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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고요한 뒤편, 깊은 소용돌이 - 신미균 소시집 `아랫목 외 4편` / 마경덕

문근영 2014. 3. 31. 13:40

 

계간『미네르바』(2011년 여름호) ‘작품론’

-신미균 소시집 '아랫목 외 4편'  

 

고요한 뒤편, 깊은 소용돌이

 

                                                마경덕(시인)

 

  시인마다 즐겨 쓰는 소재가 다르다. 칙칙하고 무거운 소재를 사용하는 시인도 있고 가볍고 경쾌한 것을 애용하는 시인도 있다. 지천에 널린 시의 재료를 끌어와 덧칠하는 유화油畫풍의 시인도 있지만 꼭 필요한 것만 골라 쓰는 담백한 수채화水彩畵 풍의 시인도 있다. 말을 아끼는 신미균은 후자에 속한다. 완성된 작품을 저울에 달았을 때 대개 중량이 나타나고 품질도 선별이 되는데 뜻밖에 별 치장도 없는 소박한 시가 묵직한 것도 있고 화려한 시어를 늘어놓아도 함량미달인 것도 있다. 같은 질료를 사용해도 사고思考의 깊이만큼 무게가 다르고 질량감이 다르다. 감각적 능력과 인간의 본질적 특성, 즉 이성이 적절한 조화를 이루었을 때 시의 질감이 결정된다. 일반적이고 기본적인 특성을 내포하는 원형(archetype)은 보편성과 대중성으로 이어지고 공감대는 소통으로 이어진다. 소통은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장점을 지닌다. 시가 품으로‘스민다’는 말,‘쉽게 스미고 오래 젖는’것이 신미균의 힘이다.

  신미균의 시편들은 쉽게 읽힌다. 단순한 구조로 짜여 있어 가볍고 경쾌하다. 하지만 비장한 포즈를 취하지 않는 가벼움 속에 묵직하게 들어찬 알맹이가 숨어있다. 신미균은 대부분 유쾌한 놀이처럼 시를 쓰지만 흘깃 보고 지나친 그 시가 오래 가슴을 붙잡는 것은 놀이로 끝나지 않는 분명 그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다.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불행’이나‘상처’를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대단한 능력인가. 가벼운 말로 이토록 중후한 시를 쓸 수 있다니. 온갖 포즈를 다 취하고 제 무게에 가라앉아 자멸하는 시들은 또 얼마인가. 신미균의 시편들은 자못 능청스럽다. 시의 문 앞까지 와서 정작 화자는 돌아선다. 시속으로 들어가는 문을 열어두고 시인은 독자를 따라 들어가지 않는다. 이제부터는 독자의 몫이다. 즐겁고 유쾌하게 생각을 따라갔다가 그만 쿵, 넘어지고 마는데 그것이 신미균이 노리는 시의 구덩이다. 평탄한 길을 방심하고 걷다가 구덩이에 넘어지는 시, 웃다가 그만 눈물이 나는 시를 신미균은 천연덕스럽게 쓰고 있다. 신미균의 시는 희극적이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비극적인 요소가 들어있다. 그녀는 비극을 희극으로 바꾸어 변주한다. 여기서 희극이란 그저 웃고 즐기는 소극笑劇과 구별하여야 한다. 정작 그녀가 응시하는 곳은 빛이 아닌 어둠 쪽인데 그 빛의 뒤편에서 해학諧謔이 자연스럽게 배어나온다. 신미균 시인은‘밝음’과‘어둠’을 배합해서 그녀만의‘밝음’을 만드는 것이다. 신미균이 만든 웃음 속에는 재미로만 그치지 않는 슬픔이 들어있다. 이렇듯 이중구조로 짜여 진 시편들은 단순한듯하나 결코 단순하지 않다. 멋을‘부리지 않’는 것과‘부릴 줄 모르’는 것은 다르다. 시를 지탱하는 힘은 드러나지 않는 치밀함이다.

 

 

  오랫동안 가보지 못한 시골집

  안방 아랫목이

  시커멓게 눌어붙은

  그대로 있다

 

  그곳을 두 손으로 짚어본다 

  새벽에 들어와도

  이불 밑에 얌전히 있던

  따스한 밥주발

 

  아무리 바빠도 밥은 먹고 다녀라

 

  납작하게 눌어붙은

  어머니가

  조각조각 바스러진다

 

                            - 「아랫목」전문

 

  가난한 시절 밥을 먹는 일은 삶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날마다 끼니를 해결해야 하는 그 시절은 무엇보다 먹고 사는 문제가 우선이었다. 아랫목은 추운 발을 녹이는 자리이자 그 집의 중심이 되는 자리인데 그곳에‘밥’이 있다. 시골집「아랫목」에서 기억은 출발한다. 시커멓게 눌어붙은“흔적”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 화자의 어릴 적 기억과 맞물리며 쓸쓸하고 그리운 풍경을 파생派生한다. 아궁이, 군불, 무쇠솥, 저녁, 밥주발, 이불 등은 화자에게 따뜻함으로 인식되는 시적 에너지가 모여 있는 곳.아랫목”은‘품어주고 안아주는’가슴과 이어진다. 끼니조차 거르며 늦게 귀가하는 딸을 기다리던 어머니는 자식에게 따뜻한“밥”이었다.“납작하게 눌어붙”음과“조각조각 바스러”지는 것은 물기를 다 버렸다는 것, 흘러간 시간은 흔적으로만 남아있다. 모성母性과 회한悔恨이 담긴“아랫목”은 바쁘다는 핑계로 잊고 살아가는 잃어버린 고향이기도 하다. 간과看過해서는 안 될 것은 따뜻함 뒤에 가려진 혹독한 한기寒氣이다. 장판이 까맣게 타들어갈 만큼 불을 때고 구들을 덥혀야 그해겨울을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눌어붙은 장판이 보여주는 것은 비단 이것만이 아니다. 새벽녘에야 들어오는 딸을 기다리며 까맣게 타들어간 어머니는 한때‘소통의 출구’였지만 이제는 소통불능이다.「가슴살」이란 작품에서도 모녀라는 혈연을 통해 출구가 사라져가는 이 시대의 문제점을 토로한다.  

  

   아무래도 더 이상 못살겠다고

   보따리 싸들고

   간신히 걸음마 뗀

   세 살짜리 손잡고 온

   딸과 함께

   닭백숙을 먹는다

 

  다리 한 개는 딸 주고

  또 하나는 손자 녀석 발라주고

  남은 가슴살

  씹어도 씹어도

  목에 걸려 넘어가지 않는

  캄캄한 가슴살

 

  턱 아프게 씹다보면

 

  나도 딸도 손자도 사라지고

  퍽퍽해진 가슴 가진

  저녁만 남아

  무겁게 입을 닫는다

 

                          -「가슴살」전문

 

  ‘닭가슴살’은 지방이 적어 퍽퍽한 부위인데 ‘퍽퍽’하다는 느낌으로 답답한 현실에 처한 화자의 심경을 대신하고 있다. 시적 자아는 기억과 힘겹게 싸우고 있는 중이다. ‘사람의 가슴’과 ‘닭가슴’이 하나가 되듯 ‘먹는다’는 즐거운 일과 ‘생각한다’는 고통스러운 모습이 동시에 펼쳐지면서 구수한 닭백숙은 쓴맛으로 변하고 있다. 신미균은 ‘고통’이라는 오브제를 등장시켜 시적긴장을 얻어낸다. 의지나 선택과 상관없이 맺어지는 혈육은 시인에게서 벋어나간 통로이기에 ‘불화’는 거쳐야 할 과정이다. 출가한 딸에게 유일한 출구는 어머니가 살고 있는 친정이다. 남편과의 불화로 어린 아들을 데리고 찾아온 딸에게 가장 먹기 좋은 닭다리를 내미는 어미는 팍팍한 닭의 가슴살이 되어간다. 턱이 아프도록 씹어도 삼킬 수 없는 것은 미래에 대한 불안이다. 모두 “입을 닫고 마는” 대책이 없는 저녁, 이혼이 급증하는 출구가 없는 시대, 던지면 되돌아오는 부메랑처럼 ‘여자의 길’을 자식이 되걷고 있는 것이다.

 

  냄비 속에는

  퉁퉁 불은 하늘

  냄비 밖에는

  조용한 뒷마당

 

  수제비와 나는

  국물 속을 떠다니고

  뒷마당에는

  나비 한 마리

  느릿느릿

  엉겅퀴를 지나

  백일홍을 지나

  자두나무 가지 끝에

  앉아있고

 

  밖에서 잠근 문이

  딸깍,

  열릴 때까지

 

  퍼먹어도 퍼먹어도

  도로 한 냄비가 되는

  하루

 

                   -「안녕, 수제비」 전문

 

  문을 잠그고 일을 나간 어느 집에서 어린 아이들이 불장난을 하다가 불에 타서 죽은 일도 있었다. 어미는 집이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했지만 닫힌 집은 가장 위험한 집이었다.「안녕, 수제비」는 냄비에 가득 수제비를 끓여놓고 돈벌이를 나간 부모를 기다리는 아이의 쓸쓸한 하루가 펼쳐진다. 잠긴 문이 열릴 때까지 아이는 바깥으로 나가지 못한다. 열악하고 위태한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는 소통이 막힌 공간에서 퉁퉁 불은 수제비를 떠먹으며 지루한 하루를 견디고 있다. 조용한 뒷마당 냄비 속에 하늘이 담기고 나비 한 마리 느릿느릿 자두나무 끝에 앉는 동안 아이의 외로움도 깊어간다. 가슴이 먹먹해지는 불안한 현실을 신미균은 이렇듯 고요하고 아름답게 보여준다.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평화로운 풍경 속에는 아이의 눈물과 참담한 삶이 엎드려 있다. 겹겹으로 파생되는 고요한 이미지 뒤편에 시인은 긴장감을 숨겨두었다. 한가한 풍경을 따라가니 집이라는 공간은‘보호’에서‘감금’으로 뒤바뀌고 만다. 방심하고 시를 따라가다가 그만 “시의 구덩이”에 빠지는 순간이다.

 

  아프리카 세렝게티 초원

  아름다운 몸매와

  늘씬한 뒷다리를 뽐내던

  어린 임팔라

  머뭇거림 없이

  물가로 달려와

  꼬리 살랑살랑 흔들며

  한 모금 상큼한 물을 마실 때

 

  느닷없이 튀어 오른

  악어의 섬뜩한 이빨이

  디지털고화질 텔레비전 화면 가득

  클로즈업 된다

  엄청나게 튀는 물방울과 함께

 

  모르면 없는 일

  나는 얼른 채널을

  바꿔버렸다

 

                    -「편리한 채널」전문

 

  아프리카 세렝게티 초원이 안방으로 전송되고 늘씬한 뒷다리를 가진 어린 임팔라가 물가로 달려와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며 물을 마신다.‘살랑살랑’이라는 의태어를 통해 초원의 시원한 바람을 느끼는 순간, 임팔라를 노리던 악어의 이빨은 임팔라를 물었다. 순간 물방울이 튀고 생사의 갈림길이 결정된다.‘찰나’는 늘 아슬아슬하다. 아차! 하는 순간 이미 늦은 것이다. 이빨에 물린 임팔라에게 출구는 없다. 그 장면을 바라보는 시인에게 출구는 무엇인가. 그것은 채널이다. 편리한 채널은 그 위험한 상황을 찰나에 지워버린다. 버튼 하나로 아프리카 초원에서 탈출한 시인에게는 그 후의 상황은 모르는 일.「편리한 채널」은 타인에게 닥친 불행을 외면하는 우리의 모습이다. 못 본 척 상관하지 않고 지나치면, 모르는 일이 되고 마는 이 시대의 냉정함, 나 하나 편하기 위해 눈을 감아버리는 이 시대의 무정하고 이기적인 자화상이다.

 

 

 나귀가 서 있는

  유원지 귀퉁이를 오려

  도화지에 붙인 다음

  할 일 없는 오후를

  등에 태워

  기념사진을 찍는다

 

  말뚝도 없고

  매이지도 않았는데

  도망 안가는 나귀

  

  도망, 갈까 말까

  오늘은 먹이가 많아서

  오늘은 벌써 한나절이 지나서

  오늘은 비가 오려고 해서

  바람이 꼬리를 흔들 때 마다

  종일토록

  한발 앞으로 갔다가

  한발 뒤로 갔다가

 

                         -「나귀」전문

 

  나귀가 서 있는 유원지 귀퉁이로 화자가 들어선다. 지루한 오후를 등에 태워 기념사진을 찍는 행위는 반복되는 일상으로 무력해진 화자의 존재를 확인하는 방법 중 하나일 것이다. 할 일이 없어지고 존재감을 상실해가는 중년 여인의 허탈감을 시인은「나귀」를 통해 짚어낸다. 그동안 가족들에게 매여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한 중년, 눈은 침침하고 기운은 빠져간다. 매인 줄이 풀렸지만 꿈은 사라진지 오래, 어딜 가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은 여인은 평생‘가정’이라는 끈에 묶여 길들여졌다. 수없이 도피를 꿈꾸지만 냉엄한 현실 앞에 무능한 존재로 전락한다. 종일 궁리만 하고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대부분의 중년들, 세상이 궁금하지만 때 맞춰 먹이를 주는 집이 있으니 쉽게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나귀”가 서있는 반경은 안전지대이며 동시에 갈등을 겪는 장소이기도 하다. 힘은 세지만 성질은 소심한 나귀를 통해 시인은 현실에 안주하는 우유부단한 인간의 나약한 심리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나귀」라는 작품도‘출구’와 무관하지 않다. 길을 찾아 헤매는 중년의 허무를 신미균은“나귀”한 마리로 그려내었다. 다섯 편의 시 속에는 비상구를 찾아 헤매는 이 시대의 불안이 담겨있다. 지극히 고요하고 평면적인 풍경 뒤편에는‘깊은 소용돌이’가 있다. 찰나에 빠져드는 치밀한‘시의 구덩이’가 있기 때문이다.

 

 

 

 

 

신미균 시인

 
서울 출생
서울교육대학 졸업
1996년 『현대시』 등단
2003년 시집 <맨홀과 토마토케첩> 천년의시작   
2007년 시집 <웃는 나무> 서정시학  

 

- 마경덕 시인 블로그 http://blog.naver.com/gulsame/40009894085 에서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보리향(菩提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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