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하고 빼고 나누기의 미학/안정환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것을 표현한 것이 나에게 있어서는 시다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하여 나의 시는 아직 그곳에 머문다.
아침에 일어나 저녁에 잠들 때까지 그날이 그날인 일상에서 우리들의 존재에 대하여, 너와 나의 만남에 대하여, 거리에 대하여, 시간에 대하여, 모양에 대하여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보면 하루도 똑같은 날은 없다. 그래서인지 나는 삶에서 실존이며 근원인 그 무엇에 대하여 늘 궁금함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특히 완전하지 못한 우리의 존재에 대하여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 세계에 대하여 정신적으로 절뚝거리며 지내왔다.
그러던 어느 가을날 창고 정리를 하다가 요긴히 쓰려고 아껴둔, 그러면서도 까맣게 잊어버린 찹쌀 한 봉지를 발견했다. 한여름을 그 속에서 지내는 동안 봉지 가득 생겨난 날벌레들을 보고 나는 차마 고개를 돌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날 이렇게 적어 두었다.
<1>
온몸 푸르게 흔들어도①
바람 따라 떠나지 못한
마음들이 모였습니다②
달빛도 새어들지 않는 창고 속
눈 코 입
한여름 여밀 수 없었던
역마살까지 꽁꽁 묶어논
찹쌀 한 봉지
수없이 생겨난 날벌레
전생에 이루지 못한 원이
새까맣게 비닐 봉지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가나화랑 전시회에 갔다가 이왈종의 그림을 보았다. 그리고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時空 空卽時色)」이란 그림을 보면서 묘하게도 지난해 그 찹쌀봉지 속 날벌레들이 그 위로 겹쳐짐을 느꼈다. 그 길로 공원 벤치에 나앉아 대충 이렇게 메모를 해왔다.
<2>
돌하루방, 텔레비전, 탈춤, 자동차
건너편에 꽃이 피고 새가 울고,
물고기가 노는 이왈종 그림
이름하여 색즉시공 공즉시색
원초적 욕망과 오욕칠정이③
한바탕 어우러진 그 옆,
언젠가 다시 태어날 꿈들이
여백으로 남아 있다.④
집에 돌아와 각각 적어 놓은 메모를 합쳐 보았다. <1>과 <2>로 번호를 주어 단락을 나눈 것이다. 그리고 형태와 리듬을 고려해 가며 산문으로 다시 써 보았다. 시의 짜임새가 한결 긴장돼 보였다. 소리내어 읽어본즉 산문적 운율이 훨씬 나은 것 같았다. 시각적으로도 안정되어 보였다. 다만 이미지 구축상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①‘푸르게 흔들다’와 ②‘마음들이 모였다’는 말을 삭제하고 ‘푸르름이 기어다니다’로 수정했다.
그리고 <2>에서 ③‘활짝 열린’ ‘시공을 초월한’과 같은 좀더 구체화시킬 수 있는 언어를 덧붙이자 뚜렷한 이미지가 되었다.
다음 마지막이 어쩐지 가벼운 감이 들었다. 현재 이루지 못한 꿈들 중에서 너와 나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가장 보편적인 그러나 언제나 그리운 ④‘당신의 이름’을 남은 여백에 살짝 놓았더니 내가 말하고자 하는 의미가 한층 더 확실해져 보였다.
최종 손질을 마치고도, 이 작품은 한동안 퇴고의 고통을 더 겪어야 했다. 구절을 더하고 빼고 나누어도 보았고, 위로 아래로 순서도 바꿔보면서 얼마 동안 서랍에 넣어두었다가 다시 다듬어 보기를 몇 번 거치고 태어난 것이다. 마지막 완성된 작품은 다음과 같다.
1
달빛도 새어들지 않는 캄캄한 창고 속 손과 발 입과 눈 여미지 못하던 역마살까지 꽁꽁 묶인 찹쌀 한 봉지 한여름 지나 꺼내보았더니 뜻밖에 생겨난 날벌레 비닐 봉지에 까맣게 갇혀 있었다. 바람따라 떠나지 못한 떠나고 싶었던 푸르름이 수없이 수없이 기어다니고 있었다
2
돌하루방과 텔레비전, 탈춤과 자동차, 사랑 그리고 분노, 한바탕 어우러진 저편에 꽃이 피고 새가 날고 물고기가 노는 가나화랑의 이왈종 그림 색즉시공 공즉시색 백주 대낮에도 당당히 발기해 있는 활짝 열린 원초적 욕망과 시공을 초월한 오욕칠정, 공이 색이 되고 색이 공이 되는 생명체의 행로 언젠가 다시 태어날 이루지 못한 꿈들이 여백으로 남아 있는 그 위에 오늘 부르지 못한 그대 이름을 놓아본다.
나의 경우, 모든 시를 이렇게 고쳤다고 말하기란 어렵다. 몇 번 바로 거꾸로 더해 보고 빼 보고 중간에 넣어 보고 위에 놓아 보고 하는 과정을 모두 기억할 수 없고 고스란히 남아 있지도 않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고 보면 퇴고를 더 했어야 나을 뻔한, 부끄럽고 모자라는 점이 눈에 띄기도 한다. 쉬우면서도 뭔가 가슴깊이 울림을 주는 그런 시를 쓰기란 참으로 어렵다.
더많은 자유는 더 큰 구속과 불평등을 부르듯이 시가 뭔지 조금 알고부터 시 쓰기가 두려워졌음이 사실이다. 나의 경우는 그렇다.
물가에 소나무가 남쪽으로 기우니
북풍이 부는 것을 알겠고
동쪽으로 대나무 그림자 기우니
달이 서쪽에 있는 것을 알겠다.
이 한시(漢詩)에서처럼 다만 지금, 현재, 이곳 우리 삶을 떠나지 않는 그곳에서 미루어 알아지는 지혜를 오늘도 더듬을 뿐.◑
◇안정환 91년 『문학과 의식』 등단. 시집으로 『보이는 것은 아주 작다』가 있다
-http://www.kll.co.kr/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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