있는 광경으로 생각해도 무방하다. 이것은 시적화자가 경험한 사건의 수순 문제가 아니라 대상과의 합일을 위한 새로운 세계로의 창작이 더 우선한다는 점이다.

  촛불의 불, 그 빛은 태양이나 별과 달, 등불 등의 빛처럼 우리들의 시신경을 자극한다. 빛은 정의, 신성, 지혜, 양심과 진리 등을 표상하는 원형을 갖고 있다. 어둠과 대조적인 의미를 지니는 빛은 현실의 절망과 좌절, 죽음과도 같은 시간을 넘어 도달할 수 있는 진정한 구원이자 희망이며 바른 힘의 상징이다. 빛은 자아의 내면 구석구석을 밝게 비추어 부정적인 것들을 몰아내고 내면을 정화하게 하는 진실의 실체적 상징으로 김요섭 시인의 흰 촛불잔치는 단순한 안개꽃의 묘사가 아니라는 점은 더 설명이 필요 없다.

  

  내 고장 칠월은/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이 마을 전설이 주절이 주절이 열리고/먼데 하늘이 꿈꾸며 들어와 박혀/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이육사 - < 청포도 > 일부


  복사꽃 피고,/ 복사꽃지고,/ 뱀이 눈뜨고,/ 초록제비 묻혀오는 하늬바람 우에/ 혼령 있는 하늘이어......           

                   서정주 - < 봄 > 일부


   이 세상은 빛이 있어 색깔이 존재한다. 빛을 통하여 꽃이 피고 꽃을 통하여 수많은 색깔들이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을 아름답게 물들이고 있다. 색에 대한 미적 감각과 색을 통한 심리적인 변화가 시의 세계에서도 다양하게 나타난다. 색은 참으로 신비할 뿐 아니라 우리의 의식과는 상관없이 긍정적 혹은 부정적 방식으로 우리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에너지라는 요하네스 이텐(Johannes Itten)의 주장은 매우 설득력이 있다. 색채 중에서 표현 가치가 가장 높은 일차색은 빨강과 노랑과 파랑이다. 다른 색깔과 섞이지 않은 이 순수한 색깔은 시에서도 다른 색에 비해 비교적 많이 사용되고 있다.

   이육사의 <청포도>라는 시에서 “청포도”와 “하늘”, “바다가슴” 등이 파랑색이며, 서정주 시인의 <봄>에서도 “초록제비”와 “혼령 있는 하늘”이 그것이다. 우리가 어떤 색에 부여하는 전이된 의미들은 대부분 자연적인 경험에 의존한다. 자연에서 움터나오는 새싹들과 한없이 푸르고 높은 하늘을 경험함으로써 “파랑은 희망이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이는 한 단계 더 나아가 종교적 의미로 연결되는 데, 곧 희망의 정령, 성령과 그에 속하는 축제, 성령 강림절같은 의미로 확대된다. 청포도는 조국 광복에 대한 희망적인 집념을, 초록제비는 약동하는 봄의 움솟는 생명력을 의미하는 색깔의 힘을 찾게 된다.


  이른 아침 꽃밭에선

  프리즘 빠져나온 햇살같이

  무지개빛들이

  꽃잎 속으로 쏟아진다

  자기 색깔 챙기느라 아우성이다

  고운 꽃은 무지개색인 것을

  잎들은 구슬인양 이슬방울 굴리며

  자외선 마사지 분주하다


 

                강희주-< 꽃밭에서 > 일부  


  강희주 시인의 <꽃밭에서>라는 시에는 프리즘이 등장하고 있다. 프리즘은 빛을 굴절시킬 수 있는 광학적 평면을 2개 이상 가진 투명한 물체로서 빛을 프리즘에 통과시켜서 분산시키면 다양한 빛의 스펙트럼을 얻을 수 있고, 이런 방법으로 인공 무지개색 띠를 만들 수 있다. 시인은 꽃밭에 피어있는 꽃들을 보고 특정 색깔로 지칭하지 않고 “프리즘을 빠져나온 무지개”로 표현하고 있다. 무지개는 일곱 색깔을 나타내기 때문에 평면적 상상력을 탈피하여 다의적인 입체감을 느끼게 한다. 시에서 일곱 색깔을 일일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프리즘”이라는 어휘 하나만으로도 형형색색의 꽃밭이라는 점을 성공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무지개빛들이 급기야는 꽃잎 속으로 쏟아지며 “자기 색깔 챙기느라 아우성‘‘인데, 이에 잎들도 가만있지 않고 ”구슬인양 이슬방울을 굴리며/자외선 마사지”를 즐기고 있다는 표현은 우리가 쉽게 눈으로도 느낌을 감지할 수 있는 생동감이 돋보인다.


  지금 막 푸른 신호등이 꺼졌다

  건널목 사람들이 주춤하고 있는 사이

  컬러사진처럼 찰칵 찍힌 붉은 신호등

  모든 사람은 꼼짝없이 일단 정지

  살아오면서 건널목마다 도로 곳곳에

  심지어 밤 잠자리까지 끼어드는

  저 붉은 신호등

  순간 맥이 풀려버리는 비상 상황

  어쩌면 화끈하게 긴장되는 순간이다.


                박경석-< 붉은 신호등과 신정아 > 일부


   박경석 시인의 <붉은 신호등과 신정아> 라는 시에는 푸른 신호등과 붉은 신호등이 등장한다. 건널목 앞에서 푸른 신호등이 꺼지면 우리는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제자리에 꼼짝없이 서야한다. 그런데 붉은 신호등이 도로 건널목에서만 점멸된다면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밤 잠자리까지 끼어드는/ 저 붉은 신호등”, 그로인해 시적화자는 비상 상황을 맞이하게 되거나 화끈하게 긴장되는 순간들을 겪는다. 신호등을 지키지 않았을 때 큰 일이 발생하고 급기야는 신정아 사건과 같은 사회적인 문제로 발전되어 자신의 체면과 명예를 일시에 잃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빨강은 불과 에로스, 금기와 위험을 나타내기도 하며 이를 지키지 않았을 경우 환란과 타락과 굴욕과 고통을 스스로 감내해야만 된다.


  딱 일년만 빨간색 너와 살고 싶다

  언제나 거만하고 질리도록 완숙한 빨강도

  때로는 빈틈을 보이며 산꼭대기의 노을처럼

  내 극점에서 한번씩 위안의 빛이 되어

  겸손으로 엎드릴 때가 있다


                    유혈수-< 노환 앞에서 > 일부


   바흐만(Bachmann)의 소설 “말리나”에 나오는 빨강은 빨간 꽃의 상징으로 생명을 구하는 색으로 나타난다. 그에게 빨강은 원형적 사랑의 만남을 표시하는 것이기도 하며, 어둠 속에 한줄기 희망의 빛으로 다가온다. 유혈수 시인의 < 노환 앞에서 >도 이와 유사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

  노환으로 고생하는 생명에게 딱 일 년만이라도 건강을 회복하기를 간절히바라며, “딱 일년만 빨간색 너와 살고싶다”고 설파한다. 빨강은 “언제나 거만하고 질리도록 완숙함” 자체라고 말하는 그 의도는 결국 “빨강은 맥박과 혈압, 호흡수를 증가시켜 생명력과 자율신경의 자극을 상승시켜 활동성과 충만성으로 이어지는 심리적 작용이 바탕 되어 있다고 보여진다.


  길에 나서봐야 한다

  나와 정반대로

  가는 사람도 있다는 걸

  내 길이 아니면 길이 아니라고

  한 평생 배워온 고집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


                강언덕-< 길 위에서 > 일부   


  빛은 어둠을 만든다. 다시 말하여 빛이 없다면 어둠도 없다. 어둠 속에서 불을 켜면 세상이 보이고 불을 끄면 세상이 사라지고 색깔도 사라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삶을 살아가면서도 빛을 향하여 살지만 항상 뒤따라오는 그림자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나의 등 뒤에 있는 존재, 길 위에서 내 길만이 올바른 길이라는 인식을 버려야 한다.

  강언덕 시인은 <길 위에서> 라는 시에서 “한평생 배워온 고집/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를 자각하고 있다. 자신의 정반대에 있다고 하여 보이지않는 어둠처럼 백안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시적화자는 길을 나서봐야 하며 길을 통하여 빛을 보고 빛을 통하여 어둠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명암이 엇갈리는 극과 극이 아닌 서로 대립하면서도 공존하는 삶의 애매성이 불화를 극복하고 신비성과 명료성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라산은

  겨우내 눈 속에 잠들어 있었다

  초록바람이

  남쪽에서 건너와 눈썹을 털어주고

  백록담 정수리에

  호호 입김불어 깨어나길 바랬다


                고광자-< 백록담의 꽃비 > 일부 


  아직 덜 자란 여린 꽃대

  누가 먼 나라 외로운 들길 수북한 눈밭 위

  꽃모종하여 놓았나


                    백종미-< 꽃모종 > 일부


  고광자 시인의 <백록담의 꽃비>는 “백록담 정수리에/호호 입김불어 깨어나길 바랬다”라며 눈덮고 잠든 한라산에 “꽃비”를 뿌리게 하고 있다. 이 비는 다시 “입김”이 되어 백록담 정수리를 호호불어 한라산을 깨운다는 장면으로 다가오며, 물감색은 흰색이 주를 이룬다. 백종미 시인의 <꽃모종>에서도 “누가 먼 나라 외로운 들길 수북한 눈 밭 위/ 꽃모종하여 놓았나”라는 시 역시 그 바탕색은 흰색이다.

  흰색은 “절대적 자유”를 나타낸다. 검정과 같이 절대성이며 색들의 경계점이므로 쉽게 근접할 수 없다. 흰색의 절대성은 밝음과 빛의 상징으로 겨우내 잠든 거대한 한라산도 일으키고, 수북한 눈밭 위에 꽃모종도 하여 새 생명을 키워내는 강한 에너지가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그러므로 흰색은 묘사될 수 없고, 모든 영향에 개방되어 있는 색이면서도 순결성을 지니고 있어 봄은 어쩌면 “아무것도 씌여지지 않은 백지” 위에 밑그림을 그리는 계절이다.


  바다가

  검은 각혈을 쏟는다


  아우성치는

  생의 마지막 몸부림


                    이경배-< 서해 그바다 > 전문

  

   이경배 시인의 <서해 그바다>는 한마디로 죽음이다. 기름이 유출되어 검은 원유덩어리로 뒤덮인 태안 앞바다, 그 참담한 광경을 생각해보라. 시인은 바다라는 이미지를 아예 푸른색에서 검정색으로 완전히 바꾸었다. 검정색은 모든 색을 지워버린다. 넘실대는 푸른 파도와 이글거리는 붉은 해마저 검은 얼굴로 칠해버린 절망의 색깔로 채색하게 된다. “바다의 검은 각혈”, 이는 곧 “아우성치는 생의 마지막 몸부림”일 수 밖에 없다. 그런 검정색에 아무리 흰색을 섞어 개칠하여도 아직까지 그 바다는 겨우 회색일 뿐이다.


  등등한 햇살에

  흠뻑 젖지않는 게 없구나

  생동생동한 바람에

  실컷 나부끼지 않는 게 없구나

  포동포동한 파도가

  바로 눈썹까지 일렁이는구나

  징검징검한 섬들을

  담쑥담쑥 품고 싶구나

  너울너울한 산들이

  내륙으로 펄펄 살아 오르는구나


                김종기-< 달아공원 > 일부


   이에 반해 김종기 시인의 <달아공원>은 사뭇 느낌이 다르다. 시인은 남해의 통영 앞바다, 청정 바다와 다도해의 환상적인 자연의 조화를 펄펄 뛰는 활어같은 의태어를 사용하여 수준 높은 서정성을 확보하고 있다. “등등한 햇살, 생동생동한 바람, 포동포동한 파도, 징검징검한 섬, 너울너울한 산” 같은 표현은 눈에 익지 않은 어휘들이며, 특히 일반적인 의태어의 상투성을 파괴한 남다른 시선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이 시의 색깔은 프리즘과 같은 무지개색깔이 안으로 잘 숨어 있어 읽을수록 유려함이 느껴지고 자연주의 사상이 짙게 깔려 있다. 햇살은 빨강, 바람은 하양, 눈썹은 검정, 섬과 산은 파랑 등의 천연색 무지개 빛깔이 아름다운 서정으로 빛나고 있다. 색의 원형질, 그것을 잘 활용한다면 우리들의 시는 그만큼 기품 있고 독자들의 감동지수가 상승될 것이라 믿는다.


- http://blog.daum.net/poet1009/14927127 에서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보리향(菩提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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